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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청파 Note / 이사야서 (11)] 내가 곧 새 일을 행하겠다

by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2024. 9. 10.

20240912 청파교회 새벽설교

 

내가 곧 새 일을 행하겠다 

 

<이사야서 48장 6-7절> 

 

6.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보아라. 네가 인정하지 않겠느냐? 이제 내가 곧 일어날 새 일을 네게 알려 줄 터이니, 이것은 내가 네게 알려 주지 않은 은밀한 일이다. 

7. 이것은 이제 내가 창조한 일이다. 옛적에 일어난 것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네가 들어 본 일이 없는 일이다. 네가 전에 이것을 들었더라면 '아, 바로 그 일,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번 일만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의 죄악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서 48장입니다. 이사야서 48장에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온 남왕국 유다 백성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먼저 한 집단을 호명합니다. 그들은 야곱과 그의 후손들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와 싸워 이김으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이라는 말에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뜻보다는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하나님이 승리하길 바라는 염원이 더 크게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의 뜻을 간직한 이스라엘이 주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주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이렇게 부르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를 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진실이나 공의라고는 전혀 없는 자들아, 이 말을 들어라. 스스로 거룩한 성읍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아, 그의 이름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자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이 말을 들어라.”(1-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입에 올리기만 하고, 실제로는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 남쪽 이스라엘 가릴 것 없이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미 주님에 의해 예고가 된 것이었습니다(3). 주님은 예언자를 통해서나 혹은 직접 나타나셔서 죄악 된 길에서 돌이키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예언자의 말도 듣지 않았고, 주님의 심판 메시지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에게 도움을 구하기까지 했습니다(5). 

 

단련의 방식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실망감만 안겨준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6).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보아라. 네가 인정하지 않겠느냐? 이제 내가 곧 일어날 새 일을 네게 알려 줄 터이니, 이것은 내가 네게 알려 주지 않은 은밀한 일이다.”(6) 주님은 이제 새 일을 행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일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 본 일이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거나 한번쯤 경험한 적 있는 일은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번 일만큼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일어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7). 

 

그럼 여기서 말하는 ‘새 일’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하나님의 잔인한 심판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 때문에 내가 분노를 참고, 내 영예 때문에 내가 자제하여, 너를 파멸하지 않겠다.”(9) 주님은 이스라엘을 파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이 닥친 이유가 주님께서 고난의 방식을 택하여 자기 민족을 단련시켰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10). 강대국 바빌론의 위협은 곧 하나님이 선택한 단련의 방식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고난의 시간을 끝내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려고 한 이유는 극심한 고난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없어지거나 멸망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고난을 단련의 도구로 삼으셨던 주님 자신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11). 주님은 이제 자신이 시작한 일을 끝맺으려고 하십니다

 

한계를 아시는 주님

 

하지만 주님은 아무리 고난을 단련의 방식으로 택했다고 하여도 이스라엘의 지난 과오를 모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네가 성실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네가 모태에서부터 반역자라고 불러 마땅한 자로 태어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내가 너를, 듣지도 못하게 하였고, 알지도 못하게 하였으며, 옛적부터 네 귀가 트이지도 못하게 한 것이다.”(8) 주님은 인간의 한계 또한 잘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말씀 초반부에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 “너는 완고하다. 네 목 힘줄은 쇠붙이요, 네 이마는 놋쇠나 다름없다.”(4)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죄가 커서라기보다는 그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은 백성들의 연약함을 아셨고, 그것이 주님께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바빌론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민족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방식으로 한 사람을 택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입니다(14). 주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일하시겠다는 말씀은 이미 몇 차례 등장한 바가 있습니다. 주님은 고레스를 보시고 ‘너는 내가 세운 목자다. 나의 뜻을 모두 네가 이룰 것이다.’(44:28)라고 말씀하기도 하셨고 또 “나 주가 기름 부어 세운 고레스에게 말한다. (...) 네가 가는 곳마다 한 번 열린 성문은 닫히지 않게 하겠다.”(45:1)라며 고레스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그 바빌론을 멸할 계획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 문단인 17-22절에는 주님께서 보내신 이사야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에 안타까움을 표현하면서도(18) 이에 실망하지 않고, 자기 민족을 바빌론의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약속하십니다. 

 

새 일을 행하실 주님

 

오늘 함께 나눈 이사야서 48장의 중심 메시지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남왕국 유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지난날 주님과 함께 했던 평화로운 과거시절을 뒤로한 채,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후회하며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예언자가 나타나 해방을 선포한 것입니다

 

주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보내어 포로 생활 중인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곧 해방시켜 줄 것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 때문에 크게 실망하셨지만, 사람이 그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 일을 행하십니다. 그 일은 포로생활에서의 해방입니다. 끝없는 어둠의 시간을 보내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 줄기 빛이 비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던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주님은 우리의 약함을 다 헤아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네가 모태에서 성실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계셨고 또 “네가 모태에서부터 반역자라고 불러 마땅한 자로 태어날 것”(8) 또한 이미 알고 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두 번째 사실은 주님은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를 단련시킨다는 사실입니다(10).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급적 고난이 비껴가길 바랍니다. 고난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난의 방식을 통하여서 우리를 단련시키고 정련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고난 속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약함을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고난을 당한 우리의 처지도 잘 헤아리실 것입니다.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게 없는 것이 신앙 안에서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되, 주님이 우리를 향한 새 일을 계획하고 계심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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