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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늘 국가비상사태였다

좋은 책 중에 어떤 책은 쉽게 읽히다가 가끔 걸리는 문장들이 드러나고, 또 어떤 책은 거의 모든 문장마다 읽히지 않아 진도가 늦어진다. 글의 종류에 따라 그 길이도 달라지겠지만, 2-3 페이지의 짧은 글이지만 각 문단과 문장의 가시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책이 있다. 정희진의 책이 그러하다. 평소 주위 사람들도 그녀의 글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쉽게 읽히는 것은 속임수'라는 듯 그 말들을 웃어 넘긴다. 


이 글을 남기게 된 동기는 그녀가 발터 베냐민의 책을 인용하며 했던 이야기 때문이다. 지금 멘붕(!)에 빠진 나라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내 생각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것 같았다. 최근 많은 대학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국회는 국가비상사태를 맞이한 듯 정신이 없다. 국민도 말할 것 없다.

그런데 베냐민은 마치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하는 듯 메시지를 툭 던진다. 그는 '역사주의'를 비판하며 마치 도달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가 있다는 신념을 버릴 것을 요청한다. 역사는 원래부터 편파적이고 또 과거의 승리자와 동일시하여 기록한 것이기에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정희진은 인류역사상 정상국가가 실현된 시기와 지역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말을 보탠다. 이어 정상국가, 규범적 진보 개념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잘못된 것이라 말한다.

베냐민은 말한다. "진리는 불꽃처럼 순간적이다". 민주주의는 도달해 가는 과정이지 도달해서 꼭대기에 깃발을 꽂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불꽃과 같이 정의와 평화는 순간적으로 드러나고 다시 얼굴을 감춘다. 정말 중요한 건 고통 받는 사람에겐 인생의 시시각각이 비상사태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다. 소외된 자들, 그늘에 가리워진 자들에게는 매순간이 국가비상사태였다. 늘 그렇게 느끼며 살고 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좀 길게 끌고 가는 게 좋아 보인다. 서로 지구력만 가질 수 있다면, 이 사태를 해결하고 수습하는 과정 중에 건질만한 것들이 여럿 있지 않을까, 염려스런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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