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일기 200

어린 왕자

2025년 4월 29일 화요일 / 오랜만에 다시 글쓰기 "지구는 어린 왕자를 바꿔놓았다. 오두막보다 더 크지 않은 별에 살던 이 우주의 시골뜨기는 벌써 권력자와 상인, 염세가와 허영쟁이를 만났고, 착실한 공무원과 학자를 만났다. 어린 왕자는 그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자신도 더 이상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며, 그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가 긴 편력 끝에 순진함을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었다." (황현산, , 난다, 2024, p.138) 어린 왕자는 어릴 때 알았지만 그 시절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책을 펼치게 되었고 무엇보다 어린 왕자는 나의 지난 추억..

Salon 2025.04.29

종이책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 고난주간에 더 한 고난들 "그러나 당신이 더 좋아하는 것은 종이로 출판된 옥스퍼드 사전이다. 책과 잉크의 냄새가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고, 한 낱말을 찾다가 다른 낱말에 한눈을 팔 수도 있으며, 책의 수택에 연구자로서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전을 뒤적이다 피곤할 때는 그 두꺼운 사전을 베고 잠을 잘 수도 있다." (황현산, , 난다, 2024, p.83) '연세대 한국어 사전'의 편찬 위원이셨던 이상섭 교수님의 이야기다.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나 그분이 하신 이야기에 공감했고 재미를 느꼈다.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는 두꺼운 사전에 관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종이책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읽었다. 나는 전자책 읽기에 여러 번 실패했고 또 책을 좋아..

Salon 2025.04.17

객관화

2025년 4월 5일 토요일 / 어제 탄핵 선고를 들었다. 울컥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역사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 '진정성'이 어떻게 정의되건 그것은 한 인간이 제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끌어낸 생각으로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에만 확보된다." (황현산, , 난다, 2024, p.79)  이 생각에 동의한다. 인생이란 남의 일로만 여기던 것들이 나의 일과 무관하지 않음을 차차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 말이다. 김연수 소설가가 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맴돌았던 말이다. 그가 한 말의 전문은 이러하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Salon 2025.04.05

악마

2025년 4월 3일 목요일 / 4.3의 아픔을 잊고 사는 나 "보들레르는 「너그러운 노름꾼」이라는 기이한 산문시를 썼다. 시인이 마귀들의 왕인 사탄을 만난 이야기다. 마음씨 좋은 늙은 귀족의 풍모를 지닌 마왕은 온갖 지식에 통달한 존재이며, 특히 인문학에 이르러서는 그 체계 하나하나가 어떻게 성립되어 어떻게 발전했는지 꿰뚫어 알고 있다. 이런 사탄도 단 한 번뿐이긴 하지만 간담이 서늘한 적이 있다. 어느 예리한 설교자가 '악마의 가장 교묘한 술책은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결코 잊지 말라'고 말했을 때였다. 이 말은 악이 늘 평범한 얼굴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온갖 미명을 동원하여 받들고 있는 제도와 관습 속에 교묘하게 숨어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은..

Salon 2025.04.03

악독한 힘

2025년 4월 2일 수요일 / 함께 일할수록 가슴이 답답하다  "부지런한 보들레르 연구자이며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전문가인 막스 밀레르는 1960년 『프랑스 문학에 나타난 악마』라는 책을 출간했다. 상•하권을 합해 천 쪽 가까이 되는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 연구의 동기가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에서 시작되었다고 쓴다. 그 끔찍한 집단적 범죄, 인간 행위의 일반적 척도를 넘어서는 악독한 힘의 폭발이 오직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인간의 내부에는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을 망라해서 어떤 알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하도록 준비된 악덕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바로 이런 의문이 끊임없이 문학의 주제가 되어온 악마의 존재를 다시 검토하게 했다고 말한다." (황현산, , 난다, ..

Salon 2025.04.02

성공

2025년 3월 27일 목요일 /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도 전에 다른 장례가 쏟아지는 3월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를 양성하는 학교에 다시 입학하던 날, 그 학교 총장 명의의 서신을 받았다. 어떤 재능을 지닌 사람이건 자신이 지원하는 기예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을 연습에 몰두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이었다.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자기 재능을 끌어내어 작품으로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이 시간은 하루에 열 시간씩 연습한다고 쳐도 얼추 3년의 세월에 해당한다. 내 경우에도 비평가가 되기 위해, 갖가지 지식을 쌓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게 알맞은 문체를 만들어내고 작품을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서만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어, 딸이 그 편지를 정성 들여 읽기를 바랐다...

Salon 2025.03.27

어려운 개념

2025년 3월 21일 금요일 / 봄 날씨와 미세먼지의 콜라보  "사후 세계를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보들레르가 생각했을 한 점 티끌도 없이 완전히 찬란한 어떤 빛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보들레르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죽음 뒤에 얻게 될 휴식처를 상상했고, 동반 자살한 연인들이 죽음 뒤에 이루게 될 완전한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죽음 속에서만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은 없다. 이 세상에서 그 빛을 볼 수는 없지만, 죽는 날까지 내내 시를 씀으로써 저 빛 속의 삶과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삶을 이 땅의 우여곡절 안에서 실천하려고 했다."  (황현산, , 난다, 2024, p.32)  누군가에는 쉬운 개념일지 몰라도 내게 어려운 개념이..

Salon 2025.03.21

여관집 밥상

2025년 3월 15일 토요일 / 런닝의 힘듦은 익숙해지지 않음  "호남 지방에 내려가 웬만한 식당에 들어가면 스무 가지 서른 가지 반찬이 그득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을 수 있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호남 사람들이, 비록 부잣집에서라고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그런 밥상을 차려놓고 먹었던 것은 아니다. 내 아버지 세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차림은 일제 강점기에 목포나 군산 등지 미두장에 투기꾼들이 모여들면서 생겨난 여관의 밥상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잔칫집 같은 데서 "이게 여관집 밥상인가" 하며 불평하는 어른들을 본 적이 있다. 차린 것은 많은데 먹을 것은 없다는 뜻이다." (황현산, , 난다, 2024, p.16)  10여 년 전, 진급을 밟느라 1박 2일 내내 교육을 받는 ..

Salon 2025.03.15

욕망

2025년 3월 13일 목요일 / 미세먼지와 황사의 괴롭힘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타자에게 욕망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타자의 욕망에 대하여 그 원인이 되고 싶어 한다." (김인환, , 난다, 2020, p.225)  라캉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난해하다. 알아듣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뭔가가 있고, 나는 그의 말이 몹시 궁금하다. 그의 말 안에서 내가 어느 정도 해체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그 무엇이 꼭 사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상이나 정신 혹은 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거창한 '무엇' 말고도 우리는 연인이나 부부, 직장 동료나 친구, 가족 등의 그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는 ..

Salon 2025.03.13

애도

2025년 3월 6일 목요일 / 갑작스러운 업무 토스로 살짝 멘붕 "사랑은 바르트에게 관계, 즉 '맺어져 있음'이다. 사랑의 상실은 그래서 이 맺어짐의 끊어짐이다. 맺어졌던 것이 끊어지고 나면 끊어진 자리가 남는다." (김진영)  (롤랑 바르트, , 김진영 옮김, 걷는나무, 2018, p.269)  웃긴다. 누군가의 장례를 정성스레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가족 장례의 참석자가 되어야 한다니. 인생 참 알 수 없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서울살이를 하며 10년 동안 함께 살던 할머니가 떠나가셨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하지 못했다. 산다는 게 다 서로를 속속들이 챙기지 못하며 산다는 건 줄 알면서도 후회가 남는다. 어른들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살라고 말하지만 인생에는 어쩔 수 없이 후회할 일을 만..

Salon 202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