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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317

서로 다른 모티프 전화를 받다보면 다짜고짜 '어디야?'를 묻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의 순수한 의도와 상관없이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힌 후 그저 평범한 인사말에 불과했을 그 질문에 답을 한다. 참 이상하다. 갑자기 화가 나거나 불안해지고 기분이 나빠지는 그런 말들이 있다. 그저 예민한 날이었겠지하며 넘길 수만 없는 그런 날들이 있다. '어디야?'를 묻는 그 말이 기분 나쁜 건 아무래도 자유롭지 못했던 학창시절과 연관 있는 듯 하다. 부모의 보호 아래 늘 감시를 받아야 했던 힘 없던 시절. 자유롭고 싶었고 내 생각과 바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 받고 싶었다. 물론 밀폐된 비밀의 방을 만들어서 좋을 건 없지만 지난 시간들의 숱한 경험들로 본능은 부모에게 진심을 감추도록 명령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러한.. 2017. 8. 29.
여름의 피서 지코와 아이유는 샤워 할 때 악상이 잘 떠오르고 이상순은 잠자기 위해 누웠을 때 좋은 악상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리고 존경하는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산책 하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좋은 글감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하루 중에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 밤. 고귀한 생각을 선물로 주는 바로 이 시간들은 분주함에 균열을 낼 때라야 획득될 수 있어 보인다. 요즘 참 무덥다. 샤워와 잠자기, 산책과 커피 마시기를 즐겨해야겠다. 뭔가 좀 잉여스러운 인간이 그려지지만 그렇다한들 뭐 어떠한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한 번 해보는 거다. 2017. 8. 29.
고향 모습 고향에 오면 항상 십년 전 내 모습이 생각난다. 여기 저기 새겨진 여러 날의 흔적들. 십년 하고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오늘,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 그 시간에 무엇들이 채워졌나 톺아보게 된다. 마치 지난 시간들을 순간 이동해 온 기분이다. 고향은 늘 그렇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보게 한다. 초승달 아래 소나무 사이를 걸었던 교복 입은 내가 보인다. 2017. 8. 29.
[에세이] 열정의 회복 제주 다녀온 사진을 본 지인 대부분의 반응이 비슷하다. 좋겠다, 부럽다, 신선놀음 같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여행 사진을 보며 그렇게 느끼니 말이다. 안전과 위험,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이 안정적인 생활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두려움과 앞으로의 삶이 늘 지금과 같을 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두려움. 양립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두려움이 일상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삶이 이게 전부는 아닐텐데'. 작년부터 다녀온 모든 여행은 단 한번도 여가나 피서의 개념이 아니었다. 위험과 불안함을 그대로 직면하며 낯선 것에 나를 던져보는 것이었다. 내 안의 열정을 다시 깨울 점화.. 2017. 4. 26.
[에세이] 부활의 기쁨과 세월호의 아픔 비극(Tragedy)에 관한 여러 정의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비극은 인간이 수치를 당한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까지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는 것" 예수의 부활은 그의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을 겁니다. 세월호 참사 3주기. 비극을 당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실규명은 아직도 요원해 보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비극을 당한 이들의 슬픔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와 무관한 사람은 없음을 아는 것, 이것이 부활을 기쁨으로 경험한 사람의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21세기에 예수의 부활은 오직 자기 스스로가 새로운 존재가 됨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물론 부활의 경험은 단숨에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 2017. 4. 16.
[에세이] 내 보폭으로 걷는 인생 ​ 오늘 제주의 하루는 어제와는 다른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 고되고 의미있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젖은 신발을 그대로 신고 걷느라 오른쪽 발에 큰 물집이 잡혔다. 그래도 걸었다. 그 상태로 20키로 이상 더 걸었다.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걷고 또 걸었다. 순전히 내가 걸을 수 있는 나만의 템포로 걸었다. ​나와의 싸움이었다. 삶이 이러하지 않던가. 누군가의 기대 때문에 내 보폭대로 걷지 못해 힘겨워했던 나날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몰아붙였던 수많은 나날들. 그래서 홀로 걷는 건 의미가 있었다. 내 안의 법을 세워 멈추고 나아갈 때를 스스로 판단하는 것! 삶에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판단 주체를 깨닫는다. '나'이면서 '신'의 음성이기도 한 이것을 발에 새겨.. 2017. 4. 7.
[에세이] 사람은 떠나봐야 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유쾌하지 않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를 알아가는 것이 에너지 소모를 일으킨다는 걸 경험한다. 열정이 식어간다는 증거다.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나를 내맡길 수 없어 낯선 곳에 스스로를 두어본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자. 작년부터 시작된 제주 올레길 순례는 낯선 이들과 만나는 파티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제도 그런 하루를 보냈는데,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먼저 다가감에 기분 좋은 미소로 자신을 내보인다. 번잡한 도심에서는 발생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 돌풍과 폭우를 선물로 준 5코스의 끝에 두 번째 숙소에 도착한다. 그곳은 남원읍! 잠시 잊었던 건 도심지를 벗어난 제주는 해가 지고 나면 금세 암흑으로 바뀌고 숙소를 활용하지.. 2017. 4. 6.
[사진 에세이] 4월의 제주 ​​ ​ ​ ​ 5월을 위해 4월에 떠난다. 서울의 하늘은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는데 높고 높은 하늘 위는 이토록 맑기만 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이 이렇게 다르다는 건 인간이 살아내야 할 또 하나의 신비이리라. 우리네 삶에 드리워진 구름이 있을까. 구름 위 맑은 하늘을 대면하기까지 우리는 또 얼마나 어둔 구름 먹구름을 비우고 씻어내야 할까.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본 바다의 푸름이 우리 마음 속의 푸른멍은 아닐까.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던 지난 시절 내 안의 언어들, 감정들. 신빌은 신지 않고 모셔두면 썩기 마련이란다.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 상하기 마련인 것을. 제 값을 찾아 주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 무엇이 기다릴지 예감은 접어두고 순간에 힘을 실어준다. 4월의 고통을 지닌 제주는 그럼에도, 넉넉.. 2017. 4. 5.
[에세이] 걷는다는 건 흔히 사람들은 '글자를 발로 썼냐'며 놀리곤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발로 쓴 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직한 지를 말이다. 울림이 있는 말,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글은 그 사람의 발이 닿았던 현장의 언어들이 아니었는가? 두 발로 걷는다는 건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스승님께서는 걷기란 나뉘고 분열된 땅 혹은 세상을 두 발로 잇는 행위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걷고 또 걷나 보다. 나뉘고 분열된 자아를 다시 찾기 위해, 세상이 하나의 공동체였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무릎의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일상에 틈을 내 걷고 싶다. 그래서 길 없는 그 어딘가에 새로운 길 하나 내고 가면 잘 산 인생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ww.yo.. 2017.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