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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쓰임 Note] 일상에 틈 만드는 훈련

by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2016. 8. 13.
20160814 쓰임교회 주일설교
 
일상에 틈 만드는 훈련
 

 

<누가복음 12장 49-56절>
 
49.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50. 그러나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는지 모른다.
51.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 한 집안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서, 셋이 둘에게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서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고, 어머니가 딸에게 맞서고, 딸이 어머니에게 맞서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맞서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서, 서로 갈라질 것이다."
54. 예수께서 무리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뜻을 일상에 풀어내는 복무자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저는 최근에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복에 관한 것인데요, 사람의 타고난 습성, 자라면서 형성된 기질 중에 하나님께서 참 좋아라하는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복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산을 많이 갖고 있고 명예나 권위가 높은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소 짓는 것들을 많이 지닌 사람, 바로 그런 사람들이 복 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더 예뻐하는 사람은 방금 말씀드린 복 있는 사람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그 부족함을 하늘의 뜻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훈련하는 것이죠. 연습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일상에 풀어내기 위해 일상 복무자가 되어 훈련하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정말 기뻐하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공부나 운동처럼 우리가 어떤 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몸이 바뀌어야 합니다. 계속 반복해서 그것을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죠.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앙의 훈련을 기다려주시고 기쁨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실 겁니다. 그런데 다들 잘 알고 계실 텐데요, 훈련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넘어져도 일어나 계속해 나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세상에 불(때를 분별하는 것)을 지르러 왔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누가복음 12장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는 평소 우리가 알던 예수의 모습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그가 하는 말들이 특히 그러합니다. 해당 본문을 한 번 더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는지 모른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49-51).” 
 
예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불’에 관한 이미지 때문에, 예수께서 불을 지르러 왔다는 이 말이 마치 모든 것을 태워 버리려고 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구절을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에 관한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의 의미가 오늘 본문 후반부에 등장하는 ‘때를 분별하는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56). 태워 없애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향해 적극적으로 돌아설 것을 예수께서 요청하는 것입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은 종
 
그럼 과연 예수께서 하시는 이 이야기는 누구를 염두 해두고 하는 것이었을까요? 만일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다가 베드로가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이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또는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41)” 그러자 예수는 청지기 비유를 드십니다.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청지기냐고 물으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주인이 어딘가 다녀오며 청지기에게 자기 종들을 맡기며, 제 때에 먹을 것을 주라고 시켰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그 청지기가 주인이 시킨 바를 잘 이행하고 있으면 그는 복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주인은 자신의 전 재산을 그에게 맡깁니다. 
 
그러나 그 청지기가 스스로 판단하고 주인이 늦게 오리라 생각하여 남녀종들을 때리고, 혼자 먹고 마시며 취하고 있을 때, 주인이 온다면 그리 행하고 있는 청지기는 주인에게 몹시 맞고 벌을 받을 거라 했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고 그 뜻대로도 행하지 않은 종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비유의 말미에 예수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알지 못하고 매 맞을 일을 한 청지기는, 오히려 적게 맞는다고 말합니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이 맡긴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알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차라리 하늘의 법을 모르는 사람이 덜 매 맞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요구할 대상은 누구냐면 많은 것을 받고, 많은 것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와 맡기신 일이 얼마나 된다고 느끼십니까?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는 자신의 말씀에 해당되는 사람은 결국 우리 모두이며, 이미 믿고 있는 자들임을 우회하여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는 시대를 향한 사명의 불을 잊고 지내는 우리를 바라보며 몹시 안타까워하고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분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다시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향해 자신의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는지 모른다(50).”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참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믿는) 자들이 새로워지기를, 올바른 길에 들어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오래 걸릴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고 알리는 일의 끝에 자신의 죽음이 있는 것을 알았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는 안타까움에 슬펐습니다. 
 
이어서 예수는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너희는 내가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51).” 아니, 예수의 사역은 사람들 간에 막힌 담을 허물고,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평화를 주러 온 게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니 말입니다. 
 
여러분, 매년 여름이 되면 꼭 오는 게 있지요. 뭔지 아십니까? 태풍입니다. 태풍이 오면, 인간에게 갖가지 재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자연에게는 엄청난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고 합니다. 특히 바다가 그러한데요. 바다에 도착한 태풍은 바다 속을 마구 뒤집어 놓기 때문에 먹이사슬관계에 있는 수많은 동식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풍은 인간에게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자연에게는 매우 소중한 벗인 것이지요. 
 
저는 예수께서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말씀을 ‘태풍’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안일하고 나태한, 더구나 온갖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향해, 그 시대를 향해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하나님의 바른 정의를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태풍이 잠잠한 바닷가를 지나가자 생명체들의 활동이 활발히 시작되었던 것처럼, 예수가 말한 ‘분열’은 부패한 종교지도자들,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백성들에게 새로운 하늘의 뜻을 유입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식구 간의 관계와 연결 지어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한 집안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서, 셋이 둘에게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서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고, 어머니가 딸에게 맞서고, 딸이 어머니에게 맞서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맞서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서, 서로 갈라질 것이다(52-53).” ‘한 집안의 식구’를 말할 때, 여기에 어떤 비유가 담겨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대목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집안의 식구들을 분열 시키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법과 어머니의 돌봄, 자녀들의 역할, 식구의 확장(새로운 존재를 받아들임)인 며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계망을 무너뜨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의 진의(眞意)를 아시겠지요? 예수께서 단순히 가정의 평화를 없애고 분열을 조장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오염된 체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법을 세우겠다는 말씀인 것을 말입니다. 오염된 체계란 사회적인 분위기와 제도일 수도 있고, 개인의 정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두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각 개인의 정신이 새로워짐으로 새로운 사회의 분위기와 제도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마지막 문단에서 지금까지 나열했던 자신의 생각을 요약하듯 말씀하십니다. 그곳에 모인 무리들을 향해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54-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인 거죠. 사람들은 구름이 서쪽에서 발생하는 것을 보면 곧 소나기가 올 것을 당연히 예측하고, 또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곧 날이 더워질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께서는 땅과 하늘의 기상변화는 분간할 줄 알면서 다시 말해,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일들은 분별할 줄 알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뜻은 분간해내지 못하느냐고 소리 높이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는 안타까웠습니다. 애가 탔습니다. 분열을 통한 새로운 평화를 세우기 위해 그래서 사람들이 어서 하나님의 길로 다시 돌아오기를 그는 간절히 원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통한 일상의 틈 만들기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예수는 오늘 본문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자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분열은 단순히 훼방을 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새로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땅과 하늘의 기상은 잘 분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탁월하게 분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때’입니다. 시대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 서두에 훈련에 관해 말씀 드렸었습니다. 공부와 운동에 있어서 훈련이 필요하듯이, 신앙에 있어서도 훈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훈련은 무엇일까요? 시대를 잘 분별하기 위한 훈련, 그것은 바로 바쁜 일상 가운데 자주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신뢰를 갖고,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앞서지 않게 부단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틈에 비치는 하늘의 빛을 늘 바라보려 애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바람을 하나님께 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바람을 알고 살아내는 행위입니다. 반복되고, 가끔은 무의미해보이고, 좌절되는 일상이라도 그 가운데 틈을 만들어, 그곳에서부터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렇게 시작하여 그 틈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 가십시오. 우리 마음의 원(願)만 있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울 것입니다. 날이 정말 무덥습니다. 더우면 시원한 것들을 찾듯이, 마음의 더위를 식히고자 하나님을 자주 찾고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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