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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빈틈없음

 

아침이 차다. 서늘한 공기가 몸 한 구석을 파고든다. 채워지지 않는 그 빈 공간을 끌어안고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당장 채워지지 않을 그 온기마저 끌어안고 집을 나선다. 길 위에서 만난 벗들에게 이것이 사람의 문제냐고 물어본다. 그들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사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헛헛함이라 하더라. 그래, 누군가 옆에 있다하여 채워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연인이든, 가족이든, 종교인이든 불현 듯 찾아오는 이 공허함의 시간들이 있다.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채울 수는 있는 걸까. 삶에 무엇을 더 맞아들여야 할까. 걸으며 기도를 드린다. 갑작스런 시간의 출현, 낯선 존재가 불쑥 얼굴을 내밀 때, 찰나를 본다. 채우기 위해 먼저 비워야함을 찰나로 느낀다. 

 

최고 권력자,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인물을 떠올려 본다. 궁전과 같은 곳에서 자라느라 평범한 시절을 살아내지 못한 그녀는,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마저 잃고 만다. 존재에 생겨버린 커다란 공간을 채울 길이 없다. 갑작스레 맞이하게 된 이 공허함의 시간들을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을 감싸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때, 그럴 듯한 말로 빈틈없이 다가오는 한 인물에게 그녀는 모든 것을 내어준다. 그가 그녀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아니, 그렇다고 느꼈다. 

 

나 또한 의지하는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을 신이라 부른다. 그런데 나에게 신은 모든 걸 채워주는 대상이 아니다. 그 양반은 나를 고독에 두어 고독의 가치를 알게 한다. 또 고독의 가치를 알아 ‘같이’의 가치를 알게 한다. 빈틈없이 가득 채워지는 경험, 그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든 종교적 황홀경이든 무엇이건 간에 ‘빈틈없음’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작가야의 문학생활

이작가야의 문학생활 (Lee's Literature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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