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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슬픔의 가치

 

인도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 어떤 분노와 슬픔에 사로 잡혔다. 네 개의 층위로 구성된 카스트 제도 신분에 속하지 못한 또 하나의 계급, 지워진 존재 '불가촉천민.' 프로그램엔 두 명의 여행자가 불가촉천민으로써 빨래를 직업으로 하는 도비왈라(Dhobiwala)’와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도비왈라는 오랜 관습으로 대를 이어 빨래만 해야 한다. 평생.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자격증과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데, 문명이 주는 혜택의 그늘 속에 사는 천민들이 재능을 발견하거나 자격증을 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그들은 벗어날 수 없는 제도의 굴레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산다.

 

인도의 견고한 신분 사회 때문에 분노했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올 수 없는 불가촉천민들의 삶 때문에 슬펐다. 물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산다면 별 문제 있겠냐마는, 다른 삶을 꿈꾸게 되는 순간 그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세기를 거듭하면 할수록 그들 모두가 평등해지는 평등 세상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계급의 역사가 희생의 역사임을 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도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의 현장을 바꾼 숭고한 희생들이 있었다.

 

비단 카스트 제도가 인도만의 계급을 나타내진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한민국도 보이지 않은 아니, 때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내는 계급구조 속에 살고 있다. 정치인들의 비리와 대기업·재벌들의 욕망 자본 속에, 또 세월호를 비롯한 노동해고자들의 아픔 속에 한국의 카스트 제도가 존재함을 우리는 또렷이 목도(目睹)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루만져야 할까. ‘슬픔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좀 나아지려나. 정희진 씨의 글을 인용해 본다.

 

평화는 고통의 정중앙에 있다.”라는 목소리는 보편적 인간 조건을 극복하지 말고 항복할 것을 권한다. 슬픔에 저항하지 말고 느끼고 통과하라는 것이다. ‘슬픔에 잠긴다.’는 우리말은 정확하다. 몸이 슬픔에 잠겨 눈을 뜰 수도 없고 숨을 쉴 수도 없는, 살아 있는 죽음의 시간을 겪는 것이다. 고통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슬픔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 이것이 국가 간 평화든 마음의 평화든, 평화를 논의하는 전주(前奏)이다.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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