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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24)] 나는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20240307 청파교회 새벽설교

 

나는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시편 119편 9-16절> 

 

9. 젊은이가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 그 길뿐입니다. 

10.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1. 내가 주님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합니다. 

12. 찬송을 받으실 주님, 주님의 율례를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3. 주님의 입으로 말씀하신 그 모든 규례들을, 내 입술이 큰소리로 반복하겠습니다. 

14. 주님의 교훈을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산을 가지는 것보다 더 큽니다. 

15. 나는 주님의 법을 묵상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 가겠습니다. 

16. 주님의 율례를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편 119편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119편입니다. 시편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긴 장수를 가진 책입니다. 총 150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가장 긴 장을 자랑하는 이 시편 안에 내용이 가장 짧은 장내용이 가장 긴 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17편이 두 절로만 이루어져 있는 가장 짧은 장이고, 오늘 함께 나눌 시편 119편이 176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가장 긴 장입니다. 

 

176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이 긴 시편 119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시편 119편율법에 대한 노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자세히 말하면 토라를 말하는데, 시편 119편은 이 토라와 관련하여 총 22개의 노래가 담긴 노래 모음집인 것입니다. 토라는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를 포함하는 율법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섯 권의 책 묶음인 토라의 기저에는 ‘가르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토라의 참의미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잠시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토라율법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토라율법을 가리키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율법에 대한 이미지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옛 것이고, 지나간 것이고,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시편 119편을 기록한 시인에게 이 토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그에게 토라하나님의 살아 있는 생생한 말씀입니다. 사람을 얽어매는 규정집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 가깝게 연결해 주는 책인 것입니다. 토라의 핵심은 어려운 데에 있지 않습니다. 토라의 핵심자기 인생이 선물임을 알고, 하나님께 받은 이 선물 같은 삶한껏 누리고 기뻐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토라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삶의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등불

 

오늘 본문을 보면, 토라를 상징하는 말들다양하게 등장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법(법도), 율례, 계명, 말씀, 교훈, 길, 법도, 규례, 증거, 판단 등모두 토라를 가리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이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모든 사람생기로 가득 차게 만듭니다

 

본문 전체는 매우 길기 때문에 몇 군데만 추려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9-16절을 보면, 시인자신을 젊은이로 묘사하며, 젊은이자기 인생을 깨끗하게 살기 위해서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젊은이가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 그 길뿐입니다.”(9) 시인은 불안합니다. 자기 앞의 인생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합니다. 그리고 요청합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 주시고(10), 주님의 율례를 가르쳐 달라고(12) 말입니다. 

 

시인삶의 온갖 문제불확실함 가운데서 의지할 곳은 주님의 말씀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사실 사람길이 뚜렷해 보일 때두려울 게 없습니다. 자기 확신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앞이 캄캄할 때입니다. 인생길이 막막할 때홀로 그 길을 뚫고 나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럴 때등불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105절에서 주님의 말씀자기 발에 등불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물론 등불대낮의 해처럼 밝은 빛을 비출 순 없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순간을 벗어나게 하기에는 충분한 불빛이 되어줍니다. 시인에게 등불바로 주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등불과 같은) 이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중요한 시기젊은 시절을 넘어서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 고난과 위로

 

그러나 시인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킨다고 하여 고난이 없지 않음도 잘 알았습니다. 시인이 살던 당시에도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주님, 주님의 판단이 옳은 줄을, 나는 압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고난을 주신 것도, 주님께서 진실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75) 시인의 믿음은 성숙했습니다. 시인은 주님께서 고난을 통하여서도 자기 뜻을 전하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고난 앞에서도 시인은 흔들림 없는 믿음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인에게 주님의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아무리 자기 의지가 강하다고 하여도 홀로 고난을 견디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인은 말합니다. “주님의 종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시오.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이니, 주님의 긍휼을 나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새 힘을 얻어 살 것입니다.”(76-77) 시인은 고난 앞에 다른 위로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의 법에서 자신이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법이 약속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길 또한 바랐습니다. 

 

주님의 말씀: 두 개의 응답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살펴볼까 합니다. 시인의 고백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주님의 말씀두 개로 나눠서 표현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고통 중에 있던 시인은 주님께 간구합니다. 주님의 율례들을 굳게 지키겠으니, 수렁에 빠진 자신속히 구원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갈망하여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울부짖으며, 주님의 말씀 묵상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147-148) 

 

시인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방식두 개로 나눠서 요청합니다. 먼저 첫 번째한 사람에게만 응답하시는 개인적인 응답입니다. 방금 읽은 147절에서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갈망하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곧장 주님이 응답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어떤 음성이든 좋으니, 어떤 반응이든 좋으니 속히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모두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응답입니다. 시인은 148절에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밤을 지새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시인이 의지한 말씀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토라를 가리킵니다. 시인말씀을 묵상할 터이니, 기록된 말씀으로 응답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우리는 시인의 이 고백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방식으로도 응답하시는 분임을 알게 됩니다. 

 

즐거움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긴 책시편 119편을 대략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시인은 자기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바로 주님의 말씀, 즉 토라였습니다. 시인에게 토라는 옛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 생동감 넘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이 토라의 말씀에 의지해서 삶의 위기를 넘기고자 했습니다. 

 

시인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의무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바로 즐거움이었습니다. 시인말씀을 자기 삶의 기둥으로 삼은 것은 누군가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의 선택이었습니다. 시편 119편에는 주님의 말씀기쁨이요 즐거움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시인주의 말씀을 등불로 삼은 것자신이 원했기 때문이고, 그 원함에는 강요나 강제가 일절 없었습니다

 

시인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즐거움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무거운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본능과 욕망, 욕심의 반대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주님께 우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길 바라야 합니다. 그런 바람을 지속적으로 드릴 때, 언젠가 주의 말씀우리 안에서 기쁨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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