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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청파 Note / 이사야서 (6)] 자기 백성을 상대로 싸우실 주님

by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2024. 8. 14.

20240815 청파교회 새벽설교

 

자기 백성을 상대로 싸우실 주님

 

<이사야서 28장 21-22절> 

 

21. 주님께서는 계획하신 일, 그 신기한 일을 하시려고, 브라심 산에서 싸우신 것처럼 싸우실 것이다. 작정하신 일, 그 신비한 일을 하시려고, 기브온 골짜기에서 진노하신 것처럼 진노하실 것이다. 

22. 그러니 너희는, 내가 경고할 때에 비웃지 말아라. 그렇게 하다가는 더욱더 궁지에 몰리고 말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온 세상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셨다는 말씀을, 내가 들었다. 

 

 

서론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서 28장입니다. 우리는 어제까지 우주적 규모의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다루었습니다. 전 세계에 닥칠 하나님의 심판이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묘사되었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하나님은 심판에만 목적을 두지 않으셨고 구원과 회복에 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부터 나누게 될 이사야서 28장부터 39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시선이 다시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민족이었던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 다시 한번 심판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먼저 북이스라엘 향한 심판 메시지가 등장하고, 뒤이어서 남유다를 향한 심판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

 

먼저 이사야는 오늘 본문 1-4절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술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인 너 사마리아야, 너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술에 빠진 주정꾼의 도성, 기름진 평야의 높은 언덕에, 화려한 왕관처럼 우뚝 솟은 사마리아야, 시들어 가는 꽃 같은 너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1) 이사야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일러 ‘술에 취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이어서 사마리아를 면류관, 기름진 평야, 화려한 왕관이라고 묘사하는데,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번영과 영화로움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그만큼 부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늘 그러하듯 부요함은 교만함으로 이어지는 법입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북왕국의 오만함을 고발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곧 북왕국 이스라엘에 재앙이 닥칠 거라고 예언합니다. 주님께서 강하고 힘 있는 자들을 보내셔서(2) 북왕국을 땅에 쓰러뜨리실 것이고(2) 또 그들은 짓밟히게 될 것이며(3) 그리고 마치 꽃과 같이 사람들에 의해 꺾이고 말 것이라고(4) 이야기했습니다. 

 

남왕국 유다를 향한 경고

 

이어서 이사야는 7절 이후부터는 남왕국 유다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유다 사람이 포도주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독한 술에 취하여 휘청거린다. 제사장과 예언자가 독한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포도주 항아리에 빠졌다. 독한 술에 취하여 휘청거리니, 환상을 제대로 못 보며, 판결을 올바로 하지 못한다.”(7) 이사야는 현재 유다 사람뿐만 아니라 남유다의 제사장과 예언자들 모두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휘청거린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술에 취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술에 취했다’라는 말은 실제로 술을 많이 마셔서 분별이 흐려졌다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주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제대로 돌보지 않은 상태’를 일컫습니다. 이사야는 대담히 남유다의 지도자들과 대결 구도를 펼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바른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향해서 하는 바른 소리 혹은 쓴소리를 듣기 어려워합니다. 지도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남왕국 유다의 지도자들은 이사야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누구나 아는 뻔한 얘기를 한다며, 몹시 불쾌해했습니다. 

 

이사야는 13절에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차브 라차브, 차브 라차브, 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 제에르 샴, 제에르 샴.”(13)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이미 10절에서도 등장한 바 있는 말인데, 제사장들은 이사야가 자신들을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 듯 대한다고 여겼습니다. 방금 읽어드린 이 낯선 언어는 히브리 말인데, 이 말은 아마도 부모나 선생이 어린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때 하는 소리나 혹은 어린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면서 내는 소리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사야가 남왕국 지도자들에게 이런 어린아이의 말을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왕국 지도자들은 이사야가 하는 말은 이미 자신들이 다 아는 말이었고, 자꾸 뻔한 이야기를 한다며 몹시 불쾌해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시를 당한다고 여겼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은 잘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는 말이라도 다시 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안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알지만 삶으로 번역해 내지 못한 앎은 참된 앎인가를 우리는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남왕국 지도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앎은 관습화 되어버렸고, 굳어버린 앎은 진정한 의미에서 앎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머릿속에는 주님의 말씀이 가득했지만, 그들의 직접적인 삶과는 무관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삶으로 이어지지 않은 앎의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안전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이들에게 덫을 놓아 잡히게 하겠다고(13)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남왕국 유다의 지도자들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바로 죽음과 언약을 맺었고, 스올과 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죽음과 언약을 맺었고 스올과 협약을 맺었다. 거짓말을 하여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고, 속임수를 써서 몸을 감출 수도 있으니, 재난이 닥쳐와도 우리에게는 절대로 미치지 않는다.”(15)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죽음 혹은 스올과 언약을 맺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추측하건대 남왕국의 지도자들이 주변국들과 정치적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을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이러한 협약을 통하여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반박하며, 주님이 하신 말씀을 근거로 삼습니다. 이사야는 주님이 스스로 시온과 맺은 언약을 신뢰하는 자만이 삶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16).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얼마나 견고한지 시험하여 본 돌이다. 이 귀한 돌을 모퉁이에 놓아서,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16) 주님은 시온에 주춧돌을 놓을 것이고, 이 돌을 중심으로 기초를 세울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이 주춧돌을 메시아와 연결 짓기도 했습니다. 이 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주춧돌을 메시아 전통에서 보아도 좋고,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주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참된 안전을 누리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고 신비한 일

 

주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신기하고 신비한 일을 행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신기하고 신비한 일은 주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매우 슬픈 일이었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셨습니다.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주님은 이제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지 않고, 자기 백성을 상대로 싸우십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일을 일러 신기하고 신비한 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계획하신 일, 그 신기한 일을 하시려고, 브라심 산에서 싸우신 것처럼 싸우실 것이다. 작정하신 일, 그 신비한 일을 하시려고, 기브온 골짜기에서 진노하신 것처럼 진노하실 것이다.”(21) 여기서 ‘브라심 산에서 싸운 일’은 사무엘하 5장 17-21절에 등장한 이야기를 말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주님은 다윗을 통해 블레셋 군대를 무찌르셨습니다. 그리고 ‘기브온 골짜기에서 진노하신 일’은 여호수아 10장에 등장한 이야기인데, 이 사건은 주님이 태양을 하늘에 머물게 하셔서 여호수아가 아모리 군대를 무찌를 수 있게 도왔던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두 사건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해 이방 민족을 무찌르고 구원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주님은 그들로부터 돌아서서 온 세상을 멸하시기를 결정하셨습니다(22). 

 

결론

 

오늘 우리는 이사야서 28장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사야서 28장부터는 다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가 등장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던 사실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앎도 관습화되면 굳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삶으로 살아내지 않는 앎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따름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님은 늘 우리가 돌아설 수 기회를 마련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 가까이 표지를 마련하셔서 그것을 통해 다시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던 주님이 우리를 상대로 싸우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의 인생을 다시 구성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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