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 Note / 잠언 (4)] 잠언, 우리 삶의 이야기

2024. 5. 22. 14:02Note

20240523 청파교회 새벽설교

 

잠언, 우리 삶의 이야기 

 

<잠언 19장 1-3절> 

 

1. 거짓말을 하며 미련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가난해도 흠 없이 사는 사람이 낫다. 

2. 지식이 없는 열심은 좋은 것이라 할 수 없고, 너무 서둘러도 발을 헛디딘다. 

3. 사람은 미련해서 스스로 길을 잘못 들고도, 마음 속으로 주님을 원망한다.

 

 

미련보다 가난, 원망보다 반성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잠언 19장입니다. 잠언 19장에도 다양한 삶의 지혜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잠언 19장 1절에는 “거짓말을 하며 미련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가난해도 흠 없이 사는 사람이 낫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잠언은 가난 자체를 찬양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난이 긍정되는 때는 부요함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때입니다. 물론 1절에는 가난과 부가 대조되진 않지만, ‘거짓말을 하며 미련하게 사는 사람’은거짓말을 통해서 부조리한 이익을 챙긴 자를 말할 것입니다. 자기 노력과 애씀이 없이 얻게 된 부요함성실함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거짓으로 이익을 챙긴 사람은 자연스레 미련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절은 차라리 의롭게 행하다가 가난해지더라도 차라리 흠 없이 사는 게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3절에는 우리가 자주 범하는 잘못이 등장합니다. 잠언의 저자는 “사람은 미련해서 스스로 길을 잘못 들고도, 마음속으로 주님을 원망한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너무 자신을 탓해도 문제가 되지만, 우리는 종종 우리가 범한 실수나 잘못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그 외부는 주님이 될 수도 있고 타인이 될 수도 있는데, 타인은 곧 주님의 형상을 덧입은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을 원망하는 것곧 주님을 원망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직접 주님께 원망 섞은 말을 하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자주 나 아닌 타자들을 향해 내 힘듦의 원인을 전가합니다. 잠언의 저자는 우리의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릴 것을 당부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통하여

 

잠언을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용되는 법칙은 이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6절을 보면, 잠언의 저자는 “너그럽게 주는 사람에게는 은혜 입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고, 선물을 잘 주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친구이다.”라고 말합니다. 나누는 손길에는 사람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물론 노력하지 않고 늘 받으려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잘 나누는 사람 곁에는 늘 친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어서 17절의 이야기를 보면, 잠언의 저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주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주님께서 그 선행을 넉넉하게 갚아 주신다.”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25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최후의 심판날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모든 민족을 반으로 가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셨던 말씀이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의인들은 자신들은 주님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런 대접을 해 드린 적이 없다며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고 답해 주십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반대의 경우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17절의 이야기는 바로 이 복음서의 말씀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잠언의 저자는 말하기를, 내가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었던 은혜는 그 사람에게 베푼 것이자 곧 주님께 꾸어드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무심코 행한 선행은 그 사람에게만 행한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통해, 주님께 향하고 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주위에는 주님께로 향하는 수많은 통로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불 같은 자가 받을 벌

 

이어서 19장을 보면, 잠언의 저자는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은 벌을 받는다. 네가 그를 구하여 준다고 해도 그때뿐, 구하여 줄 일이 또 생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은 성급히 화를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을 마주하곤 합니다. 아무리 조용한 사람이라도 방심한 순간에 화에 사로 잡히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맹렬한 노여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노여움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반드시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화가 가라앉고 나면, 후회하게 됩니다

 

화에 한번 사로 잡히면 쉽게 가라앉히기가 어렵습니다. 화가 내 속에 쌓이지 않도록 평소에 잘 흘려보내거나 그때그때 잘 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화를 자주 내거나 성격이 불 같은 사람아무래도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잠언의 저자가 말하는 벌은 특별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는 것! 바로 이것이 벌인 것입니다.  

 

성취되는 것은 주님의 뜻

 

마지막으로 21절을 보면, 잠언의 저자는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어도, 성취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뜻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계획형이냐 즉흥형이냐를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떠한 유형에 속하든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모두 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계획적인 사람은 당연히 그러하겠지만, 아무리 즉흥적인 사람도 미래의 일과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근사하고 빈틈없는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 계획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부아르라는 철학자“반성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계획은 부조리한 것으로 보인다.”(시몬 드 보부아르, <모든 사람은 혼자다>, 박정자 옮김, 꾸리에, 2016, p.14)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떠한 계획도 반드시 한계가 있기에 인간의 모든 계획은 반성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21절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의 계획이 어긋나고 실패하더라도 주님의 계획이 성취된다면, 우리를 사로잡은 실망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늘의 지혜를 얻은 사람

 

오늘 우리는 잠언 19장을 통해 다양한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의 지혜를 얻은 사람은 곧 주님 가까이 머무는 사람을 뜻할 것입니다. 가난해지더라도 흠 없는 자의 선택을 하는 것,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성급히 화를 내지 않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계획은 어긋나고 실패하더라도 나를 통해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는 것!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잠언의 이야기는 우리 일상의 이야기와 밀접한 이야기들입니다. 단 하나의 지혜라도 실천해 보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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