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 화요일
"독자가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비사실이지 사실이 아니다, 라고 포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사실을 말하면, 작가는 죽는다, 그것이 이야기하는 사람의 운명이다, 라고 경고하는 것일까. 이 경고가 왜 탄식처럼 들릴까." (이승우, <고요한 읽기>)
이 글은 이야기가 끝난 곳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던 한 작가에 대한 묘사이다. 애드거 앨런 포는 <아라비안나이트>가 끝난 지점에서 자신이 새롭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주자가 바뀐 마라톤 방식의 글쓰기다. 그는 해피앤딩으로 끝난 이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에 의구심을 품었고 그는 결국 해피앤딩이 아닌 새드앤딩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물론 그는 단순히 생각이 꼬여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다 끝난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서 새드앤딩으로 마무리한 의도는 스토리를 통해 드러난다. 한 여인이 왕에게 천일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어 살아날 수 있었는데 그는 천일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의 변덕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로 끝마무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유다. 왕이 그녀가 해 준 흥미로운 이야기에 의심을 품고 더 이상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은 그녀의 이야기가 허구라고 느꼈고 그래서 그녀를 처단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했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고 세상 어딘가에 실제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이었다. 그래서 이승우 작가는 말한다. 앨런 포는 다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녀는 사실을 말했고 그 사실을 믿지 않은 왕 때문에 죽었다. 그는, 사실을 말하는 이야기꾼(작가)의 끝은 죽음이다, 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을 말했지만 왕은 그것이 사실인지 믿지 않았고 그렇다고 (흥미롭지 않은) 사실 중심의 이야기를 했으면 그녀는 일찍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야기꾼은 어려운 직업이다. 변덕이 심한 독자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