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0 쓰임교회 주일설교
성벽 곁에 드리워진 다림줄
<아모스 7장 7-17절>
7. 주님께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주셨다. 다림줄을 드리우고 쌓은 성벽 곁에 주님께서 서 계시는데 손에 다림줄이 들려 있었다.
8. 주님께서 나에게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다림줄입니다" 하니, 주님께서 선언하신다.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한가운데, 다림줄을 드리워 놓겠다. 내가 이스라엘을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
9. 이삭의 산당들은 황폐해지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파괴될 것이다. 내가 칼을 들고 일어나서 여로보암의 나라를 치겠다."
10. 베델의 아마샤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알렸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나라 한가운데서 임금님께 대한 반란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이 나라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여로보암은 칼에 찔려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사로잡혀서, 그 살던 땅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12. 아마샤는 아모스에게도 말하였다. "선견자는, 여기를 떠나시오! 유다 땅으로 피해서, 거기에서나 예언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시오.
13. 다시는 베델에 나타나서 예언을 하지 마시오. 이 곳은 임금님의 성소요, 왕실이오."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오. 나는 집짐승을 먹이며, 돌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오.
15.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16. 이제 그대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오. 그대는 나더러 '이스라엘을 치는 예언을 하지 말고, 이삭의 집을 치는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하였소.
17. 그대가 바로 그런 말을 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네 아내는 이 도성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은 칼에 찔려 죽고, 네 땅은 남들이 측량하여 나누어 차지하고, 너는 사로잡혀 간 그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꼼짝없이 사로잡혀 제가 살던 땅에서 떠날 것이다.'"
아모스가 살던 당시 북이스라엘의 상황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어느 덧, 장마가 지나더니 무더위가 시작 되었습니다. 계절의 섭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길 다시 한 번 바랍니다.
성령강림 후 제8주,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아모스 7장입니다. 아모스는 구약성경 호세아부터 말라기에 이르는 열두 개의 작은 예언서 즉, 12개의 소예언서 중의 한 두루마리입니다. 이 아모스라는 인물은 남유다의 땅 드고아 고원에서 목축과 돌무화과(뽕나무)를 재배하던 목자요 농부였습니다(암 1:1; 7:14-17). 그가 살던 시대는 남유다에는 웃시야가, 북이스라엘는 여로보암 2세가 왕으로 통치하던 시대(대략 BC 760-755)였습니다.
남유다의 땅에 살던 아모스는 하나님께 이끌려 북이스라엘로 내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영화의 미치진 못했지만, 놀랄 만한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 풍요는 심각한 타락과 부패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모스 2장 6-8절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은 돈으로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다고 했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기고 하였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도 했습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고, 전당으로 잡은 옷을 제단 위에 펴 놓고는, 그 위에 누워 하나님의 성전에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곡물세를 착취 한다던가,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도 했습니다(암 5:11-12). 이렇듯 아모스가 살던 당시 북이스라엘에는 힘 있는 자들의 타락과 부패가 가득했습니다.
아모스가 본 다섯 가지의 환상, 그리고 다림줄
이러한 상황 가운데, 아모스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까지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물론 그 하나님의 말씀이란 모두 심판과 관련된 말씀이었습니다.
아모스 예언자의 주된 선포지였던 북이스라엘은 속히 우상 숭배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며 사회적 불평등을 바로잡지 않으면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암 7:1-9:10). 아모스는 다섯 가지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처음의 두 가지 환상은 메뚜기 재앙과 가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환상을 본 아모스는 야곱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이 이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길 간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이어 세 번째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벽 곁에서 손에 다림줄을 들고 계셨습니다. 그리곤 물으셨습니다.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러자 그는 “다림줄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다림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림줄이란, 수직으로 바로 섰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추를 달아 늘어뜨리는 줄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벽돌이 쌓여 있는데 그 벽돌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가지런히 쌓여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무거운 추가 달린 줄을 그 벽돌들 앞에 늘어뜨릴 때의 그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다림줄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한가운데, 다림줄을 드리워 놓겠다. 내가 이스라엘을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 이삭의 산당들은 황폐해지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파괴될 것이다. 내가 칼을 들고 일어나서 여로보암의 나라를 치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다림줄은 아모스 5장 24절에 등장하는 ‘공의’와 ‘정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두 가지가 무너진 이스라엘을 보며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할 당신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넷째 환상과 다섯 째 환상은 여름 과일 광주리와 성전 붕괴와 관련된 것이나 이 두 가지의 환상에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신의 뜻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아모스 또한 그것을 바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이유를 추측해 보건데, 오늘 본문 7장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아마샤 제사장의 태도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제사장 아먀사의 거절
아먀사 제사장은 여러보암 왕에게 사람을 보내 이렇게 일렀습니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나라 한가운데서 임금님께 대한 반란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이 나라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아모스는 ‘여로보암은 칼에 찔려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사로잡혀서, 그 살던 땅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아마샤는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는 척하나 뭔가 두려움에 가득차보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아모스에게도 말합니다. “선견자는, 여기를 떠나시오! 유다 땅으로 피해서, 거기에서나 예언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시오. 다시는 베델에 나타나서 예언을 하지 마시오.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요, 왕실이오.” 제사장의 눈에 아모스의 예언은 그저 밥벌이 하려는 자의 선동 정도로만 보였던 모양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모스는 진중히 아마샤에게 대답합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오. 나는 집짐승을 먹이며, 돌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이제 그대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오.” 아모스는 그의 일(밥벌이)이 있었고, 그 일로 만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런 일 즉, 예언자의 일을 하는 건 본인의 의사가 아닌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라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모스는 그의 예언을 거부한,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제사장 아마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남기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다림줄은 어디에 드리워져 있나?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크게는 지금 이 사회와 이 민족 위에, 작게는 각각의 개인들에게 하나님의 다림줄이 드리워져 있는 건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사회가 크고 개인이 작다는 건 가치의 개념은 아닙니다. 개인이 모여서 사회와 민족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대가 어두울수록 빛이신 주님을 바라봐야 하지만 지금 이 사회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도 모자라 사회로부터 세금을 앗아가는 이들로 인식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유행하듯 건물에 세 들어 장사하며 건물주의 갑질에 놀아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정당한 이유와 절차 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수많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 등등 여전히 아모스가 살던 당시의 사회적 불평등이 너무나 팽배해 있는 오늘입니다. 이 고통 받는 현장에 하나님의 다림줄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 일들이 나와 무관하다하여 쉬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작고 소소한 일상에도 이러한 부조리와 불평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직장, 나의 학교, 나의 교회, 나의 가정 등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하나님의 다림줄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과정을 거친 우리의 행동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안과 밖을 잘 보살펴야 합니다. 외부의 일에 매몰되어 자신을 돌보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신에게 함몰되어 주위의 일들을 등한시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안과 밖을 잘 어루만져야 합니다. 그 보살핌과 어루만짐 속에 사랑의 주님을 초대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행동은 채워진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해야 바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시대에 이스라엘 성벽 곁에 드리워졌던 다림줄처럼, 지금 하나님의 그 다림줄이 나의 일상과 이 사회 어디에 드리워져있는지 잘 분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No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0717 주보 (0) | 2016.07.17 |
---|---|
[쓰임 Note] 있는 그대로 그 분 앞에 (0) | 2016.07.16 |
20160710 주보 (0) | 2016.07.09 |
[쓰임 Note] 평화의 사람이 되길 (0) | 2016.07.03 |
20160703 주보 (0) | 2016.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