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2024. 6. 14. 00:59Salon

 

2024.6.13. 

 

선글라스를 두고 왔습니다. 퇴근길에 한참을 걷다가 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선글라스를 두고 온 것입니다. 요즘 참 햇살이 강렬합니다. 요즘같이 눈이 부신 날에 선글라스는 아주 제격입니다. 

 

선글라스를 제 돈을 주고 산 것이 재작년이 처음입니다. 얻어 쓴 선글라스는 있었어도 제 돈으로 선글라스를 살 생각을 안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 여행을 앞두고 큰맘 먹고 선글라스를 샀습니다. 제게 찾아온 그 선글라스는 여행을 마치자, 안경 케이스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습니다. 

 

문득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싼 돈 주고 산 선글라스를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해외여행 때만 쓴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려받은 선글라스도 평소에 쓰고 다닌 적이 없던 터라 그리고 왠지 평소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하는 소극적 마음에 그 친구는 늘 여행할 때만 등장했습니다. 평소 선글라스를 써서 강렬한 햇살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게 좋을뿐더러 외국인들은 평소에 늘 착용하는 그 선글라스를 너무 유별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부터 평소에도 자주 쓰고 다녔습니다. 

 

작가 함돈균이 쓴 <사물의 철학>에서 재밌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선글라스에 관한 고찰이었는데, 그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실린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에 관해 들려줬습니다. '선글라스를 쓴 채 비키니를 입은 여자와 이슬람 전통에 맞춰 베일을 두른 여자 중에 누가 더 자신을 잘 가린 것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논의는 그녀가 자기 모습을 얼마나 잘 숨겼는가가 아니라,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이슬람 전통에 맞춰 베일을 두른 여자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훨씬 자신을 잘 숨긴 것 같으나 실상은 비키니를 입은 여인의 그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에 오히려 비키니를 입은 그녀가 시선의 전능성을 획득하여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가 사뭇 진지해졌습니다. 그러니까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퇴근길에 선글라스를 두고 와서 매우 아쉬웠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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