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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에세이] 셔츠 오래전 헤어진 그녀가 선물한 셔츠가 눈에 띄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셔츠는 여전히 잘 버텨주고 있었다. 문득 빨래를 널다가 셔츠를 유심히 보게 되었고 옷걸이에 걸려 있는 셔츠를 보며 이별의 아픔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그 셔츠를 여전히 입고 있다는 건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반대로 나의 몸이 그때 그 셔츠에 더 잘 맞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성숙함으로 상처를 줬던 그녀에 대한 반성 때문일까. 7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며 지금이 그때보다 더 성숙해졌다는 하나의 상징일까. 모르겠다. 셔츠에 잘 맞는 몸이 되었듯이, 이젠 누군가를 이해하는 그 이해심의 깊이가 더 깊어지긴 한 걸까. 사랑의 기억.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 더보기
[에세이] 고독에서 솟아난 사랑 애가(哀歌) 설렘으로 시작해 걱정으로 변한 마음. 이번 휴가는 그랬다. 여전히 그 계획 위에 서 있지만, 아직도 염려가 앞선다. 태풍은 아직 진행 중이다. 만남을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정한 패턴의 생활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을 만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늘 기대에 벗어나는 게 삶인 것을. 바다에서 가까운 숙소. 어둔 밤, 창가에는 거친 파도 소리와 거센 바람 소리가 반복해 들려온다. 끊임없이. 내일이면 잠잠해지려나. 이젠 기대하지 않으련다. 정말 괜찮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혼자 지내는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 을 보는 게 아니었다. 사실 뭐 이렇게 될 줄 알고 봤나. 후유증은 명확했다. 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졌다. 이 몸을 태워 누군가를 밝혀주고 싶은 마음이 어.. 더보기
[에세이] 지금 웃어라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 일들을 받아들이면 신께 빚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쁨의 잔을 맛보지 않는 편이 더 나아. 일단 맛을 보면 잔이 비었을 때 끔찍이도 괴로울 테니까.’ 우리는 다시 작아질까 두려워 자라는 것을 포기한다. 울게 될 것이 두려워 웃는 것을 포기한다. 파울로 코엘료, , 자음과모음, p.74 이별을 경험해본 사람은 사랑에도 괴로움이 있음을 안다.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의 사랑 방식에 고난도 포함됨을 안다. 그런데 우린 사랑의 괴로움과 고난의 기억 때문에 충분히 즐거워하고 기뻐해도 될 순간마저 그 기쁨을 유보하게 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신께 빚지는 듯 그 느낌이 내게 일어난 좋은 일들을 두고 자신.. 더보기
[에세이] 이방인이 될 용기 케이가 고백을 한다. "좋아합니다. 제가 당신을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 그리고 더듬거리며 용기를 내 사귀자고 말한다. 수화기 너머 크림의 답이 들려온다. "아직, 누굴 만날 생각이 없어요." 케이는 거절을 당했다. 돌아선 그는 목석처럼 굳어버린 듯하다. 더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물러서야 할까. 애매한 거절에 애매한 상황이 펼쳐졌다. 솔직함! 그게 뭐지? 솔직함은 좋은 걸까 아니면 나쁜 걸까? 나쁘다면 왜 나쁜 거지? 예의를 갖춘 '적절한' 거절이나 호응은 훌륭한 인간관계의 처세술이 맞나? 케이는 우연히 길을 걷다 카뮈의 책 을 줍는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과 지하철에서 무심히 읽다 보니 '뭐 이런 인물이 다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해하다. 난해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 우연이 곧 표지임을 안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3. 떠남, 만남, 돌아옴 Day 13. 떠남, 만남, 돌아옴 부르고스(Burgos) : 쉼 오늘은 처음으로 내일의 걱정이 없는 날이다. 이 도시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의 매력 중 하나는 한 마을에서 이틀 묵는 일이 흔치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일지라도, 아무리 불편한 것이 있어도 두 번 머무는 것이 쉽지 않은 곳이 바로 이곳 산티아고이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이라는 시간 밖에 살아낼 수밖에 없는 곳, 잡고 있던 것을 계속해서 놓는 훈련을 하는 곳이 바로 여기 산타아고이다. 순례 중엔 짐을 싸고 푸는 것이 일상이지만 오늘은 일행들과 합의 하에 조금의 여유를 누려본다. 이곳 부르고스(burgos)에서 하루 더 묵기로 결정하고 평소보다 느지막이 눈을 뜬다. 하지만 어제의 무거운 감정이 여전히 내.. 더보기
[에세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거푸집에 얼굴을 넣었다가 그 표정을 고스란히 상황 속으로 가져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장례식장에 들어갈 때다. 특히 유가족을 맞이할 때 나의 표정은 자기 멋대로 춤을 춘다. 온화하고 은은한 미소를 띠어야 하나? 아니면 무겁고 엄숙한 표정을 지어야 하나? 오랜만에 만난 벗이 유가족 가운데 있기라도 하면 반가움의 미소부터 흘러나오니 이 난감함을 어찌해야 할까.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님을 경험한다. 표정은 분명 내가 지었는데 정확히 나만 빼고 모든 이가 본다. 그런데 이 표정은 슬픔과 반가움의 감정이 뒤섞일 때 제멋대로 춤을 춘다.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고인에 대한 슬픔과 여전히 잘 살아있어 줘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유가족에 대한 반가움이 하나의 얼굴을 두 개의.. 더보기
[에세이] 혁명의 순간, 그 다음날 만나는 사람과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를 떠나보내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힘겨워졌다. 그래서 그 사람을 떠나보내려 한다. 첫 연애, 헤어지고 나서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몰라 모든 당혹감을 끌어안느라 지독한 어둠을 경험한다. 미안함, 후회, 자책, 변명들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다시 여러 번의 인연을 만나고 헤어짐을 경험한다. 이제 이별 후를 조금은 알듯하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 상실의 슬픔을 애도하고, 아픔을 직면하고, 또 견뎌낸다. 끝 모를 시간의 반복이다. 사랑은 떠나가도 삶은 계속될 것이기에 다시 힘을 내어 본다. 이별 후의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 무엇으로 그 삶을 채울 수 있을까? 다음 세상을 닳아버린 몽당연필로 .. 더보기
[에세이] 연락 얼마 전,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 무심코 '넌 사람들한테 연락 자주 하잖아?'라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해 버렸다. 평소의 나는 먼저 연락을 잘 못하는 편이다. 누군가 내 연락을 받았다면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생각만하고 연락하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왜 그 말이 기분 나빴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친구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거 같긴 하지만, 쨌든 사람들에게 연락을 자주 한다는 그 말에, 평소 내가 고독과 외로움을 견딜 줄 모르는 나약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SNS의 거짓된(!) 인간관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사는 지인들보다 저 멀리 일본에 사는 H형, 호주에 사는 H님, 인도에 계신 J선생.. 더보기
[에세이] 책과 사람 오늘 이 책을 펼쳤지만 내일 같은 책을 펼치지 않을 수도 있다. 책과 저자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달라진 건 나일 테다. 그러나 좋은 책은 언제든 다시 찾게 된다. 삶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세대를 묶고 푸는데 유연하여 품이 넓은 책, 뻔한 답을 내려 주지 않고 독자의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그런 책. 사람이 내 곁에 남을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다. 오늘 옆에 있던 이가 내일 없을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다. 달라진 건 곁에 있던 사람일 테다. 그러나 좋은 사람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다시 찾게 된다. 진정성 있게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삶은 모호함에 자신을 던지며 답 없는 생의 불안을 껴안는 삶일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은 아니다. 오늘 보기 싫던.. 더보기
뜨거웠던 8월 모래와 파도가 뒤섞인 가을 바다를 보고 있다.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를 흘려 보낸 바다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부푼 기대를 갖고 바다를 찾았던 사람들이 떠난 그 바다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8월의 뜨거움이 일장춘몽과 같다. 바다야, 잘 견뎌내자. 늘 그래왔던 것처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