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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변방(邊方)을 찾아서 평상시 주일과는 다르게 청년들이 이른 저녁 집으로 향한다. 나 또한 익숙치 않은 밝음에 등떠밀려 집으로 향하려 한다. 지하철 역을 내려 발걸음을 옮기다 문득 가방 속에 고이 넣어둔 책이 생각나 잠시 발끝을 돌려 커피숍으로 향한다. 조금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주변 사람들의 미미한 소음을 끌어안고 책을 펼친다. 글이 이렇게 위로가 되고 따스할 수 있을까. 오래전 사뒀지만 읽지 못했던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찬찬히 읽어본다. 그러다 마주친 '변방(邊方)을 찾아서.'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다. "중요한 것은 변방이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변방은 변방성, 변방 의식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비록 어떤 장세(場勢)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모름지기 변방 의식을 내면.. 더보기
[에세이] 호접몽(胡蝶夢),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우리 욕망의 실재와 만나는 것은 바로 그리고 오직 꿈 속에서일 뿐이라는 사실을 침작하자마자 전체적인 강조점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적 현실, 우리가 인정 많고 점잖은 사람들로서의 통상적인 역할을 취하는 사회적인 세계의 현실이 어떤 특정한 '억압'에 의존하는, 다시 말해 우리의 욕망의 실재를 간과하는 것에 의존하는 환영illusion인 것으로 판명되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비슷한 이야기가 떠올라 검색창에 '장자, 나비'를 검색했다.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이야기였다. 장자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꿈에서 깬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신이 꿈에서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호랑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이야기는 '물아일체'.. 더보기
[에세이] '사랑'은 '요구'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라캉의 정의(“사랑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않은 어떤 것을 주는 것이다”)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라는 말로 보충되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사랑방식을 가지고 있다. 친구처럼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다 참지 못해 고백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대 초반, 한 여인으로부터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잘 알지 못했던 그 여인의 고백은 오히려 내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내 욕망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내 욕망은 그녀에 대한 욕망, 즉 타자의 욕망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또 다른 20대 초반, 한 여인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녀와는 평범한 사이였다. 단, 타자의 욕망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마음을.. 더보기
우리의 몸이 바뀌지 않으면 즉 우리가 행하는 것들은 또한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스스로가 사물들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변화시킵니다. - 슬라보예 지젝,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궁리), p.304 우리는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한심해 할 때가 많습니다. 한순간의 깨달음, 후회를 바탕으로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경험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 때문에 우리는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행위'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인 인간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인간상이 마치 자신의 모습인양 생각하며 그렇게 살고자 마음을 먹습니다. 하.. 더보기
열정과 환희 오늘날 우리가 가진 문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늘 보고 경험하는 세계 바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는 열정과 보다 넓은 세계에 대한 배움을 통해 환희를 느끼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 슬라보예 지젝,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궁리), p.281 이 말은 지젝을 경유하는 주판치치의 말입니다. 우리는 문명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직접 그곳에 가보지 않아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매스컴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 일쑤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삶의 모습일 뿐입니다. '환희'하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25살 때 였던가요. 처음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