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인문학 75

나쁜 믿음

2025년 4월 18일 금요일 / 사람은 다 내 생각과 같지 않다 "원인이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은 그에 대한 관측과 추론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복잡성 이론을 내가 공부한 분야의 말로 이해한다면 나쁜 믿음에 빠지지 말자는 말이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황현산, , 난다, 2024, p.93)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다수의 일들은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일의 원인을 한 가지만 댈 수 없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이 표현에 함정이 있음을 알게 됐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이 '복잡성 이론'을 따르는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오류가 ..

Salon 2025.04.18

객관화

2025년 4월 5일 토요일 / 어제 탄핵 선고를 들었다. 울컥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역사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 '진정성'이 어떻게 정의되건 그것은 한 인간이 제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끌어낸 생각으로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에만 확보된다." (황현산, , 난다, 2024, p.79)  이 생각에 동의한다. 인생이란 남의 일로만 여기던 것들이 나의 일과 무관하지 않음을 차차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 말이다. 김연수 소설가가 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맴돌았던 말이다. 그가 한 말의 전문은 이러하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Salon 2025.04.05

악마

2025년 4월 3일 목요일 / 4.3의 아픔을 잊고 사는 나 "보들레르는 「너그러운 노름꾼」이라는 기이한 산문시를 썼다. 시인이 마귀들의 왕인 사탄을 만난 이야기다. 마음씨 좋은 늙은 귀족의 풍모를 지닌 마왕은 온갖 지식에 통달한 존재이며, 특히 인문학에 이르러서는 그 체계 하나하나가 어떻게 성립되어 어떻게 발전했는지 꿰뚫어 알고 있다. 이런 사탄도 단 한 번뿐이긴 하지만 간담이 서늘한 적이 있다. 어느 예리한 설교자가 '악마의 가장 교묘한 술책은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결코 잊지 말라'고 말했을 때였다. 이 말은 악이 늘 평범한 얼굴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온갖 미명을 동원하여 받들고 있는 제도와 관습 속에 교묘하게 숨어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은..

Salon 2025.04.03

악독한 힘

2025년 4월 2일 수요일 / 함께 일할수록 가슴이 답답하다  "부지런한 보들레르 연구자이며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전문가인 막스 밀레르는 1960년 『프랑스 문학에 나타난 악마』라는 책을 출간했다. 상•하권을 합해 천 쪽 가까이 되는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 연구의 동기가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에서 시작되었다고 쓴다. 그 끔찍한 집단적 범죄, 인간 행위의 일반적 척도를 넘어서는 악독한 힘의 폭발이 오직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인간의 내부에는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을 망라해서 어떤 알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하도록 준비된 악덕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바로 이런 의문이 끊임없이 문학의 주제가 되어온 악마의 존재를 다시 검토하게 했다고 말한다." (황현산, , 난다, ..

Salon 2025.04.02

거친 말

2025년 4월 1일 화요일 / 갈등으로 마음이 무겁다  "청년기에 접어드는 학생들이 말에 가하는 폭력은 말과 자아를 함께 발견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고, 자기를 둘러싼 세상의 의미 체계를 은근히 깨부숴보려는 소심한 모험이기도 하다. 그것은 탓할 생각은 없다. 거친 말이 거친 심성을 만든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오히려 이미 거칠어진 심성이 그렇게 순화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황현산, , 난다, 2024, p.62)  거친 말이 거친 심성을 만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미 거칠어진 심성이 거친 말을 발설함으로 순화될 수도 있다. 이때 '거친 말'은 나를 순화시키는 하나의 통로 역할을 하게 된다. 참고 인내하는 게 좋은 것임을 안다. 스트레스를 받는 족족 남에게 털어놓거나 자신의 마음을 다..

Salon 2025.04.01

성공

2025년 3월 27일 목요일 /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도 전에 다른 장례가 쏟아지는 3월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를 양성하는 학교에 다시 입학하던 날, 그 학교 총장 명의의 서신을 받았다. 어떤 재능을 지닌 사람이건 자신이 지원하는 기예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을 연습에 몰두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이었다.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자기 재능을 끌어내어 작품으로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이 시간은 하루에 열 시간씩 연습한다고 쳐도 얼추 3년의 세월에 해당한다. 내 경우에도 비평가가 되기 위해, 갖가지 지식을 쌓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게 알맞은 문체를 만들어내고 작품을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서만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어, 딸이 그 편지를 정성 들여 읽기를 바랐다...

Salon 2025.03.27

문학과 예술

2025년 3월 25일 화요일 / 바람 부는 지독하게 따뜻한 봄 날씨  "그러나 문학과 예술을 비롯한 여러 문화적 제도의 역할이 요청되는 것도 그 지점이다. 문학의 언어는 고백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토론의 언어다. 이를테면 시의 여러 기능 가운데는 방언을 떠나서는 표현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의 은밀한 구석에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그것을 공공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도 포함된다." (황현산, , 난다, 2024, p.46)  황현산 선생은 말한다. 방언은 인간의 '원시적 감정이 담긴 언어'이고, 표준어는 사람의 '깊은 감정을 공공의 광장으로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언어'라고 말이다. 그래서 방언은 '고백의 언어'라 말할 수 있고, 표준어는 '토론의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개인화될 수밖에 없는 ..

Salon 2025.03.25

외로움

2025년 3월 23일 일요일 / 한국이 행복지수 58위란다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 속에서 외롭게 사는 언어라는 뜻도 된다. 외래어의 현명한 표기가 어느 정도는 그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겠다." (황현산, , 난다, 2024, p.42-43)  외래어는 외롭다. 외래어는 '파뤼'를 '파티'로, '워럴'을 '워터'라고 발음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나라나 외국어를 외래어로 표시하는 그 나라만의 방식이 있다. 물 건너온 외국어는 자기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사느라 수고가 많다. 그래서 외국어는 외롭다. 그런데 이 외국어를 덜 외롭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은 물 건너온 외국어를 정확한 외래어로 표기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외국어의 표기와 발음을 두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사람 사..

Salon 2025.03.23

제거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 따뜻한 봄날의 토요일 "흉악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형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기에 우리의 패배를 증명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흉악범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일상이기 때문이다." (황현산, , 난다, 2024, p.34-35) 1. 히어로물 영화도 좋아한다. 히어로물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악당을 무찌르는 영웅들의 압도적인 힘의 매력 때문이다. 서사에 이끌려 가다 보면, 악당에 대한 분노가 쌓이게 되고 그럼 그 악당을 제거해 버리고 싶은 강한 욕구가 올라온다. 그때 선인이라고 여겨지는 히어로가 나타..

Salon 2025.03.22

좋은 복수

2025년 3월 16일 일요일 / 봄비가 내린다 "프랑스는 10세기에 극심한 종교 전쟁을 치렀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하루 동안에 학살된 3천 명의 위그노 신교도들을 포함해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그 전쟁에서 죽었다.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사를 강의하는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이 사람들의 복수는 누가 해 줍니까?" 복수를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건 우리 사회에서건 종교나 종파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죽이지는 않는다. 이것이 복수라면 복수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거대한 복수다. 그것은 바로 화해이면서 복수고, 복수이면서 화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대답이었다." (황현산, , 난다, 2024, p.26)  좋은 복수가 있을까. 없다. 그런데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도 좋은 복..

Salon 202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