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야의 BibleSalon

작가 78

생사

"우리는 생에도 공을 들이고 사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생사를 초월한다는 것은 생사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이 들면 의사의 지시를 따라 정성스럽게 수술을 받고 약을 먹는 것이 죽음에 공을 들이는 일이며 만나는 모든 사람을 친구로 여기고 잘되라고 빌어주는 것이 삶에 공을 들이는 일이다." (김인환, , 난다, 2020, p.62) 생사를 초월한다는 근사한 말이 있다. 이 말을 근사하게 여겼지만 사실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그저 감동만 받아왔다. 오늘 그 의미를 발견했는데 아주 좋은 텍스트를 통해 발견했기에 운이 좋다고 말해야겠다. 생사를 초월한다는 말은 생과 사를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삶과 죽음을 모두 귀하게 여긴다는 뜻일 테다. 그런데 막상 말을 풀어놓긴 하였으나 풀어 놓은..

Salon 2025.02.05

많음

"간음할 음(淫)자는 원래 물 넘칠 음 자였다. 섹스를 지나치게 해서 건강을 상하게 하는 것도 음이고 여러 여자와 섹스를 하여 법망에 걸리는 것도 음이다. 공부를 과도하게 하는 것도 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잘못하면 책의 무게에 짓눌려서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김인환, , 난다, 2020, p.59)  한동안 나를 사로잡은 개념은 많이 해서 나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많이 하면 못하기 어렵다는 말이 큰 자극이 됐다. 당시에 축구든 볼링이든 독서든 연애든 많이 해서 실력(?)을 쌓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김인환 선생님은 이 '많음'에 대해 우려를 표하신다. '많음'도 분야를 가려가며 해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남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의 '많음'은 지양해야 한다. 상대를 해롭게 ..

Salon 2025.02.04

유혹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 유혹이 있다. 에밀 싱클레어를 유혹한 것은 프란츠 크로머의 불량함, 악이다. 아니다. 모든 유혹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발동한다. 모든 욕망은 매개된 것이라는 르네 지라르를 따라 이해하자면, 프란츠 크로머는 다만 매개자일 뿐이다. 그는 에밀 싱클레어가 무엇인가를 욕망하도록 자극한다. 프란츠 크로머가 나타나기 전에는 없었던, 자기 안에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욕망이 에밀 싱클레어에게 나타난다. 비범함에 대한 유혹이 그것이다." (이승우, )  안토니오 수도사는 라는 책에서 유혹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유혹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유혹을 당해 보지 않고..

Salon 2024.11.14

부재(재발행)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누군가의 부재가 왜 고통이 되는가. 부재가 곧 무지의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없는 것/사람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한때 있었다가 없어진 것/사람은 지금 어떠한지 알지 못하고, 그래서 고통스럽다. 연인들은 곁에 없는 연인이 심지어 조금 전에 헤어졌어도, 지금 무얼 하는지, 누구와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의심하고 불안해한다. 이 의심과 불안은 고통을 만들고, 이 고통이 보고 싶다, 그립다, 라는 말로, 기만적인 순화의 과정을 거쳐, 표현된다." (이승우, ) 그녀가 말이 없다. 계속해서 말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자 점점 화가 난다. 처음에는 미안했지만 점점 화가 난다. 그녀가 말이 없는데 왜 내가 화가 난단 말인가. 모르기..

Salon 2024.11.12

청춘(재발행)

2024년 11월 11일 월요일  "향수는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 이르지 못해 떠도는 자를 찾아온다. 혹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 떠도는 자는 그 불완전한 존재의 상태를 견디기 위해 향수를 불러오고 향수에 매달린다. 향수에 의지해서 산다." (이승우, ) 김연수 작가는 청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라고 말이다. 청춘이야말로 떠났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자이다. 그렇기에 청춘은 불완전하고 향수에 젖어 사는 자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청춘에게는 늘 가능성이 열려있고 청춘이기에 뭐든 해볼 수 있다. 청춘은 중립지대에 산다..

Salon 2024.11.11

입장과 의견

2024년 11월 8일 금요일 "입장과 의견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특히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입장과 의견 없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은 지루하고 무의미하니까. 그러나 그 의견이 사실에 바탕하지 않았거나 진실과 거리가 있을 때, 확신이 제공한 허구일 뿐일 때 그 의견은 단지 확증편향의 다른 이름이므로 폐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승우, )  어제 사람들의 신념과 확신에 대한 글을 썼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신념과 확신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의 기질에 관한 것이다. 나는 자기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부럽다. 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 가운데 나를 그렇게 보지 않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봐왔던 나는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 주로 따르는..

Salon 2024.11.08

사실

2024년 11월 6일 수요일 "사람들은 사실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면 죽는다.' 사실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한다. 그래서 사실을 부정한다. 사실을 공격한다. 사실을 직시하면 자신들의 신념을 반성하고 교정하게 할 가능성이 높은데(왜냐하면 그들의 확신은 사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확신에 따라 살아온 이제까지의 그들의 삶을 부정해야 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승우, ) 사람은 이성적이지 않다. 그럼 감정적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사람들은 '사실'이나 '진실'보다는 '확신'이나 '신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사실이나 진실에 관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누군가 나의 외모에 대해 지적했..

Salon 2024.11.06

경고

2024년 11월 5일 화요일 "독자가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비사실이지 사실이 아니다, 라고 포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사실을 말하면, 작가는 죽는다, 그것이 이야기하는 사람의 운명이다, 라고 경고하는 것일까. 이 경고가 왜 탄식처럼 들릴까." (이승우, ) 이 글은 이야기가 끝난 곳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던 한 작가에 대한 묘사이다. 애드거 앨런 포는 가 끝난 지점에서 자신이 새롭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주자가 바뀐 마라톤 방식의 글쓰기다. 그는 해피앤딩으로 끝난 이 의 이야기에 의구심을 품었고 그는 결국 해피앤딩이 아닌 새드앤딩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물론 그는 단순히 생각이 꼬여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다 끝난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서 새드앤딩으로 마무리한 의도는 스토리를 통해 드러난다...

Salon 2024.11.05

새것

2024년 11월 4일 월요일 "모든 새로운 이야기는 이미 있는 이야기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이야기는 부모 없이 태어나지 않는다. 부모가 너무 많을지는 몰라도 아예 없지는 않다. 이미 있던 이야기의 속편이나 덧붙임, 혹은 변주 아닌 이야기가 없다. (...) 그렇지만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이 고유한 것처럼, 앞 이야기에서 나온 뒤 이야기 또한 고유하다. 고유한 자기 삶을 산다. '해 아래 새것이 없'고, 새것 아닌 것이 없다." (이승우, ) 모든 이야기에는 부모가 있다는 말이 흥미롭다. 요즘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실감한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쓰더라도 이미 있던 것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겸손하게 된다. 고귀한 인생 지혜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Salon 2024.11.05

이야기

2024년 11월 3일 일요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완전무결한 신이 아니고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감정의 진공 상태에 있지도 않다. 개인의 욕망이 투사되거나 시대의 공기가 스며드는 걸 피할 수 없다. 실은 사람과 시대의 욕망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 이야기이다." (이승우, ) 사실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 말할 때, 피할 수 없는 것은 '내가 누구냐'이다. 그는 타인에 대해서 말하지만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말에는 '나'와 '너'가 동시에 담겨 있다.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책에는 분명한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도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데 그는 감정, 욕망, 시대 등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이승우 작가는 '사람과 시대의 욕망이 가..

Salon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