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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삶의 어려움과 이겨낼 힘

20181007 쓰임교회 주일설교

 

삶의 어려움과 이겨낼 힘

 

<욥기 2장 1-10절>

 

1.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과 함께 주님 앞에 섰다. 

2. 주님께서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가 오는 길이냐?" 하고 물으셨다. 사탄은 주님께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없다. 네가 나를 부추겨서, 공연히 그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고 있지 않느냐?" 

4. 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가죽은 가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일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립니다. 

5. 이제라도 주님께서 손을 들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시면, 그는 당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고 말 것입니다!" 

6.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를 너에게 맡겨 보겠다. 그러나 그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아라!" 

7.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나 곧 욥을 쳐서,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악성 종기가 나서 고생하게 하였다. 

8. 그래서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고 있었다. 

9. 그러자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10. 그러나 욥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이렇게 하여,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

 

[Lumix gx9 / 20mm]

한국 사회와 요즘 기독교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길 빕니다. 

 

벌써 10월입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은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만큼이나 계절의 온도 변화로도 느끼게 됩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큰 일교차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기독교는 사회로부터 많은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최근 이슈들이 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죠. 명성교회의 세습, 반동성애,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한국을 대표하는 교단들의 총회 이야기 등 개신교와 가톨릭 할 것 없이 기독교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다. 어떤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기에 이러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고 또 화해와 포용에 앞장서야 할 종교가 이토록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지 마음이 참 먹먹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함께 고민해 봐야 합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서로의 신앙이 다를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신앙이 더 깊어질 수 있기 위한 그 첫 번째 시도로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받게 된다는 그 ‘복’에 관해 살펴볼까 합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교회력 가운데 ‘욥기’로 뽑아봤습니다. 

 

하나의 문학작품인 욥기

 

성경의 각 장마다 특징들이 있겠지만 ‘욥기’만큼 그 특색이 강한 성경은 없을 겁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고려해야 할 것 중 한 가지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탄생된 배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욥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욥기는 하나의 문학작품입니다. 이 말을 두고 불경하다고 여길 분들이 계실 진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에 대한 개념을 하나씩 하나씩 새로 잡아갈 때 우리의 신앙은 더 넓고 깊어질 것입니다. 

 

그렇듯 욥기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은 오래된 민담 혹은 설화입니다. 그런데 방금 말씀 드렸듯이 ‘이야기’는 배경음악처럼 그 이야기가 탄생된 상황이 있습니다. 우리는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들으면 위로를 받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힘이 들 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를 받습니다. 연민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욥기가 바로 그러합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욥은 삶의 어려움 때문에 믿음의 위기를 겪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시험과 삶에 닥친 위기에 관해 깊은 고민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인으로 살아가며 겪게 되는 어려움 앞에 ‘욥의 삶 이야기’는 위로와 힘을 줍니다. 

 

삶의 어려움과 우리 신앙

 

여러분,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맞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어떠하십니까?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느끼실 겁니다. 삶의 어려움은 하나님을 믿기 전과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쩌면 잘 믿었기에 더 어려움을 당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죠. 지난 시간을 정직하게 돌아보면 하나님을 믿었다하여 삶의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믿고 교회까지 나오시는 겁니까? 무엇이 좋은 게 있다고 이렇게 시간을 내 교회에 나오고 계신 겁니까? 너무 공격적인 발언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자는 차원에서 드리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내게 좋은 일만 일어나게 됨을 말하진 않습니다. 내게 안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에 차이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첫 번째 내기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이 하나님 앞에 모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또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 오는 길이냐 물었고 그는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왔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사탄이 일하는 방식이 드러납니다. 사탄은 배회하는 자입니다. 두루 삼킬만한 자를 찾는 자이기에 그는 우리 일상과 매우 밀접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만큼 사탄과도 가까이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탄에게 그의 종 욥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욥에 관해 소개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향해 “이 세상에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없다(3).”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 앞에 무결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사는 동안 하나님께 이런 인정 한번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네가 나를 부추겨, 공연히 그를 해치려 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고 있지 않느냐(3)?”라고 말씀하신 걸로 미루어 볼 때, 이미 사탄은 욥을 넘어뜨리기 위한 몇 번의 시도를 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특별한 언급이 없는 걸 보니 욥은 그 시도들도 잘 이겨낸 모양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탄은 하나님과 다시 한 번 내기를 합니다. 이번엔 좀 큰 내기입니다. 사탄은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일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린다고 장담하며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신다면 그는 당장 하나님을 저주하고 말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탄의 이야기를 들은 하나님은 그의 생명만은 건들지 말 것을 명하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욥을 향한 첫 번째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테스트는 ‘악성종기’를 욥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게 하는 것입니다. 

 

욥 아내의 원망과 욥의 믿음

 

영문 모를 일을 겪은 욥은 잿더미에 앉아 옹기 즉 기와조각을 가지고 자신의 온몸을 긁습니다. ‘악성종기’라 함은 독한 독으로 사람이나 동물의 피부가 곪아 고름이 차는 질환을 말합니다. 저는 이런 질병을 앓아본 적은 없습니다. 아마 이와 비슷한 질병을 앓아본 분은 이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물론 우리도 크고 작은 종기가 몸에 나 본 적이 있기에 그 가려움과 쓰라림을 모르진 않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난 종기로 겪는 육체의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 우리는 아주 조금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욥은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고 이 괴로움의 날이 지속되었던 모양입니다. 

 

욥의 아내는 그런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하죠.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9).” 욥의 아내는 그를 지켜보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 그렇게 참지만 말고 하나님을 향해 무슨 원망이라도 하라고 부추깁니다. 오죽 안쓰러워 저럴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욥은 그의 아내에게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10)”라고 질책하며 그 어떤 말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정직한 욥 아내의 반응과 이해할 수 없는 욥의 반응

 

그런데 우리 한번 솔직한 심정으로 저 자리에 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욥의 아내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볼까요? 

 

여러분께서도 욥의 아내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의 말처럼 들리십니까? 저는 오히려 아내의 그 말이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말이라 여겨집니다. 우리가 오늘 욥기를 너무 이야기로만 봐서 그럴 텐데, 만약 우리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충분히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했을 수 있었을 겁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던 사람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에게 시련을 주셨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욥의 반응보다 그의 아내의 반응이 훨씬 공감이 가고 정상적인 반응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욥의 반응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욥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누린 복도 하나님께 받았기에 재앙이라 해서 못 받을 이유는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정말 이런 믿음을 갖고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우리는 이런 욥의 반응이 정말 인간다운 반응인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그는 악한 일을 하지도 않았고 흠 잡힐 일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영문도 모른 채 악성종기라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사실 인간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욥은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인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욥이 이상한 것 아닐까요? 인간은 당연히 신이 아니기에 이런 고통 앞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반응이 더 정상적일 거라 여겨졌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갖게 하소서

 

그런데 욥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한번 생각해봤음 합니다. 그래도 욥을 보면 그의 말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진심 같기 때문입니다.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을 믿는다 해서 시련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럼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나,라는 의심이 들 수도 있는데, 바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의하느냐가 우리의 삶과 신앙에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그의 책 <청춘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들이 고통 받으며 슬프게 사는 삶이 이제는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질 때에 어떤 나무는 이런 말을 한다. 조용히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괴롭지 않다는 결론은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 속에 내재해 있는 신의 말씀을 들어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게 하면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은 깊이 가라 앉아 마음은 더없이 고요해진다.” 

 

헤르만 헤세, <청춘이란 무엇인가>, 스타북스, p.208

 

정말 그렇지 않던가요?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괴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어려움과 힘듦이 없다고 여기는 것을 헤세는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삶의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아주 압축적으로 경험한 욥,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었던 그는 어떻게 큰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책 <마크툽>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 욥이 시련 앞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의 힌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우화입니다.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요한 형제는 기도를 많이 해서 더는 걱정거리가 없다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이 말이 스케타 수도원의 어느 현자의 귀에 가 닿았다. 

어느 날 저녁, 현자는 식사를 마친 뒤 수습 수도사들을 불러서 말했다. 

“요한 형제가 더 이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너희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투쟁하지 않으면 마음이 약해진다. 요한 형제에게 큰 유혹을 가져다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자. 요한 형제가 그 유혹을 이겨내면, 또 다른 유혹을 가져다주시라고 기도하자. 형제가 유혹에 맞서 투쟁할 때, 우리는 그가 ‘주여, 이 악마가 저에게서 물러가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고 ‘주여, 이 악마에 맞설 힘을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말하도록 기도해줘야 한다.”

 

파울로 코엘료, <마크툽>, 자음과모음, p.121

 

바로 이 이야기 속에 신앙의 신비, 참된 기도의 힌트가 담겼다고 생각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주로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이러한 기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깊어지는 기도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그 어려움을 없애달라는 것보다 그 사람이 자신 앞에 놓인 그 문제와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줄 것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듯이 누군가 겪는 어려움 또한 다른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법입니다. 서로가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충분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몸과 마음에 힘을 갖고 어려운 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홀로 또 함께 쌓아가는 힘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고난 앞에 욥처럼 반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욥기의  이야기 속에 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욥기는 우리의 삶과 신앙에 관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학작품이기에 우리 모두는 욥처럼 행동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욥의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는지 귀 기울여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욥기’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깊이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삶에 어려움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삶의 위기와 시련을 잘 견디고 넘기기 위해서는 그 어려움에 맞설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우리는 삶 전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르는 부분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도 지혜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며 그 신뢰는 우리가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느냐와 상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나와 하나님과의 1:1 관계에서도 키워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의 기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통해서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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