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6 청파교회 새벽설교
참된 금식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
<이사야서 58장 6-7절>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7.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포로에서 해방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서 58장입니다.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사야서 56-66장에서는 이야기를 듣는 청자가 바뀌게 됩니다. 바로 이전까지(이사야서 40-55장)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대상으로 한 메시지가 그 중심이었다면, 마지막 단락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사야서 56-66장에는 포로에서 해방된 유대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의 임금이었던 고레스는 포로로 잡혀 있는 포로민들을 대상으로 칙령 하나를 내립니다. 그 칙령은 유대 민족에게 이제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서 망가진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에스라>, <느헤미야>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서 55장과 56장 사이에는 아주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사야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대상을 향해 다시 메시지를 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열 한 장의) 이사야서가 예언자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는지 아니면 여러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는 편의 상, 마지막 단락을 기록한 이사야를 제3이사야 혹은 세 번째 이사야라고 부릅니다.
반복되는 실수
포로에서 귀한 한 유대 민족의 삶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해방은 되었지만 정착하기까지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유대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의 영역 다툼, 유대 땅에 살고 있던 이들 가운데 우상 숭배에 참여한 자들과의 조화 그리고 유대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의 신앙의 온도 차이 등 성전 재건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사는 문제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둔 채 오늘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마지막 단락인 이사야서 56-66장은 기쁨과 감사, 즐거움의 이야기로 채워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본문을 읽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귀한하고 나서의 갖가지 갈등들을 해결해야 했지만, 그보다 유대 백성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통해 드러납니다. 유대 백성은 주님의 보호 아래 있었음에도 감사를 잊은 채 제멋대로 행했습니다. 그 일의 결과가 바빌론의 포로생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향 땅으로 돌아 온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했음에도 그 기억을 잊은 채, 다시 주님 앞에 죄를 범합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를 하거나 하나님의 계명을 가볍게 여기는 행동을 헀습니다. 그러니까 유대 민족은 주님께 받은 은혜를 쉽게 망각한 것입니다. 이들은 과연 바빌론 포로 사건과 해방 사건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가르칠 도리가 없다
공자의 《논어》 <계씨(季氏)>편을 보면, 네 종류의 인간형이 나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다음이며, 곤란을 겪고 나서야 배우는 사람이 또 그다음이다. 곤란을 겪고 나서도 배우지 않는 것은, 백성들이 바로 그러한데, 이는 하급이다.” 어떤 이(신형철)는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 말한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과 마지막에 말한 ‘곤란을 겪고 나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이는 가르칠 ‘필요’가 없고, 곤란을 겪고도 배우지 않는 이는 가르칠 ‘도리’가 없”기 때문이라며 말입니다. 유대 민족이야 말로 ‘곤란을 겪고도 배우지 않는 이들’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행한 일의 결과를 반면교사 삼지 못했습니다.
이기적인 금식
오늘 본문에는 다시 반복된 죄악 가운데 ‘금식’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변질되어버린 금식이 아닌 참된 금식이 무엇인지를 친절히 알려주십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강력히 요청합니다. 목소리를 높여서 유대 백성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힘껏 외치라고 명합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어 힘껏 외쳐라. 주저하지 말아라. 너의 목소리를 나팔 소리처럼 높여서 나의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알리고,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려라.”(1) 주님은 이어서 유대 민족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십니다. 주님은 2절을 보면, 유대 민족이 ‘마치 공의를 행’한 것처럼 여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같은 2절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렸다고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 금식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유대 민족은 공의를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규례도 저버렸으며,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도 거룩한 금식에 참여하고 있던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을 하나도 갖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특별히 금식에 관해 추가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유대 민족은 이기적인 형태의 금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 변명을 대며 금식의 불필요함까지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변명은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합니까? 주님께서 알아 주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행을 하겠습니까?”(3) 그들은 주님의 시선이 자신들로부터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유대 민족은 기대를 품고 고향 땅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가 가득한 것을 보며 불만을 가진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참된 금식과 하나님의 뜻
이사야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사야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성경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진정한 금식이 무엇인지 정확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6)
이사야가 전한 주님의 말씀은 굉장히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의 욕구를 그치고, 욕구를 채우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이 바로 ‘금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존에 알던 금식에서 벗어나 금식에 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 금식에 관한 정의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6절의 말씀입니다. “부당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의 말씀입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나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9절 말씀입니다.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고,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금식에 관한 여러 가지의 정의를 내려주셨지만, 금식이란 간단히 말해서 “곁에 있는 사람을 극진히 돌보고, 곁에 있는 사람을 자유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금식에 관한 정의에 아주 급진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다 다루진 않았습니다만, 방금 읽어드린 ‘금식의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8-12절까지는 이러한 금식을 지킬 경우 받게 될 많은 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 58장의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새로운 금식에 관한 정의를 내려주셨지만, 이사야서 58장의 이야기는 금식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안내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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