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317 [에세이] 난(orchid) 2011년 3월, KSCF에 처음 출근했던 날 부터 함께 머물던 난이 있었습니다. 난을 키워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은 그 녀석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닌 듯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녀석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지요. 하긴 생각해보면 저보다 사무실을 오래 지키던 녀석이기도 합니다. 그 난은 저와 함께 2년 정도 시간을 보내며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었습니다. 직사광선을 쐬어서도 안 되며, 보름마다 뿌리가 듬뿍 잠길 정도로 15-20분 물에 담가줘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누군가 돌보겠지 하는 핑계로 내버려 뒀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참 고맙게 잘 살아서 꿋꿋이 버텨주었었는데. 오늘 공식적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지막 희망으로 그 녀석을 품에 안고.. 2013. 5. 16. [에세이]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프로이트는 사람의 증상 가운데 히스테리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히스테리는 다음의 짧은 글의 ‘그’와 같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그의 바로 그 노력을 우리가 알아차리기를 그가 원하고 있다는 사실’(p.152) 나를 불편하게 하는 내 안의 그 무엇, 끊임없어 나의 몸을 통해 말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 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욕망이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증상을 정작 자신은 모른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으니 이는 ‘뭔가 스스로 말하려고 하는구나, 노력하고 있구나.’이다. 증상은 무의미한 심리적 교란이 아니다(p.153). 증상은 우리에게 말할 무엇인가 가지고 있기에 상대의 증상에 우리는 ‘귀’를 빌려줘야 한다. 이를 통해 증상이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 2013. 5. 16. [에세이] "신 없이 신 앞에(ohne Gott vor Gott)" 에큐메니칼 혹은 진보적인 기독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합리적인 질문과 답을 통해 세워 나간다. 합리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해가능한 답을 얻고 그 이해의 틀 안에서 신앙을 갖는다. 이러한 합리적 사고가 기독교를 건강하게 하기도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합리적 질문은 언제든 가능하나 합리적이라는 말은 자칫 사람을 '냉소적'으로 만들 수 있다.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면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자기 신앙의 최종적인 판단은 자기 이성이 된다. 그러면 자기 행동을 자신이 합리화하기 때문에 자신이 판단의 척도가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는 방식이 필요하다. 본회퍼는 "신 없이 .. 2013. 5. 16. [에세이]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모두가 재밌다고 하는 영화를 보게 될 때 마음 속 묘한 거부감이 든다. 오늘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러했다. 어제 꼬여버린 일정으로 인해 못 본 그 영화, 을 보고 왔다. 늦은 밤 , 눈 오는 거리를 뚫고 홀로 영화보러 가는 것도 살짝 서러운데 생일이었다고 무료로 커플용 팝콘 셋트를 준단다. "콜라와 사이다 중 뭘로 두 잔을 드릴까요?"라는 점원의 말에 "콜라 한 잔만 주세요."라고 대답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름 늦은 밤 혼자 보는 영화에 의미를 부여하다 뜬금없이 주는 영화관 선물에 맘이 쓸쓸해진다. 혼자 보는 영화라 주위 사람 의식하지 않고 몸과 마음의 끈을 살짝 풀어놓고 그 상황에 임했다. 어제 이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의 엄숙한 분위기를 이미 보았던.. 2013. 5. 16. [에세이]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우선 이처럼 자신이 깨뜨려지는 충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옳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근본에 있어서 시대와의 불화(不和)이어야 하리라. 사건과 같은 충격 그리고 충격 이후에 비로소 돌출하는 후사건(後事件)이 깨달음의 본모습이 아닐까. "깨달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것은 깨달음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불화와 긴장 그 자체가 지혜인지도 모른다. 신영복, , 돌베개, p.100-105 자신이 깨뜨려져야 얻어진다는 '깨달음.'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깨어지고 또 깨어졌는가. 우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능동적이어야 하겠지만, 수동적이지 않은 깨달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틀을 깬다는 것이 꽤나 고통스럽기 때.. 2013. 5. 16. [에세이] 변방(邊方)을 찾아서 평상시 주일과는 다르게 청년들이 이른 저녁 집으로 향한다. 나 또한 익숙치 않은 밝음에 등떠밀려 집으로 향하려 한다. 지하철 역을 내려 발걸음을 옮기다 문득 가방 속에 고이 넣어둔 책이 생각나 잠시 발끝을 돌려 커피숍으로 향한다. 조금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주변 사람들의 미미한 소음을 끌어안고 책을 펼친다. 글이 이렇게 위로가 되고 따스할 수 있을까. 오래전 사뒀지만 읽지 못했던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찬찬히 읽어본다. 그러다 마주친 '변방(邊方)을 찾아서.'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다. "중요한 것은 변방이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변방은 변방성, 변방 의식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비록 어떤 장세(場勢)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모름지기 변방 의식을 내면.. 2013. 5. 16. [에세이] 호접몽(胡蝶夢),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우리 욕망의 실재와 만나는 것은 바로 그리고 오직 꿈속에서 일 뿐이라는 사실을 침작하자마자 전체적인 강조점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적 현실, 우리가 인정 많고 점잖은 사람들로서의 통상적인 역할을 취하는 사회적인 세계의 현실이 어떤 특정한 '억압'에 의존하는, 다시 말해 우리의 욕망의 실재를 간과하는 것에 의존하는 환영illusion인 것으로 판명되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비슷한 이야기가 떠올라 검색창에 '장자, 나비'를 검색했다.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이야기였다. 장자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꿈에서 깬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신이 꿈에서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호랑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이야기는 '물아일.. 2013. 5. 16. [에세이] '사랑'은 '요구'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라캉의 정의(“사랑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않은 어떤 것을 주는 것이다”)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라는 말로 보충되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사랑방식을 가지고 있다. 친구처럼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다 참지 못해 고백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대 초반, 한 여인으로부터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잘 알지 못했던 그 여인의 고백은 오히려 내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내 욕망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내 욕망은 그녀에 대한 욕망, 즉 타자의 욕망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또 다른 20대 초반, 한 여인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녀와는 평범한 사이였다. 단, 타자의 욕망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2013. 5. 16. 우리의 몸이 바뀌지 않으면 "즉 우리가 행하는 것들은 또한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스스로가 사물들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변화시킵니다." (슬라보예 지젝,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궁리), p.304) 우리는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한심해할 때가 많습니다. 한순간의 깨달음, 후회를 바탕으로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경험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 때문에 우리는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행위'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인 인간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인간상이 마치 자신의 모습인양 생각하며 그렇게 살고자 마음을 먹습니다.. 2013. 5. 16. 이전 1 ··· 32 33 34 35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