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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혁명의 순간, 그 다음날

 

 

만나는 사람과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를 떠나보내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힘겨워졌다. 그래서 그 사람을 떠나보내려 한다. 첫 연애, 헤어지고 나서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몰라 모든 당혹감을 끌어안느라 지독한 어둠을 경험한다. 미안함, 후회, 자책, 변명들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다시 여러 번의 인연을 만나고 헤어짐을 경험한다. 이제 이별 후를 조금은 알듯하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 상실의 슬픔을 애도하고, 아픔을 직면하고, 또 견뎌낸다. 끝 모를 시간의 반복이다. 사랑은 떠나가도 삶은 계속될 것이기에 다시 힘을 내어 본다. 이별 후의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 무엇으로 그 삶을 채울 수 있을까? 다음 세상을 닳아버린 몽당연필로 끼적여 본다.

 

2005년 개봉된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이 영화에는 가이 포크스(Guy Fawakes)의 가면을 쓴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가면은 2011년 뉴욕 월스트리트 행진 때 언론에 자주 비춰지곤 했다. 가이 포크스는 1605115일 의회 의사당을 폭파시켜 잉글랜드의 왕과 대신들을 몰살시키려했던 '화약음모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 인물의 상징적 가면을 쓴 영화 속 주인공 브이는 정부에 비밀 프로젝트 희생자였고 이들의 부패를 알고 있던 유일한 생존자인 주인공은 남은 생을 그들을 향한 복수에 전념한다

 

주인공이 꿈꾸고 그렸던 세상, 그의 삶은 기득권을 향한 복수와 권력의 상징인 의사당 폭파, 시민들의 깨우침의 목표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극 중 여주인공 '이비'와 사랑에 빠지고 자신이 계획한 어느 해 115일 자신을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의 희생자로 삼은 모든 관련자들을 죽이고 의사당 폭파 권한을 여주인공에 넘긴 채 숨을 거둔다. 그가 그린 자신의 삶과 목표는 거기까지다. 혁명 이후 자신의 삶의 목적이 사라져버릴 것을 아는 듯 주인공 '브이'는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이번 광화문 집회는 한 국가 최고 권위자의 부패한 권한과 관련된 것이기에 경찰도 강경진압을 못한다고 전해진다. 물론 평화적인 시민들의 집회 문화도 한 몫을 했다. 갖가지 핑계로 아직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마음의 부채감을 갖고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대통령의 하야, 탄핵이 실현되고 나면 우리가 그리는 세상이 올까? 탄핵이라도 외쳐야 어떤 차선책이라도 얻을 수 있는 걸까? 탄핵이 된다면 60일 이내에 선거준비를 해야 한다는데 그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지젝의 책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의 한 대목이 계속 의문 부호를 갖게 한다.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

 

제 흥미를 끄는 것은 

혁명의 순간 그 다음날부터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로 하여금 자유의 느낌을 만끽하게 해주는 

이런 열광의 순간으로부터 벗어나 

어떻게 그것을 새로운 제도적 질서로 전환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핵심이라는 겁니다(p.148).” 

 

그는 중요한 것은 혁명 그 자체가 아니라 혁명의 순간 그 다음 날의 기획이라 한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은 혁명 이후 어떻게 그것을 새로운 제도적 질서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문제가 핵심이라고 했다.

 

최고 권위자의 탄핵이 이루어진 이후, 우리가 꿈꾼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지 밝혀질 것이다. 무엇을 기대했는지에 따라 이 사회가 더 혼란스럽게 될지 아니면 마치 짜여 진 듯 질서정연해 질지 두고 볼 일이다. 사실 우리는 안다. 혼란스럽고 불투명하지만 모호한 과정이 건강한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인 것을 말이다. 고민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고도 계속되어질 삶을 우리는 성숙하게 이어 갈 수 있을까? 투쟁을 통해 승리(‘브이’)가 성취된다면 우리는 그 다음 욕망을 잘 어루만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리고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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