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3 쓰임교회 주일설교
평화의 사람이 되길
<누가복음 10장 1-11절>
1. 이 일이 있은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일흔[두]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4. 전대도 자루도 신도 가지고 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아라.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아라.
8.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에게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10. 그러나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 거리로 나가서 말하기를,
11. '우리 발에 묻은 너희 고을의 먼지를 너희에게 떨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라' 하여라.
맥추감사주일의 의미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감리교절기상 성령강림절 후 제7주이자 맥추감사주일이기도 합니다. 맥추감사주일은 유대인들이 지키던 전통적인 절기 중 하나입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세 가지의 절기를 지켰는데,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이 그 세 가지입니다. 맥추절은 다른 말로 유월절이 지난 일곱 번째 주에 지킨다하여 칠칠절(출 34:22; 신 16:10)이라고도 하고, 유월절 중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둘째 날부터 계산해 50일째에 지켰으므로 오순절(행 2:1)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맥추감사주일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의미로 밀이나 보리 추수가 이뤄진 직후 첫 열매를 드렸기 때문에 봄철이 끝나는 시점인 7월 첫째 주에 지키게 됩니다. 이 절기의 의미를 기억하며 오늘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주에서 만난 이야기
오늘 설교는 제가 이번 주에 다녀온 기행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저는 33년을 살며 혼자 여행을 다녀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3박4일의 여정으로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기대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혼자 떠난다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 또한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만큼 무언가에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이든 날씨든 나 자신이든 사람이든 혹은 지난 시간이든 앞으로의 시간이든, 때에 맞게 무엇인가에 집중하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사람’에 관한 집중이었습니다. 혼자 떠난 시간이었기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나름의 설렘이었습니다. 길을 오며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잠깐의 목례나 눈인사만 나눌 뿐 대화까지 이어지진 않았습니다만, 모든 일정을 마친 저녁시간에는 좀 달랐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에 모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습니다. 놀라운 건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대부분 짝이거나 그룹이었지만, 숙소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혼자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첫날 숙소에서 만난 한 남자분과의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혼자 온 여행객이 많은 게스트 하우스 경우 늘 특별한 인연이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대부분 20대 여행객들로 붐비는 숙소에 간혹 저와 같은 30대 사람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여행객 한 분과 음료 한 잔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사진작가로 일하는 그 여행객은 홍대에서 강의도 하는 멋진 분이었지만, 무엇보다 나의 호기심을 끌었던 건 최근 몰래 이사 간 이효리 씨의 제주 집에도 자주 들락날락 할 정도의 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휴대폰에는 그 여행객분이 찍어 준 이효리 씨의 사진과 그녀의 남편 이상순 씨의 사진이 가득했습니다. 그제야 확실한 신뢰가 가긴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 여행객의 독특한 이력을 듣게 되었습니다. 20대 초반, 까칠하기로 유명한 한 존경하는 교수님과 공부하고자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다시 그 길에서 떠났다고 했습니다. 마치 대기업 입사를 하기 위해 애쓰는 신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모두가 즐겨 가는 그 길을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거 같아 다른 길을 찾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을 수 없어 이야기를 조금 보탰더니, 서로의 길이 다를 뿐이니 자신의 푸념에 너무 신경 쓰진 말라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혹은 강정에서 평화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그 유랑민 여행객은 삶의 곳곳에서 비폭력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었습니다. 10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기에 이제는 새로운 삶의 전환을 맞고자 머지않아 치앙마이나 유럽으로 갈 것이라 했습니다.
평화를 전하는 자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일흔 명 혹은 일흔 두 명의 사람들을 각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짝지어 보냈습니다.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날 때에 전대(허리에 두거나 어깨에 메게 된 자루)도 자루(속에 물건을 넣을 수 있게 헝겊 따위로 길고 크게 만든 주머니)도 신도 가지고 가지 말고, 길에서조차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혹은 정신)만 지니고 떠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마 자신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없음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마다 '평화'가 있기를 빌어주라 하시고,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려질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그 '평화'가 전했던 그 사람에게로 고스란히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수한 의도에서 발설된 평화의 메시지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영접하는 곳에서의 대접을 기꺼이 받되, 영접을 받은 이들은 고을에 있는 병자를 고치거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고을로 떠난 사람들, 다시 말해 평화를 전하는 자들이 그저 행한 일이라곤 어떤 의도나 바람이 없이 그들 스스로 평화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의 행색은 정말 초라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을 맞아들인 고을이나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가슴을 지닌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영접을 했던 이들 또한 평화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을 맞이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무서운 결과가 주어질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을 영접하지 않은 고을을 나올 때는 발에 뭍은 고을의 먼지를 그곳에 털어버리라 했습니다. 영접하지 않은 선택한 결과를 그들의 몫으로 돌려주었습니다.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은 고을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없게끔 모든 결과를 고을의 몫으로 돌려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 위기의 상황이었는지 입니다.
평화의 사람이 되라 부르신다.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평화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의 메시지를 몸으로 살아내는 평화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평화의 씨앗이 뿌려져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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