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5 쓰임교회 주일설교
있는 그대로 그 분 앞에
<시편 32편>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2.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3.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4.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5.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6.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모두 주님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7.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 (셀라)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 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9.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10. 악한 자에게는 고통이 많으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넘친다. 11. 의인들아, 너희는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정직한 사람들아, 너희는 다 함께 기뻐 환호하여라.
사순절의 여정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부터 모든 교회는 사순절을 지킵니다. 물론 40일간의 여정은 1일이었던 수요일부터 시작됐습니다. 사순절의 시작을 일러 ‘성회 수요일’ 또는 ‘재의 수요일’이라 합니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한 해 전에 미리 태워 놓은 종려나무의 재로 각 사람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 예수님의 고난을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다 문득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외치던 수많은 군중들과 또 그 군중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끼셨을 예수님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종려나무를 태워 그 재를 이마에 바르는 행위는 인간의 주관적인 욕심과 바람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기대와 달랐던 하나님의 참뜻 가운데에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라는 의도가 담겨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비치는 삶
특별히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아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32편입니다. 오늘 본문은 평소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어떻게 맺어 나가야 하는가에 관해 알려 줍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특별한 가이드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살펴볼 첫 번째 가이드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하나님을 어떤 존재로 고백합니까? 사랑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 하나님을 사랑의 근원으로 여기며 살아가는지 의문이 듭니다.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왜곡된 사랑 관념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마저 왜곡되어지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먼저 그 분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분앞에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한다면 드러내지 못합니다. 심판 받거나 혹은 벌 받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의 저자는 정말 복된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죄를 드러내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죄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정말 복된 사람은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사는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비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셀라)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의 저자는 용기내 자신의 죄를 주님께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단번에 하나님께 내비치지 못했습니다. 홀로 그것을 끌어안는 고독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편의 저자는 용기를 냈습니다.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진정한 용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넓은 품을 경험했습니다. 시편 저자는 죄를 자신의 가슴 속에 담아 뒀을 때에는 하루 종일 신음만하여 뼈가 녹아 내리는 것만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답답함은 극에 달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의 죄를 안고서 속 시원히 털어놓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더 가슴 아파하며 답답해하고 계신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정말 그러실 거란 생각이 듭니다.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
시편의 저자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진정한 하나됨 즉, 합일을 경험한 후 또 다른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 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시편의 저자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 길은 어떤 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그럼 무슨 말 일까요? 원래 논밭에서 기르던 가축은 길들여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그것들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축들에게 복종, 순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가축들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오직 순응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편의 저자를 향해 재갈과 굴레를 씌워놓은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라 하십니다. 그럼 이 말에는 이러한 속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무언가에 얽매이는 종으로써의 삶을 살지 말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그 자유함 속에 깃든 하나님의 참뜻을 발견하라는 말말입니다. 지나친 자기해석 일까요? 저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라는그 말의 의미를 방금의 구절에서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는 분이시지만 이때의 구속은 자유함의 구속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유로운 삶을 위한구속이 옳아보입니다.
있는 그대로, 또 자유하게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여기며 사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께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죄 지을 수 있습니다. 죄 짓지 않는 사람은 아마 이 땅의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에게 참 평안과 자유함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 경험되는 자유함은 제한적인 자유함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서 강요되는 ‘당연하고’, ‘지당한’ 것들을 넘어서는 초월적 자유함이 될 것입니다. 물론 초월적인 것이 꼭 신비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초월성은 하나님께서 삶의 본질, 근본에 심어 놓은 아주 평범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자본으로 인해 잃었던 것들을 말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됐습니다. 이 긴 여정동안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됨을 경험했을 때 주어지는 참 자유함으로 매일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참 마음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또 우리는 죄로 인해 그 본질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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