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Salon

일기 215

텍스트힙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 에어컨 없어 지내는 두 사람이 신경 쓰이는 날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어 보이려고, 젠체하려고 시작하면 좀 어떻습니까? 수많은 위대한 일의 최초 동기는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지금 전 세계 수억의 사람들이 보는 '유튜브' 역시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영상 클럽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거시적인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한동일, , 흐름출판, 2023, p.57-58) 에서 '텍스트힙(text-hip)'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텍스트힙'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 책 읽는 모습이나 자신이 읽은 텍스트를 SNS에 올리는 것..

Salon 2025.06.14

공생

2025년 6월 13일 금요일 / 조깅을 위한 러닝 고글을 샀다 "공생은 서로 돕는 게 아니라 이용하고 착취하는 거라고 진화생물학자들은 말하지요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이득을 보도록 모든 생물종은 설계되었다고, 그들에게서 이타성을 읽어내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이나 바람일 뿐이라고 말이지요." (나희덕, , 문학동네, 2025, p.20-21) 공생은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생물학자들의 편에서 보자면, 모든 생물종은 이득을 얻기 위해 최소한의 것을 내어주기 마련이고 이것이 공교롭게도 공생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생선을 죽지 않고 육지까지 데려오기 위해 천적을 그 통에 넣어주는 것과 같은 원리인가?) 아무튼 우리가 생물의 공생 관계를 보며 거기서 이타성을 읽는다면 그것은 그저 인간의..

Salon 2025.06.13

무지

2025년 6월 10일 화요일 / 어제는 덥고 오늘은 서늘하고 "세네카의 에는 '사람은 가르치며 배운다 Homines, dum docent, diseun'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동일, , 흐름출판, 2023, p.6) 자주 듣고 자주 사용한 말이지만 출처를 몰랐다. 로마 제국 시절 사람인 세네카가 했던 말이니 그 출처가 참 오래되기도 했다. 그럼, 사람은 가르치며 배운다고 말할 때 그가 배우는 것은 무엇일까? 가르치는 사람은 말 그대로 가르치는 사림이기에 배우는 자의 정확히 반대편에 선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가르치며 배운다니. 대체 뭘? 사람은 누군가를 가르쳐 봐야 자신이 그것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 혹은 자신이 알던 게 전혀 알지 못하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이를 비롯해 누군..

Salon 2025.06.10

생명

2025년 6월 5일 목요일 / 후쿠오카 여행에서 복귀 "바타유는 『에로티즘」에서 성행위를 '내적 충만함의 방출'로 정의하기도 했다. 생명은 늘 충만함을 지향하기에 그 방출은 위반과 탈선에 해당한다. 그리고 위반과 탈선은 죽음과 연결된다. 성행위로 체험하는 이 짧은 죽음은 개인적인 관점에서도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한 풍속의 전면적 쇄신의 은유일 수 있다." (황현산, , 난다, 2024, p.215) 재밌는 걸 발견했다. 생명은 늘 충만함을 지향한다. 무슨 말인가? 사람은 내 안에 계속 뭔가를 채워야만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실제로 뭔가가 채워지면 살아날 수 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아주 단순한 예이고, 물리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사람은 자기 안에 뭔가를 채우게 되면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데..

Salon 2025.06.05

낭비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 봄에 원래 이렇게 비가 많이 왔나 "간단히 말하자. 인간의 의식 밑바닥으로 가장 깊이 내려갈 수 있는 언어는 그 인간의 모국어다. 외국어는 컴퓨터 언어와 같다. 번역 과정을 거칠 때의 논리적 정확성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낭비를 용납하지 않는 그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지식과 의식의 깊이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낭비에 해당하며, 그 낭비에 의해서만 지식은 인간을 발전시킨다." (황현산, , 난다, 2024, p.144) 아주 오랜만에 에세이를 쓴다. 다른 글을 쓰느라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핑계이다. 아무튼 황현산 선생이 말한 이 글은 어려운 단어들이 곳곳에 침투해 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지식에는 낭비가 필요하며 인간은 이 낭비로 발..

Salon 2025.05.16

어린 왕자

2025년 4월 29일 화요일 / 오랜만에 다시 글쓰기 "지구는 어린 왕자를 바꿔놓았다. 오두막보다 더 크지 않은 별에 살던 이 우주의 시골뜨기는 벌써 권력자와 상인, 염세가와 허영쟁이를 만났고, 착실한 공무원과 학자를 만났다. 어린 왕자는 그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자신도 더 이상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며, 그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이, 그가 긴 편력 끝에 순진함을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었다." (황현산, , 난다, 2024, p.138) 어린 왕자는 어릴 때 알았지만 그 시절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책을 펼치게 되었고 무엇보다 어린 왕자는 나의 지난 추억..

Salon 2025.04.29

종이책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 고난주간에 더 한 고난들 "그러나 당신이 더 좋아하는 것은 종이로 출판된 옥스퍼드 사전이다. 책과 잉크의 냄새가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고, 한 낱말을 찾다가 다른 낱말에 한눈을 팔 수도 있으며, 책의 수택에 연구자로서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전을 뒤적이다 피곤할 때는 그 두꺼운 사전을 베고 잠을 잘 수도 있다." (황현산, , 난다, 2024, p.83) '연세대 한국어 사전'의 편찬 위원이셨던 이상섭 교수님의 이야기다.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나 그분이 하신 이야기에 공감했고 재미를 느꼈다.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는 두꺼운 사전에 관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종이책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읽었다. 나는 전자책 읽기에 여러 번 실패했고 또 책을 좋아..

Salon 2025.04.17

객관화

2025년 4월 5일 토요일 / 어제 탄핵 선고를 들었다. 울컥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역사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 '진정성'이 어떻게 정의되건 그것은 한 인간이 제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끌어낸 생각으로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에만 확보된다." (황현산, , 난다, 2024, p.79)  이 생각에 동의한다. 인생이란 남의 일로만 여기던 것들이 나의 일과 무관하지 않음을 차차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 말이다. 김연수 소설가가 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맴돌았던 말이다. 그가 한 말의 전문은 이러하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Salon 2025.04.05

악마

2025년 4월 3일 목요일 / 4.3의 아픔을 잊고 사는 나 "보들레르는 「너그러운 노름꾼」이라는 기이한 산문시를 썼다. 시인이 마귀들의 왕인 사탄을 만난 이야기다. 마음씨 좋은 늙은 귀족의 풍모를 지닌 마왕은 온갖 지식에 통달한 존재이며, 특히 인문학에 이르러서는 그 체계 하나하나가 어떻게 성립되어 어떻게 발전했는지 꿰뚫어 알고 있다. 이런 사탄도 단 한 번뿐이긴 하지만 간담이 서늘한 적이 있다. 어느 예리한 설교자가 '악마의 가장 교묘한 술책은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결코 잊지 말라'고 말했을 때였다. 이 말은 악이 늘 평범한 얼굴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온갖 미명을 동원하여 받들고 있는 제도와 관습 속에 교묘하게 숨어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은..

Salon 2025.04.03

악독한 힘

2025년 4월 2일 수요일 / 함께 일할수록 가슴이 답답하다  "부지런한 보들레르 연구자이며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전문가인 막스 밀레르는 1960년 『프랑스 문학에 나타난 악마』라는 책을 출간했다. 상•하권을 합해 천 쪽 가까이 되는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 연구의 동기가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에서 시작되었다고 쓴다. 그 끔찍한 집단적 범죄, 인간 행위의 일반적 척도를 넘어서는 악독한 힘의 폭발이 오직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인간의 내부에는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을 망라해서 어떤 알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하도록 준비된 악덕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바로 이런 의문이 끊임없이 문학의 주제가 되어온 악마의 존재를 다시 검토하게 했다고 말한다." (황현산, , 난다, ..

Salon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