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잘 늙는다는 건 뭘까


광화문 촛불 집회 참석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밤 12시가 조금 덜 된 시간이다. 할머님은 피곤하셨는지 불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어 계셨다. 조용히 불을 꺼 드리고 내 방에 들어와 보니 책상 위 양말 두 켤레가 놓여 있었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추운 겨울 손자 따뜻하게 보내라고 예쁜 겨울 양말을 얻어 오셨나보다.


할머니께서는 오래 전부터 종편 방송 중 TV조선을 즐겨 보셨고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그녀를 감싸주는 말들을 자주 하곤 하셨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터진 후 JTBC는 물론 TV조선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관계를 앞장서 보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즘 일과를 마치거나 촛불 집회 참석 이후 집에 들어와 할머니를 마주할 때면 왠지 모를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에 세상 돌아가는 일만 빼고 평범한 일상의 대화를 나눈다. 많은 시간을 TV와 보내시는 할머니는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해 쏟아지는 홍수 같은 기사 속에 얼마나 씁쓸해 하셨을까. 그 마음이 느껴져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에 대해 조금의 불만도 없다. 할머니가 태어 나셨고 또 살아온 삶의 환경에 그러한 정서와 판단은 옳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나와 같이 젊은 시절 진보적인 입장과 사고를 하던 사람이 늙어감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하는 게 겁이 날뿐이다. 유시민 작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진보적인 젊은이가 보수적인 노인이 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고 말하며 이러한 현상은 사회정치적인 동시에 생물학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덜 진보적이거나 또는 더 보수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개인이 그렇기 때문에 세대 전체도 고령이 되면 더 보수적인 쪽으로 변화하게 된다. 고령 유권자일수록 보수정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것은 사회정치적인 현상인 동시에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이야기다."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기 전에 본인 스스로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끈질기게 묻고 또 물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생명을 부여 받았고 이 생명을 가지고 다른 생명들과 더불어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거기에서부터 내 입장을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청춘일 때나 노년일 때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개방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모른다. 유작가는 스스로 이런 바람을 털어 놨다. "나이가 많이 들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후배들이 지혜를 구하러 오면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는 선에 머무르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조언을 할 때도 꼭 옳은 생각은 아닐지 모른다는 단서를 붙이면 더 좋을 것이다."


다음 주면 대림절이다. 나의 삶을 하늘 뜻에 묻기에 아주 좋은 때이다. 


*instagram: http://www.instagram.com/ss_im_hoon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