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4 청파교회 새벽설교
사랑이 주는 유익
<아가서 6장 4-7절>
4. (남자) 나의 사랑 그대는 디르사처럼 어여쁘고, 예루살렘처럼 곱고, 깃발을 앞세운 군대처럼 장엄하구나.
5. 그대의 눈이 나를 사로잡으니, 그대의 눈을 나에게서 돌려 다오. 그대의 머리채는 길르앗 비탈을 내려오는 염소 떼 같구나.
6. 그대의 이는 털 깎으려고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이 희구나. 저마다 짝이 맞아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7. 너울 속 그대의 볼은 반으로 쪼개어 놓은 석류 같구나.
임의 부재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아가서 6장입니다. 아가서 6장에도 다른 장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진 두 연인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6장에는 먼저 친구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그들은 여인의 미모를 칭찬하며, 당신의 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임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들도 함께 찾아보겠다고 말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을 때, 우리는 현재 여인이 임과 함께 있지 않고 홀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재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임은 부재중입니다. 그가 어디를 간지 알 수 없는데, 친구들은 여인이 홀로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그를 함께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사실 이 6장 1절은 5장 후반부의 내용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5장 8절에서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탁하자,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너희가 나의 임을 만나거든, 내가 사랑 때문에 병들었다고 말하여 다오.”(8) 현재 여인은 사랑 때문에 병들었습니다. 그 이유도 임의 부재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그저 지켜만 볼 수 없던 친구들이 그녀를 돕기 위해 발을 벗고 나선 것입니다.
주인공과 관찰자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남성이 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비웃듯이 묻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5장 9절을 보면, 친구들은 “너의 임이 다른 임보다 무엇이 더 나으냐? 너의 임이 어떤 임이기에, 네가 우리에게 그런 부탁을 하느냐?”(9)라고 말합니다. 친구들은 관찰자입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여인의 마음에 깊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람을 관찰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외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가진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깁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감흥이 없던 세상이 단 하루 만에 아름답게 변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그 대상이 없다는 사실은 다른 의미로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 무엇도 자신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알지 못한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그래서 세상은 한순간에 희극에서 비극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인간의 감정은 이토록 강렬합니다.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느냐에 따라 감정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귀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사람과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에 빠진 이의 모습
이어서 2-3절에서 이번에는 다시 여인이 이야기의 주도권을 가져옵니다. 그녀는 이미 임이 간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장소가 아닙니다. 임이 있는 곳은 동산이데, 이 동산은 곧 ‘그녀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의 임은, 자기의 동산, 향기 가득한 꽃밭으로 내려가서, 그 동산에서 양 떼를 치면서 나리꽃을 꺾고 있겠지. 나는 임의 것, 임은 나의 것. 임은 나리꽃 밭에서 양을 치네.”(2-3) 여인은 임도 자신만큼 자기를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임 또한 그 어딘가에서 자신과 만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드디어 부재중이던 남성이 등장합니다. 남성은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노래합니다. 그는 여인의 눈과 머리, 이와 볼까지 그녀의 얼굴을 빠짐없이 관찰하여 노래합니다. 그녀의 눈은 마치 자석과 같습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그 시선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눈은 ‘영혼의 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인간의 감정은 눈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눈은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사랑에 빠진 남성은 그녀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어서 연인의 눈을 자신에게 돌려 달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머리와 이와 볼까지도 그에게 있어 감탄을 자아내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대충이란 말은 없습니다. 그는 사랑에 빠진 대상을 바라볼 때, 대충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사랑하는 이의 모든 것은 신비이자 놀라움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모든 것이 특별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10:30)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표현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또 시편의 저자는 주님은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아신다고 고백합니다(시 139편). 사랑의 능력은 이처럼 초월적입니다. 사랑에 의지적인 차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은 이처럼 누군가를 유심히 또 깊이 관찰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이번에도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남성의 사랑고백을 들은 이후라 이번에는 남성의 입장에서 부재중인 여성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사랑의 회복
오늘 함께 살펴본 아가서 6장에도 어김없이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두 사람의 사랑고백을 들으며 발견했던 사실은 먼저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데, 이것을 잘 활용하면 하나님을 전하는 귀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발견한 사실은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 변화는 상대를 유심히 살피게 하고, 상대에게서 특별한 점을 보아내게 만듭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은 맥락 없이 나온 말이 아닙니다(나태주, <풀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의 회복입니다. 사랑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는 주님께 사랑의 능력을 구하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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