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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2부 설교] 무관한 존재는 없다

20240317 청파교회 2부 설교

 

무관한 존재는 없다

 

<누가복음 19장 1-10절>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세상 죄를 지신 분

 

참 좋으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이 40일이라는 시간 동안 점점 더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의 깊이에 다가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과 더 잘 연결되기 위해 늘 해오던 것들을 내려놓고, 절제하면서 내 안에 불순물들을 잠잠히 가라앉힙니다

 

사실 예수께서 당하신 이 고난이라고 하는 것특별하고 유별난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분이 당하신 고난의 핵심바로 사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은 예수와의 첫 만남 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요 1:29) 우리는 예수를 일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분’, ‘세상 짐을 지고 가는 분’이라고 묘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예수’, ‘세상의 짐을 지고 가는 예수’라는 말속에는 예수님세상의 모든 고통과 무관하지 않은 분이라는 사실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이러한 행적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가운데에서 한 가지의 일화에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삭개오 이야기

 

누가복음 19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삭개오예수가 만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성경 본문 가운데에는 참 난감한 본문들이 있습니다.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너무 식상한 본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삭개오 하면, 곧장 떠오르는 결론이 있습니다. ‘삭개오의 절박함’ 혹은 ‘예수님의 은혜’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이런 본문설교자를 참 난감하게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에는 깨우침이 깃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삭개오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오늘 본문을 통해 삭개오의 절박함, 주님의 은혜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삭개오의 일화를 조금 비틀어 살펴보기도 할 예정입니다. 

 

세관장 삭개오

 

예수께서는 여리고에 계셨고, 길을 걷던 중이셨습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예수께서 길을 지나는 그 시간삭개오라는 인물예수가 지나는 길목에 나타난 것입니다. 성경은 삭개오가 ‘그곳에 있었다’라고 담백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그곳에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삭개오자발적으로 그곳을 찾아왔습니다. 왜냐면, 예수가 등장하자마자 그는 예수를 보기 위해 곧장 어떤 태도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의 직업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는 세관장이었습니다. 개역개정은 세리장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관이라 함은 '세금을 걷는 관리'를 뜻하는데, 삭개오는 이러한 세관들 가운데에 우두머리인 세관장이었습니다. 이 세관장은 지금으로 말하면 세무서장이나 지방국세청장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삭개오는 이 직업이 주는 보상인 부요함을 잘 누리며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삭개오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단순히 돈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샀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가진 직업적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몇 가지 세금 제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제사장들을 위한 종교세를 내야 했고 그리고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을 위한 제국세까지 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서민들은 안 그래도 (경제적으로) 빠듯한 일상을 살았는데, 여기에 불합리한 세금까지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관장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세금을 거두는 과정 중자기 잇속을 채우기 위한 별도의 금액을 걷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관장로마라는 든든한 백을 가지고 있었기에 누구도 이들의 횡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삭개오뒷돈을 챙겼든 안 챙겼든 간에 사람들에게 있어서 삭개오는 직업적 특성상 미움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행동

 

그런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조금의 부족함도 없던 삭개오어쩐 일인지 예수를 만나고자 나타난 것입니다. 삭개오예수께서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떤 내면의 강한 충동에 이끌려 길거리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삭개오키가 작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인파에 가려져 있는 예수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열심히 달려서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앞질렀습니다. 그리고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그의 신분세관장이었습니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일반 서민들이 입은 옷달랐을 것입니다. 아마 꽤 비싼 옷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식으로 말하면 고급 정장을 입고 있던 그가 예수를 보겠다고 나무를 타고 올라간 것입니다. 

 

삭개오 안에 있던 무언가그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의 안에 있던 어떤 간절함이 체면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대체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을까요? 사람들에게는 몸의 언어가 있습니다. 사람은 안에 있는 것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의 행동을 보며, 그가 살아온 삶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됩니다. 

 

그는 (말씀드린 대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족함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삶의 무의미성입니다. 그가 삶의 의미를 잃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아마 그의 마음허무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가 사회 내에서 가진 역할로 인해, 그의 곁에는 참다운 벗, 믿을 만한 사람, 속 이야기를 나눌 참다운 사람 하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느꼈습니다. 산다는 게 경제적 풍요가 전부가 아님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에게서 참다운 인생에 대한 힌트를 엿보았을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마음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 위로 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삭개오와 예수의 만남

 

길을 걷던 예수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을 느낍니다. 예수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삭개오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는 아주 찰나였지만 그의 행동을 보며, 단번에 그의 속마음까지 알아차렸습니다. 그러고는 군더더기의 말도 없이 삭개오에게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너의 집에서 묵어야겠다.”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 삭개오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긴 했지만, 그에게 허락된 것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곳에 있는 수많은 인파 가운데서 자신을 지목하여 오늘 저녁 그대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역으로 예수에게 초대를 받은 삭개오체면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나무에서 내려와 기쁨으로 예수를 맞이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의 주변에는 예수에게 호감을 느낀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의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수에게서 돌아서서 그를 험담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이 늘 원하는 대로 행동해 주길 바랐습니다. 예수는 자신들의 인식의 범위 안에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는 죄인들과 어울려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을 지켜야 할 그 예수께서 선을 넘어 죄인인 삭개오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순수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맑고 커다란 정신

 

다음은 상황이 빠르게 변하여 삭개오의 집이 등장합니다. 삭개오의 집으로 돌어간 예수그의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고요히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삭개오예수께서 묻지도 않으셨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8) 

 

8절의 이야기를 보면, 삭개오다른 세리장들과 달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장이었지만, 어두운 방식으로 돈을 모으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는 삭개오에게 어떤 질문이나 훈계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저자 누가예수의 질문을 삭제했다고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그러합니다. 맑고 커다란 정신과 마주하면, 절로 속의 것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예수는 아무런 질책꾸중도 하지 않았지만, 삭개오자기 속에서 솟아 나오는 말막을 순 없었습니다. 그렇게 삭개오 속에서 솟아난 이야기를 들은 예수다른 어떤 군더더기의 말도 붙이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9-10) 

 

(1) 삶의 의미와 절박함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는 이 삭개오의 이야기에서 두 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삭개오가 한 행동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예수께서 여리고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중요한 것그가 자발적으로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시켜서는 이런 행동을 하긴 어렵습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고, 가진 것도 많은 사람체면도 내려놓은 채, 한 사람을 보기 위해 나무 위를 올라갔다?

 

삭개오절박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올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공허했습니다. 그의 삶무의미했습니다. 그는 나름 윤택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외로웠습니다. 홀로 걸으면, 어디든 빨리 갈 순 있어도 쉽게 길을 잃기 마련입니다. 물론 사람홀로 걸을 때도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넘어서야 할 일들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홀로 걷는 것타인들과 함께 걷기 위한 준비 시간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깨달았습니다. 삶의 의미경제적 풍요에만 있지 않음을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존재를 통하여 새로운 삶이 존재할 수 있음을 엿보게 된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이러한 삭개오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그의 절박함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2)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이번에는 우리의 시선삭개오에서 예수에게로 옮겨볼까 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두 번째 의미바로 예수께서 한 행동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삭개오의 행동그의 눈빛으로부터 본 것이 있었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누군가의 신체와 접촉이 되거나 혹은 그의 옷깃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런 내용이 등장합니다. 삭개오를 바라본 예수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예수께서삭개오라는 존재가 살아온 삶의 이면자기 가슴으로 깊이 느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 삭개오의 삶의 흔적아픔을 보아낸 것입니다. 

 

삭개오가 입은 옷일반 서민들이 입은 옷달랐습니다. 예수께서도 의복과 관련된 신분의 차이를 모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꽤 높은 위치에 있던 한 사람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뭔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행동을 보며, 예수는 다시 한번 알아차렸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음을 말입니다. 

 

무관한 일은 없다

 

두 번째로 나눈 이 이야기를 두고, 잠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이렇게 공감을 잘하시고 또 누군가가 처한 상황을 잘 헤아리셨을까를 말입니다. 단순히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면, 뭔가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셨던 예수님늘 노력하고 애쓰셨다는 게 중요합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기도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합니다. 예수님결정적인 순간마다 기도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도 기도하다가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고(3:21), 열두 제자를 모을 때도 산으로 올라가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6:12). 그리고 산에서 변모하실 때도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9:29). 그러니까 예수에게 있어서 기도는 곧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일이자 사역의 뿌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기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깨달은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세상 어떤 일도 자신과 무관한 일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는 삭개오의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수참 하나님이셨지만 또한 참 사람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사는 이들의 한계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삭개오에게 선뜻 다가가셨고, 그가 먼저 삭개오를 초대한 것입니다. 

 

많이 산 사람들

 

여러분! 또 제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팔불출이라고 너무 미워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육아가 현재 제게 가장 살아 있는 에피소드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저희 집 아기아직 돌이 안 됐는데, 다른 아기들보다 좀 일찍 어린이집을 가게 됐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기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니까, 평소에 관심이 없던 일들이 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잘 지낼까?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까? 이상하고 무시무시한 선생님을 만나서 험한 일을 당하는 건 아닐까?” 등등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예전에 뉴스에서 아기들에 관한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때면, 슬프다는 생각은 들었어도 가슴 깊이 공감을 하진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하니까, 뉴스의 일들이 모두 제게 일어날 일들처럼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시간이 흐르면서 평소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것들점점 나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깊어지고, 무르익는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남의 일나의 일서로 무관하지 않음을 아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가 김연수 씨가 한 말이 제가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이 말이런 말일 겁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뭔지는 압니다. 그러나 그 일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모른 척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이 나의 경험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내 안에 쌓이게 되면, 그 일이제 모르는 일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오래 산 분들만큼 대단한 사람은 많이 살아 본 사람성숙하기 마련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

 

구약에도 종종 누군가의 처지를 헤아리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바로 민수기에 등장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크고 작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 가운데 하나님은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민수기 1장에 첫 번째 인구조사가 이뤄지고, 26장에서 두 번째 인구조사가 이뤄집니다. 두 번째 인구조사이스라엘 민족광야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는지를 반증합니다. 왜냐면, 첫 번째 조사 때와는 달리 인구조사의 대상이 새로운 세대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한 세대를 보내고, 새로운 세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변화의 시기에 맞춰서 새로운 세대를 대상으로 두 번째 인구조사를 실시하십니다. 

 

인구조사땅 분배와 함께 진행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인구조사를 실시함으로 앞으로 열두 지파가 받게 될 땅을 분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각 지파의 인원수대로 수가 많은 지파에는 넓은 땅을, 수가 적은 지파에는 적은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땅을 분배하는 과정 중하나의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므낫세 지파의 자손 가운데에 슬로브핫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슬로브핫아들은 없고, 딸만 다섯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섯의 딸만 남겨둔 채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인구조사땅 분배모두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인구조사에도 남성의 수만 포함됐고, 땅 분배아들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당연히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주어질 유산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슬로브핫의 딸들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찾아옵니다. 그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모세에게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막상 가나안에 들어가더라도 자신들이 정착해서 살 땅보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들은 모세에게 말합니다.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가족 가운데서 아버지의 이름이 없어져야 한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우리에게도 유산을 주시기 바랍니다.”(4) 그녀들의 목소리당당했지만, 속마음매우 떨렸을 것입니다. 

 

깊은 믿음

 

모세는 그녀들의 사정을 헤아려서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한 말이 옳다. 그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너는 그들에게도 반드시 땅을 유산으로 주어라. (...)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두어라. 어떤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유산을 딸에게 상속시켜라.”(7-8) 하나님슬로브핫 딸들의 처지를 헤아리셨고, 그녀들과 비슷한 처지가 될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율법과 규례까지 제정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녀들은 살길이 막막해지자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들은 다른 지파들이 약속의 땅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들은 소외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모두에게 축제와 같은 자리에서 자신들만 소외되었음을 안 것입니다. 그녀들은 고민이 됐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처지를 밝히는 게 맞는지, 그렇게 말하고 나면, 괜히 모세동족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됐을 것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이런 처지의 사람들헤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믿음이 깊다는 것바로 이런 것을 가리킵니다. 다른 이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아는 것 말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이제 곧 고난주간을 보내고 나면, 부활절을 맞습니다. 사순절을 지킨다는 것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애쓴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삶을 통해 세상의 모든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상처도 좋습니다. 축하할 일도 좋습니다. 나의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의 처지부터 헤아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신 말씀 기억하며 거둠의 기도드리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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