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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사랑'은 '요구'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라캉의 정의(“사랑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않은 어떤 것을 주는 것이다”)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라는 말로 보충되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사랑방식을 가지고 있다. 친구처럼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다 참지 못해 고백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대 초반, 한 여인으로부터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잘 알지 못했던 그 여인의 고백은 오히려 내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내 욕망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내 욕망은 그녀에 대한 욕망, 즉 타자의 욕망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또 다른 20대 초반, 한 여인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녀와는 평범한 사이였다. 단, 타자의 욕망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마음을 잡을 길 없어 마음을 숨기다 고백을 했다. 역시 그녀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NO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나에 대한 욕망 즉,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타자의 욕망’을 실현시키게 된 것일까.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서로 간의 욕망의 지점을 찾게 되었다. 

 

이냐리투의 <21그램> 이야기를 통하여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그녀의 욕망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위에서 인용한 라캉의 말대로 그녀는 나에 대한 욕망도 없었으며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욕망이 될 만한 그 무엇이든 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말과 반복된 행동들이 그녀 안에 타자의 욕망을 만들었던 것이다.

 

'사랑고백'은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사랑고백'은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말과 같다.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고백이 있을 수 있을까. '당신이 좋다'는 말은 '당신은 내 고백에 대해 반응을 해야 한다'라는 말과 같다. 고백을 받은 상대의 반응에 따라 관계는 재정립되게 된다. 연인으로 발전하든지 아니면 다시 마주할 수 없는 관계로 어긋나든지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랑고백은 상대방에게 엄청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백을 받은 상대는 나를 사랑하고자 했던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늘 '비대칭적'이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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