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 Note / 잠언 (3)] 지혜 안에 담긴 보물

2024. 5. 14. 13:15Note

20240516 청파교회 새벽설교

 

지혜 안에 담긴 보물

 

<잠언 14장 1-5절> 

 

1. 어수룩한 사람은 모든 말을 다 믿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행동을 삼간다. 지혜로운 여자는 집을 세우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제 손으로 집을 무너뜨린다. 

2. 바른길을 걷는 사람은 주님을 경외하지만, 그릇된 길을 걷는 사람은 주님을 경멸한다. 

3. 미련한 사람의 말은 교만하여 매를 자청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그를 지켜 준다.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소가 힘을 쓰면 소출이 많아진다. 

5. 진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는다.

 

 

 

잠언의 서술 방식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잠언 14장입니다. 잠언 10장부터 22장까지는 솔로몬이 기록했다고 하여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부릅니다. 10-22장에 해당하는 이 솔로몬의 잠언도 다시 몇 개의 단락으로 나뉠 수 있는데, 10-15장을 그 첫 단락으로 봅니다. 이 단락의 중심인물은 의로운 사람인데 그는 다시 말해 지혜로운 사람을 뜻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잠언 14장도 이 첫 단락에 포함된 장으로써 지혜로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조되어 등장합니다. 

 

잠언 14장은 총 35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의 서술 방식이 그러하듯이 잠언 14장도 이야기가 이어지는 스토리 중심이 아니라 한 구절, 한 구절이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핵심 메시지는 모두 동일합니다. 지혜가 주는 유익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구절을 다 다룰 순 없기에 이 가운데 몇 구절만 뽑아서 살펴보겠습니다. 

 

잠언에 등장한 여성

 

먼저 1절을 보면, 지혜로운 여인과 어리석은 여인이 대조되어 등장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잠언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늘 여성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여성으로 묘사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먼저 지혜가 여성으로 묘사된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여기서 말하는 여성은 여성 그 자체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젊은 사람들 일반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잠언의 저자가 젊은 사람들에 대한 경고를 하기 위해 임의로 여성을 끌어다가 비유적으로 쓴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히브리어로 ‘지혜’가 여성형 명사이기 때문에 잠언에서도 지혜를 말할 때, 마치 여성처럼 의인화하여 등장시킨 것입니다. 이 이유가 더 합당해 보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도 여성으로 표현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이유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갈 때, 남성들을 유혹했던 가나안의 우상 ‘아스다롯’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남성을 유혹하여 넘어뜨렸던 과거 이방신에 대한 기억이 잠언을 기록할 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봤을 때, 잠언에 등장하는 여성은 여성 일반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보편적인 사람을 가리킨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부분을 이해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잠언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혜: 고향, 길

 

1절부터 살펴보면, 잠언의 저자는 지혜로운 여자는 집을 세우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제 손으로 집을 무너뜨린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집’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보금자리와 같은 것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반면 어리석은 여자는 편히 쉴 곳 없이 늘 떠돌며 방황하게 됩니다. 지혜는 잠시 머물다 가는 이 낯선 광야를 마치 고향처럼 만들어 줍니다. 

 

이어서 8절을 보면, 잠언의 저자는 “슬기로운 사람의 지혜는 자기가 가는 길을 깨닫게 하지만, 미련한 사람의 어리석음은 자기를 속인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는 지만 알아도 덜 불안해할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이 땅에서의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정답을 모른 채 불안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사람의 지혜는 자기가 어디를 향해 가는 지를 깨닫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 이유만 보더라도 지혜를 추구해야 할 명분이 확실해 보입니다. 

 

지혜: 행동

 

이어서 18절로 건너가 보면, 잠언의 저자는 “어수룩한 사람은 모든 말을 다 믿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행동을 삼간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수룩한 사람’은 개역개정 성경에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어수룩한 사람 또는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이 없는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어수룩한 사람은 경험이 없는 사람이기에 쉽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이나 풍문의 말들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자기 행동을 삼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슬기로운 사람은 삶에 다양한 경험이 많은 사람을 뜻할 것입니다.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어떠한 경험이든 우리가 잘 깨닫고 잘 받아들이면 선물이 아닌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많은 경험은 우리가 판단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원치 않는 경험은 우리 내면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상처를 내 삶의 자양분으로 삼는다면, 그 경험이야 말로 삶의 지혜가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상처를 낸 칼보다 상처 그 자체가 더 큰 목소리를 낸다.”(파울로 코엘료, <아크라 문서>, 문학동네, p.33)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 다시 말해, 슬기로운 사람은 숱한 경험들을 기반으로 자기 내면에 기준들이 세워졌기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 행동을 삼가게 됩니다. 

 

지혜: 적은 말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살펴보면, 23절의 말씀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모든 수고에는 이득이 있는 법이지만, 말이 많으면 가난해질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힘써 수고하는 모든 일에는 수고한 몫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물론 요즘은 수고한 몫이 수고에 비례하지 않는 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 수고하지 않아도 많은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있고, 반대로 열심히 수고하였지만 그만큼 이득을 얻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언의 저자는 수고에는 그에 합당한 이득이 있다는 전제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중요한 사실은 오히려 사람이 말이 많으면 가난을 면치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수고하거나 애쓰지 않는 사람이 이득을 덜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많이하면 가난해진다고 말합니다. 

 

말의 조심성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잠언에서도 자주 등장하지만 예언자들의 입(예레미야)이나 서신서(야고보서)에도 등장합니다. 여기서 말이 많다는 것은 수다스러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다치게 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합니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으면 8절에 나온 이야기처럼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길을 잃는 다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

 

오늘 우리는 지혜가 주는 유익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지혜는 단순히 인간의 현명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지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이미 잠언 9장에 등장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10-12)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지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이자 주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지혜를 추구하십시오. 지혜를 자신의 벗으로 삼은 사람은 광야 같은 이 낯선 땅에서 고향과 같은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를 벗으로 삼은 사람은 비틀거릴지언정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를 벗으로 삼은 사람은 내면에 생긴 기준으로 자기 행동을 잘 삼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혜를 벗 삼은 사람은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살 것입니다. 여기서 풍성함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부족함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오늘 하루도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지길 기도합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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