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인문학 75

여관집 밥상

2025년 3월 15일 토요일 / 런닝의 힘듦은 익숙해지지 않음  "호남 지방에 내려가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면 스무 가지 서른 가지 반찬이 그득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을 수 있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호남 사람들이, 비록 부잣집에서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그런 밥상을 차려놓고 먹었던 것은 아니다. 내 아버지 세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차림은 일제 강점기에 목포나 군산 등지 미두장에 투기꾼들이 모여들면서 생겨난 여관의 밥상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잔칫집 같은 데서 "이게 여관집 밥상인가" 하며 불평하는 어른들을 본 적이 있다. 차린 것은 많은데 먹을 것은 없다는 뜻이다." (황현산, , 난다, 2024, p.16)  10여 년 전, 진급을 밟느라 1박 2일 내내 교육을 받는 ..

Salon 2025.03.15

공감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 시야를 넓게 가진다는 것은 어렵다  "신석기 시대 이전에 인간은 공감하면서 우주와 함께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공감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과학을 만들어냈고 과학으로 우주를 측정하기 시작하자 무의식도 나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과학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인간에게 우주는 측정과 분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공감과 참여의 공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인환, , 난다, 2020, p.236)  흥미로운 접근이다. 태초에 인간에게 무의식은 없었(을지 모르)는데, 그 무의식은 인간이 과학을 만들어내고 그 과학으로 우주를 측정하면서부터 출현했다는 이야기이다. 프로이트, 융, 라캉 등의 업적으로 인간에게 무의식이 있다는 사실이 보편화되..

Salon 2025.03.14

욕망

2025년 3월 13일 목요일 / 미세먼지와 황사의 괴롭힘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타자에게 욕망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타자의 욕망에 대하여 그 원인이 되고 싶어 한다." (김인환, , 난다, 2020, p.225)  라캉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난해하다. 알아듣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뭔가가 있고, 나는 그의 말이 몹시 궁금하다. 그의 말 안에서 내가 어느 정도 해체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그 무엇이 꼭 사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상이나 정신 혹은 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거창한 '무엇' 말고도 우리는 연인이나 부부, 직장 동료나 친구, 가족 등의 그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는 ..

Salon 2025.03.13

슬픔

"그 누구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그것도 대답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롤랑 바르트, , 김진영 옮김, 걷는나무, 2018, p.78)  슬픔은 참 지독하다. 그리고 끈질기다. 조용히 숨어 지내다가 갑자기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하지만 시간은 힘이 있다. 시간 속에서 슬픔은 힘을 잃기 마련이고 그러다가 서서히 아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어머니를 잃고 큰 슬픔에 빠진 롤랑 바..

Salon 2025.03.11

인간의 사랑

2025년 3월 2일 일요일 / 내가 누군가에게 어른의 형상을 보였다니  "지독한 악취에 기절하려고 하는 애인에게 시인은 종부성사를 끝내고 무성한 풀꽃들 아래 백골들 사이에 누우면 우아한 그대도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그친다면 이 시는 시간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너무도 흔한 개념을 전달하는 교훈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를 마지막 연에 담아놓았다. 시인은 아름다운 애인에게 그대의 몸에 곰팡이가 슬고 구더기들이 키스를 퍼부을 때 그대의 품이 해체되더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나는 내 사랑의 형상과 거룩한 본질을 간직해두었노라고 그 구더기들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김인환, , 난다, 2020, p.183)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Salon 2025.03.02

있지 않음의 기쁨

2025년 2월 28일 금요일 / 봄이 오는가  "황현산은 '있음과 있지 않음의 기쁨'을 '우리가 희망하는 대상은 언제까지나 거기에 확실히 존재하나 아직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260쪽)이라고 해석한다. 시인은 하나의 욕망과 그것에 결부된 희망을 관념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감각으로 포착하여 이미지를 구성해야 한다." (김인환, , 난다, 2020, p.180)  소풍은 소풍을 가기 전이 가장 행복하다. 여행은 늘 여행을 가기 전에 가장 큰 설렘을 준다. 소풍 당일과 여행 가는 당일은 늘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다. 내가 기대했던 기대감의 끝을 보지 못한다. 사람의 욕망이 그런 식이다. 사람에게 가장 큰 기대와 설렘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있지 않음'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희망할 ..

Salon 2025.02.28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 어깨가 찌뿌둥한 날  "시의 유일한 목적은 새로운 이미지이다. 구원이나 해방이 시와 연관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들은 구태여 말하자면 목적 건너편의 목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이미지가 아니라면 구원이나 해방은 시를 수사적인 장식으로 타락시키게 될 것이다. 시는 이미지들의 융해이지 개념의 교환이 아니다.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시쓰기와 무관하다. 시쓰기는 감각 활동이지 사유 활동이 아니다." (김인환, , 난다, 2020, p.176)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럽다. 그 어려운 것을 좋아하다니 말이다. 내 수준에 맞는 시집을 사서 기웃거려봤지만 아직 내 내공으로는 시라는 장르의 근처만 맴돌았을 뿐이다. 김인환 선생은 황현산 선생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시의 유일한 목적..

Salon 2025.02.26

향락

2025년 2월 25일 화요일 /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했던 오전  "아셴바흐는 향락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고 마음껏 놀거나, 느긋하게 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하면 - 특히 젊은 시절에 그랬는데 - 불안감과 거부감 때문에 곧 다시 아주 힘든 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엄숙하게 마주해야 하는 일상의 소임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토마스 만, , 박동자 옮김, 민음사, 2023, p.74)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은 시간이 주어져도 잘 놀지 못한다. 잘 노는 사람들이 볼 때, 이들은 바보, 멍청이다. 내가 그렇다. 향락을 좋아해 봐야 얼마나 대단한 향락이겠냐마는 향락의 언저리에 갈 기회가 생겨도 정신을 부여잡고 나를 놓지 못한다. 혹은 그런 향락의 언저리에 갔다고 생각되는 날의 다음 날..

Salon 2025.02.25

표현

2025년 2월 23일 일요일 / 주일 아침은 늘 그렇듯 긴장 "나는 군사독제 시절의 습관에다 인간의 심장은 조금 왼쪽에 있다는 생각에서 민주화 이후에도 선거마다 중도 좌파라고 보이는 정당을 선택했지만 어느 쪽이 여가 되건 내가 얻은 것은 쓸한 실망감뿐이었다." (김인환, , 난다, 2020, p.140) 정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 문장에서 좋은 표현을 발견했기 때문이고, 좋은 표현이 지닌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잘 고른 표현은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낮추는 윤활제가 된다. 김인환 선생은 자신을 중도 좌파로 명명했다. 그런데 이 중도 좌파의 근거를 인간의 몸에서 찾았는데, 그 근거는 '인간의 심장이 조금 왼쪽에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왔다. 나는 이래, 나는 저래, 나는 이게 중요해, ..

Salon 2025.02.23

뼈, 살, 피부

2025년 2월 19일 수요일 / 떨어지지 않는 감기 때문에 골치 "제아미는 연기에도 사람처럼 피부와 살과 뼈가 있다고 하였다. 뼈는 타고난 재능이고 살은 훈련으로 형성된 재능이고 피부는 개인의 특성이다. " (김인환, , 난다, 2020, p.120)  사람은 살면서 세 가지를 경험한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 훈련으로 형성된 재능, 개인의 특성. 이 세 가지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순 없지만 사람의 살아갈 방향성을 제시할 순 있다. 이 세 가지를 빨리 파악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된다. 내가 타고난 재능은 무엇인가? 갈고 닦아서 훨씬 나아진 재능은 무엇인가? 타고난 재능과 갈고닦은 재능은 같은 재능을 말하는가? 마지막으로 비슷한 재능이 만났을 때, 나만이..

Salon 2025.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