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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우리의 몸이 바뀌지 않으면


즉 우리가 행하는 것들은 또한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스스로가 사물들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변화시킵니다. 


- 슬라보예 지젝,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궁리),  p.304



우리는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한심해 할 때가 많습니다. 한순간의 깨달음, 후회를 바탕으로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경험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 때문에 우리는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행위'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인 인간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인간상이 마치 자신의 모습인양 생각하며 그렇게 살고자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이내 좌절을 겪고 맙니다. 실패하기 때문이지요.


언제가 존경하는 선생님께 물은 적이 있습니다. 


'몸을 바꾼 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몸을 바꾼다는 것이 뭔가요?'

'예열작업 없이 생각나는 그 순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네'


그 말은 들은 후에도 편함과 습관에 익숙한 내 몸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 주판치치가 하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대해 보았을 때, 우리의 생각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행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들이 나를 변화시키고, 이러한 행위는 우리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변화시킨다는 겁니다. 우리가 몸으로 살아봐야 평범해 보이는 사회구조와 현상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생각은 몸 보다 앞서지 못합니다. 아니, 앞 설 수는 있지만 현상적으로는 늘 뒤쳐집니다. 생각만으로는 사회구원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이 바뀌지 않아 여전히 이 세상은 할 일 많은 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의를 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우리의 몸을 바꾸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도 작은 생각하나 몸으로 살아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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