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일기 200

질문(재발행)

"죽음은 대답이 아니라 하나의 큰 질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오는 깨달음은 질문의 형식으로 온다. 죽음은, 유일한 질문이다. 삶의 모든 경험이 바쳐져서 만들어낸 단 하나의 질문이다." (이승우, )  죽음은 종착지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가 얻게 될 마지막 대답인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죽음이 대답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질문이라면? 죽음 가까이 간 사람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답이 있어야 하는 하나의 질문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혼란스럽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 온 삶의 경험은 무엇을 위함이었던가! 또 삶의 모든 경험이 바쳐서 만들어낸 단 하나의 결과물이 죽음이라면 삶을 지속해야 했던 당위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래서 사람은 죽음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질문은 답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답..

Salon 2024.11.20

죽음(재발행)

"죽음은 게으르고, 동시에 즉흥적이다. 요컨대 종잡을 수 없다. 죽음은 올 때까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져도 언젠가는 온다. 늦어질 뿐 철회되지는 않는다. 죽음은 신실해서 온다는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다. 다만 오는 시간을 우리가 모를 뿐이다." (이승우, ) 주위에 게으르면서도 즉흥적인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과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약속했는데 도저히 나타나질 않는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 포기한다. 그런데 포기한 그 순간, 아주 갑작스레 그 친구가 나타난다. 이렇게 게으르고 즉흥적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친구는 결코 약속을 파기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또한 이중인격자다. 게으르지만 성실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렇다. 죽음은 온다. 누..

Salon 2024.11.19

불가능

2024년 11월 18일 월요일  "그러나 자신에게 도착하는 일은 아마 마지막까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도달하기 위한, 그러니까 하나의 세계인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한 몸부림이 마지막까지 이어질 뿐이다, 라고 나는 『데미안」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몸부림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도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잠에서 깨지 않는 삶을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승우, )  어디선가 읽었다.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민주화가 되려는 시도 속에 담긴 것이지 도달할 산꼭대기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평생에 거쳐서 ..

Salon 2024.11.18

유혹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 유혹이 있다. 에밀 싱클레어를 유혹한 것은 프란츠 크로머의 불량함, 악이다. 아니다. 모든 유혹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발동한다. 모든 욕망은 매개된 것이라는 르네 지라르를 따라 이해하자면, 프란츠 크로머는 다만 매개자일 뿐이다. 그는 에밀 싱클레어가 무엇인가를 욕망하도록 자극한다. 프란츠 크로머가 나타나기 전에는 없었던, 자기 안에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욕망이 에밀 싱클레어에게 나타난다. 비범함에 대한 유혹이 그것이다." (이승우, )  안토니오 수도사는 라는 책에서 유혹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유혹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유혹을 당해 보지 않고..

Salon 2024.11.14

성령(재발행)

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한번은 어떤 사람이 버나드 쇼에게 성령이 '성서'를 썼다는 사실을 믿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모두 성령이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책이란 저자의 의도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 책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이승우, )  흥미로운 말이다. "다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모두 성령이 썼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은 삼위일체 가운데 한 위격을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범위를 확장한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쓰진 않지만 많은 사람이 글을 쓴다. 어떤 책은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덮기도 한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책은 품에 안고 싶어진..

Salon 2024.11.13

부재(재발행)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누군가의 부재가 왜 고통이 되는가. 부재가 곧 무지의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없는 것/사람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한때 있었다가 없어진 것/사람은 지금 어떠한지 알지 못하고, 그래서 고통스럽다. 연인들은 곁에 없는 연인이 심지어 조금 전에 헤어졌어도, 지금 무얼 하는지, 누구와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의심하고 불안해한다. 이 의심과 불안은 고통을 만들고, 이 고통이 보고 싶다, 그립다, 라는 말로, 기만적인 순화의 과정을 거쳐, 표현된다." (이승우, ) 그녀가 말이 없다. 계속해서 말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자 점점 화가 난다. 처음에는 미안했지만 점점 화가 난다. 그녀가 말이 없는데 왜 내가 화가 난단 말인가. 모르기..

Salon 2024.11.12

청춘(재발행)

2024년 11월 11일 월요일  "향수는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 이르지 못해 떠도는 자를 찾아온다. 혹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 떠도는 자는 그 불완전한 존재의 상태를 견디기 위해 향수를 불러오고 향수에 매달린다. 향수에 의지해서 산다." (이승우, ) 김연수 작가는 청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라고 말이다. 청춘이야말로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이다. 그렇기에 청춘은 불완전하고 향수에 젖어 사는 자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청춘에게는 늘 가능성이 열려있고 청춘이기에 뭐든 해볼 수 있다. 청춘은 중립지대에 산다..

Salon 2024.11.11

무엇

2024년 11월 10일 일요일 "처리해야 할 많은 일이나 심란한 생각 때문에(육체와 악마는 늘 기도를 방해하고 가로막습니다) 기도에 냉담해지고 기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서둘러 시편 찬송집을 챙겨 들고 내 방으로 가거나, 아직 대낮이고 기회가 된다면 회중이 모여 있는 교회로 갑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십계명 또는 사도신경을 한 구절 한 구절 조용히 마음속으로 읊조립니다. 시간이 넉넉할 때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바울의 말씀 또는 시편 몇 구절을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읊습니다." (마르틴 루터, )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그대는 가졌는가. 자신을 돌아볼 공간을 그대는 마련해 두었는가. 시간이 충분한 상황이 있고 그렇지 못한 순간이 있다. 상황이 좋은 순간도 있고 그렇지 못한 순간..

Salon 2024.11.10

입장과 의견

2024년 11월 8일 금요일 "입장과 의견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특히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입장과 의견 없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은 지루하고 무의미하니까. 그러나 그 의견이 사실에 바탕하지 않았거나 진실과 거리가 있을 때, 확신이 제공한 허구일 뿐일 때 그 의견은 단지 확증편향의 다른 이름이므로 폐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승우, )  어제 사람들의 신념과 확신에 대한 글을 썼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신념과 확신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의 기질에 관한 것이다. 나는 자기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부럽다. 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 가운데 나를 그렇게 보지 않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봐왔던 나는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 주로 따르는..

Salon 2024.11.08

의심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이념에는 불가능이 없지만 복음에는 불가능이 있다." (본회퍼, ) 흔들리며 걷는 길. 세상에 그렇지 않은 길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는 누구나 처음 이 세상에 왔고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모두 처음이고 지나간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삶이 그러할진대 세상은 어찌 확신과 이념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인가. 확신과 이념은 힘이 있다. 그것에는 의심이 깃들 수 없다. 그리고 확신과 이념에 사로잡힌 자들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인간은 참 커다란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지만 참 어리석은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많이 흔들리고 살았고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 나에게 할머니께서 핀잔을 주기도 하셨다.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에겐 ..

Salon 2024.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