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광장을 외면하지 못하는 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어도, 웃으며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어도, 책을 읽고 있어도, 다음 날 이른 아침 스케줄 부담으로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고 있어도 불편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은 저녁 늦게까지 빠듯할 일정 때문인지 몰라도 광화문 광장을 잊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날도 추운데다 토요일 저녁을 집에서 편히 쉬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애써 광장에 함께 나갈 동무를 찾지도 않았고 불현듯 찾아온 감기를 핑계삼아 홈보이가 되고도 싶었다. 탄핵 가결이라는 큰 산 하나를 넘은 안도감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계획대로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 늦게 집으로 향하는데 불편한 마음을 다룰 길이 없다. 해가 지기 시작한 그 때부터 어떤 생각들이 마음을 계속해서 찔렀다. 아마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었으리라. 날 좋을 땐 초를 들더니 추워지니 금세 핑계부터 찾는다고, 이 추위에 대낮부터 광장을 메운 사람들은 그럼 무엇이냐고, 몸이 좀 피곤해도 광장의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보태면 안 되겠냐고, 함께 갈 동무가 없어도 혼자라도 갈 용기가 없냐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 아니냐는 질문들이 이명증처럼 귀에 맴돌았다.

결국 10시가 넘은 밤, 집을 가기 위해 내렸어야 할 지하철역을 지나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부채감을 떨쳐버리는게 내일의 나를 마주하기에 좋은 선택일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 길로 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광화문역 한 출구에서, 그런 나를 반겨주는 것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벌의 구명 조끼였다.

갑작스레 맞이한 이 광경 앞에 추위로 가린 얼굴엔 눈물이 고였고, 가슴엔 먹먹함이 자리 잡았다. 슬펐고 가슴이 아팠다. 본 행사는 6차 집회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마쳤고 도착할 당시 광장에 사람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오늘 나를 여기로 부른 건 304개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조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지만 이 말이 참 옳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광장을 외면하지 못하게 하는 국가는 참 나쁜 국가라는 말. 국민을 광장으로 모으는 국가는 실패한 국가라는 말. 아버지의 1번당 신뢰의 무너짐과 어머니의 정치 판도 분석 입문 초대(!)를 해 준 박근혜 정부에 반어적인 '감사'의 글을 쓴 지 일주일 만이다. 반어적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감사'가 금세 '불만'으로 바뀌고 말았다.

국민이 주말의 저녁을 따뜻한 집에서 보내지 못하게 하고 마음의 불편한 부채감을 주입하는 국가는 나쁜 국가다. 국민에게 정말 잘못하는 거다. 속히 많은 사람들이 몸이 쉴 때 마음도 쉴 수 있게 되길 바라 본다. 광장으로의 초대가 온풍이 불어오는 계절이 오기 전에 부디 잘 끝 마쳐지길 바라 본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www.youtube.com

 

JH(@ss_im_hoon)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팔로워 189명, 팔로잉 168명, 게시물 428개 - JH(@ss_im_hoon)님의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보기

www.instagram.com

 

기억의 저장소 : 네이버 블로그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은 공간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