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8일 화요일
"영감은 창작의 실마리가 아니라 매듭이다. 고민하고 애쓰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창작자의 작업실로 찾아와 한 세계를 완성하게 하는 것이 영감이다. 용 그림의 눈동자는 마지막에 찍힌다. 신은 흙으로 만들어진 형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 역은 아니다. 창작자의 고민과 수고의 산물인 흙의 형상이 있어야 신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영감에 의지해서 자동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작가의 지난한 수고의 과정 속으로 영감이, 은총처럼 임한다."
새로운 이야기다. 나는 영감을 전해주는 요정 '뮤즈'가 찾아와야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쓰고 그리고 만드는 모든 (창조) 행위자는 영감을 받아서 그 일을 시작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정확히 그 반대의 관점에 서 있다. <원형의 폐허들>에 그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한 사람을 꿈꿔 그 사람을 현실 속에 내보내려고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그 일에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다가 미지의 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그 일에 성공한다. 바로 이 마지막에 등장한 미지의 신이 곧 영감이다. 영감이 처음부터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없지는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감은 마지막에 등장하여 그 일을 완성하게 한다. 중요한 사실은 미지의 신은 한 사람을 꿈꿔 그를 현실 세계 속에 내보내려던 이의 고군분투가 없었으면 나타나지 않았을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감이란 창작의 실마리가 아니라 바로 매듭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