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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26)] 어느 편에 서겠는가

20240321 청파교회 새벽설교

 

어느 편에 서겠는가 

 

<시편 129편 1-4절> 

 

1. 이스라엘아, 이렇게 고백하여라. "내가 어릴 때부터, 나의 원수들이 여러 번 나를 잔인하게 박해했다. 

2. 비록 내가 어릴 때부터, 내 원수들이 여러 번 나를 잔인하게 박해했으나, 그들은 나를 이겨 내지를 못했다. 

3. 밭을 가는 사람이 밭을 갈아엎듯 그들이 나의 등을 갈아서, 거기에다가 고랑을 길게 냈으나, 

4. 의로우신 주님께서 악인의 사슬을 끊으시고, 나를 풀어 주셨다."

 

 

그날의 기억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129편입니다. 시편 129편은 ‘이스라엘아!’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이스라엘아!’라는 말은 우리가 앞서 다룬 시편 124편에도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시편 129편은 시편 124편과도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매우 유사합니다. 시편 124편은 한 편의 감사의 시입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을 의인화하여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이 아니셨다면, 우리의 처지는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해 보라고 말했습니다(시 124:1). 그는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덕지금 우리가 목숨을 부재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음을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온 이스라엘 향해 그러한 도움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자고 요청합니다. 

 

시편 129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시인도 이스라엘을 한 명의 사람으로 의인화하여 말합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나의 원수들이 여러 번 나를 잔인하게 박해했다.”(1) 여기서 ‘나’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원수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박해한 대상은 바로 이집트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주 오래전에, 아주 오랫동안 이집트에 종살이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그들은 원수였습니다.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던 가운데, 그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그런데 시인이 정말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이다음에 등장합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비록 내가 어릴 때부터, 내 원수들이 여러 번 나를 잔인하게 박해했으나, 그들은 나를 이겨 내지를 못했다. 밭을 가는 사람이 밭을 갈아엎듯 그들이 나의 등을 갈아서, 거기에다가 고랑을 길게 냈으나, 의로우신 주님께서 악인의 사슬을 끊으시고, 나를 풀어 주셨다.”(2-4) 시인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떠올렸습니다. 원수들은 밭을 갈아엎듯, 사람의 등을 갈아서 거기에다가 고랑을 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마치 밭을 다루듯 다뤘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하나의 비유인데, 아마도 (노예를 감독하는) 감독관들이 노예들을 채찍으로 다스렸던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온 묘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출 2:11; 5:13-14).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은 마주해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시인은 이스라엘의 아픈 과거지만, 그 과거를 다시 기억함으로 떠나보내는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아픔은 시인 개인의 경험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픔은 또한 하나님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옭아매던 사슬을 끊어내 주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오늘의 시인도 시편 124편의 저자처럼 하나님의 도움 때문에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온을 미워하는 사람

 

이어서 시인은 ‘시온을 미워하는 사람’을 호명하는데, 이들은 서두에 등장한 ‘원수들’과 같은 이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온예루살렘의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위치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시온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뜻합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시온을 언급한다는 것은 곧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시인이 시온을 언급했다는 것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기대하는 그의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그는 바로 이 시온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그들이 받을 보상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시온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고 만다. 그들은 지붕 위의 풀같이 되어, 자라기도 전에 말라 버리고 만다.”(6) 시인은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는 시온을 미워하는 사람들강하게 저주합니다. 그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지붕 위의 풀같이 되어서 자라기도 전에 말라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붕 위에 자란 풀은 깊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싹을 틔우려 해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양분인 습기도 모자라서 금세 마르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시온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생명은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예견합니다. 

 

주님의 축복

 

시인은 계속해서 원수들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습니다. “베는 사람의 품에도 차지 않고, 묶는 사람의 품에도 차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주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베푸시기를 빈다" 하지 아니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도 아니할 것이다.”(7-8) 

 

“베는 사람의 품에도 차지 않고, 묶는 사람의 품에도 차지 않”는다는 말은 수확이 거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평소 밭을 수확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밭을 지나갈 때, 서로 복을 빌어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룻기>에 등장한 바가 있습니다. 룻기 2장을 보면, 나오미의 친족이었던 보아스는 밭을 지나가다가 일꾼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자네들과 함께 하시기를 비네”(4)라며 그들을 격려합니다. 그러자 일꾼들은 화답하듯 보아스를 향해 “주님께서 주인어른께 복을 베푸시기 바랍니다”(4)하고 인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온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상황과 반대입니다. 그들은 이미 싹을 틔울 수 없는 상태이지만, 시인은 거기에 더하여 축복 또한 완전히 고갈될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편에 서겠는가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시편 129편은 감사의 시면서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당부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어려움은 바로 이집트의 압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 하심과 도움 덕이집트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감사하는 시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뒤이어서 하나님의 편에 서지 않은 사람들이 당할 일들이 열거되었습니다. 그들의 번영은 잠깐이고, 그들의 생명 또한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시인은 오늘의 이 짧은 시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서겠냐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벌하심이 두려워서 주님 편에 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벌하심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 편에 서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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