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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청파 Note / 이사야서 (9)] 주님께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by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2024. 8. 28.

20240829 청파교회 새벽설교

 

주님께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이사야서 38장 3절> 

 

3. 이렇게 아뢰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 한 것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히스기야는 한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죽음의 때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서 38장입니다. 이사야서 38장은 이사야서 36장에 등장한 남왕국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오늘의 첫 이야기는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남왕국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열왕기하에 등장한 바 있습니다(열하 18장). 그리고 그가 병들었던 이야기도 열왕기하 20장에 등장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오늘 이사야의 서술방식으로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히스기야는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언자 이사야가 나타나 당신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는 수심이 가득한 채로 주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 한 것을, 기억하여 주십시오.”(3) 히스기야는 자신을 죽음에서 건져달라고 (직접적으로) 기도하진 않았지만, 그의 기도의 내용은 자신의 수고와 애씀을 보더라도 죽음이 자신을 지나치게 해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한참을 흐느껴 울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죽을 때를 안다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가,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떠날 때를 안다면,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 거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죽음의 때를 알게 되더라도 과연 그때가 다가올 때 평안히 떠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히스기야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신이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슬픔에 겨워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

 

히스기야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인지 주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사야에게 말합니다. “너는 되돌아가서, 히스기야에게 일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고, 네가 흘리는 눈물도 내가 보았다.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고,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5) 주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목숨을 15년 더 연장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마디의 말씀을 더 하시는데, 우리는 주님의 이러한 응답을 보고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목숨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시며, 예루살렘을 앗시리아의 왕에 손에서 구해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린 사건은 단지 개인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앗시리아에 의해 곧 멸망당하게 될 이스라엘의 운명의 문제로도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을) 해석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 좋은 자의 죽음

 

이어서 9-20절에는 병에서 회복된 히스기야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기도이자 한 편의 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도의 내용은 열왕기나 역대기에 등장하지 않고, 오직 이사야서에만 등장합니다

 

먼저 9-19절에는 그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 죽게 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쉬운 마음에 ‘남은 여생을 빼앗긴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10). 당시 사람들은 이른 나이에 죽는다는 것을 벌 혹은 죄와 연결 지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래 사는 사람을 자연스레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더 억울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온전하게 살아왔다고 여겼는데, 그 일의 결과가 이른 죽음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그저 옛이야기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른 나이에 죽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죄가 많아서 일찍 죽은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가 당한 고난과 슬픔, 죽음을 죄와 연결 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픔을 당한 사람이나 그의 가족들을 판단할 권한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도 그런 판단의 권한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통쾌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이 들면,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잠언의 저자가 한 말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고, 그가 걸려서 쓰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좋지 않게 여기셔서, 그 노여움을 너의 원수로부터 너에게로 돌이키실까 두렵다.”(잠 24:17-18) 물론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되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진짜 아쉬움

 

히스기야는 또한 자신의 이른 죽음 앞에 인간적인 입장에서의 아쉬움도 점점 커져 갔습니다. 그는 사람이 사는 땅에서 다시는 주님을 뵙지 못할 것이고 또 이 세상을 사는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이 땅에서 볼 수 없음에 아쉬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스올(죽음/무덤)에서는 아무도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없다며, 자신이 살아 있어야만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가는 것에 몹시 슬퍼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물러갔고 다시 생명을 얻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를 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사는 날 동안, 우리가 주님의 성전에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20) 히스기야는 다시 살게 한 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찬양을 드리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히스기야의 회복은 곧 남왕국 유다의 회복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른 죽음에 대한 히스기야의 아쉬움은 곧 남왕국 유다의 멸망에 대한 아쉬움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기억 창고

 

오늘 우리는 이사야서 38장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사야서 28장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추가적으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38장에는 남왕국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의 죽음 소식하나님의 응답이 등장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예언자 이사야로부터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는 슬프고 충격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무척 억울했습니다. 그는 아직 중년의 나이였고, 그의 이른 죽음은 곧 죄 혹은 벌과 연관되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살아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주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런 수고의 결과가 이른 죽음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억울한 마음을 주님께 진솔하게 아룄습니다. 주님은 그런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의 죽음이 그를 비껴가게 된 것을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곧 남유다 왕국이 처한 상황으로도 우리는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의 생명의 기한이 다한다는 말은 곧 남왕국 유다가 주님의 길에서부터 벗어난 일의 결과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주님의 기억력은 매우 뛰어납니다. 주님은 평소 우리가 한 선한 행위들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썼던 모든 것은 주님의 기억 저장소에 다 저장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께 어떤 존재로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주님의 기억 창고에 이 땅을 아름답게 가꾼 자들로 기억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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