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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깊어지는 기도

20180930 쓰임교회 주일설교

 

깊어지는 기도

 

<야고보서 5장 13-20절>

 

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14.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15.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19.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 있을 때에, 누구든지 그를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20. 이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덮어줄 것입니다.

 

 

축적물을 통한 기도의 응답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길 빕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좋아하는 운동 있으십니까?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볼링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볼링을 꾸준히 치다 보면 뭔가 정체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실력이 늘지도 혹은 줄지도 않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볼링 선생님께 왜 이런지 이유를 물으면 어떤 운동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이렇게 정체됐다고 느끼거나 실제로 정체된 순간은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운동이라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운동에 맞는 몸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실력이 늘고 주는 것과 상관없이 어떤 정체된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던가요?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안 쓰던 근육을 계속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오기도 하고 탈도 나며 아프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지속하고 견디다보면 우리의 몸은 더 건강해지고 또 그 운동에 맞게 몸이 적용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럼 자연스레 실력도 늘기 마련일 테고요. 

 

그런데 이 원리가 운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한창 영어공부를 할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영어도 처음 어느 정도는 꾸준히 느는 것 같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정체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가 한계인가 싶어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 단계를 넘어서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죠, 뭔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또 뭔가를 꾸준히 하다 보면 반드시 정체된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왜 처음부터 ‘운동’과 ‘영어공부’ 이야기를 드렸냐하면 사실 ‘기도’도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관해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해답은 있을지언정 하나로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는 법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운동과 공부가 그렇듯이 기도에도 적용되는 한 가지 원칙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지속성’ 혹은 ‘꾸준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이기도 하지만, ‘기도’란 내가 요구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기 보단 내가 쌓은 기도의 축적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내가 기도를 쌓는다는 말은 보혜사 성령의 도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기도’는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것과 그 ‘응답’은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적절한 순간에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언가 쌓는 기도는 곧 나 자신과 내 주위의 세계를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

 

오늘 본문에도 ‘기도’에 관해 생각해볼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야고보서입니다. 야고보가 강조하는 것은 바울 사도가 강조하는 것과 한쌍을 이룹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바울의 신학은 ‘믿음’을 강조합니다. 대표적으로 로마서가 그러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에 관해 이야기합니다(이신칭의, 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그런데 야고보는 믿음보다는 '행위' 곧 '믿음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위 두 이론은 과거에 많은 대립을 겪고 논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두 가지는 단짝이지 원수지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두고 어떻게 믿음이 있다 말할 수 있으며 또 반대로 행하기만 하고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없다면 그 또한 어떻게 잘 행한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는 오늘 본문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는 각자가 처한 상황을 먼저 살피되, 어떻게 그에 맞게 행동하면 좋을지 알려줍니다. 먼저 주위에 고난 받은 사람이 있는지를 묻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즐거운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찬송을 부르라고 말합니다. 다음으론 병든 사람과 장로들에게는 더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데, 내가 만약 병들었다면 장로들을 부르고 내가 장로라면 병든 사람의 요청에 응답해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사실 여기까진 야고보가 성도들이 각 상황에 맞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병든 사람을 위한 기도

 

그리고 바로 이 다음 구절에서는 이와 같이 행할 때 주어지는 어떤 결과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는 과연 어떤 사람의 기도가 응답받는지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병들었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 기도를 통해 낫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차례로 살펴본다면, 먼저 응답 받는 사람의 기도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병든 자가 낫고 기도의 효력이 있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해 보입니다. 혹시 그 조건이 무엇인지 찾으셨습니까? 이것은 오늘 본문에 두 가지로 표현되었는데, 먼저 하나는 15절에 나오는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6절에 나오는 ‘의인’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응답받는 사람의 기도의 핵심 조건은 바로 ‘믿음’과 ‘의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믿음'과 '의인'이 당장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주어지는 '결과'에 먼저 주목해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면 병든 사람이 낫게 되고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병든 자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 받을 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먼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의 결과는 어떤 특별한 변화가 아니라 병든 사람이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아픔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결국 '기도를 받는 사람'보다 ‘기도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일 텐데, 그럼 어떤 사람의 기도가 아픔 가운데 있는 사람을 치유하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일까요? 병들어 봤던 사람의 기도입니다. 아픔 가운데 있어본 사람의 기도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픔 가운데 놓여 본 사람만이, 그 사람처럼 아파 본 사람만이 그 아픈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란 선택된 소수의 사람만 드릴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아픔으로 어려움을 당해봤던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기도는 진심을 담은 간절한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이자 곧 ‘의인의 기도’인 것입니다.  

 

어두운 마음을 나눌 때 주어지는 사랑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병든 사람’ 혹은 ‘병들었다’에서의 ‘병’이 무엇일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요소입니다. 물론 본문 그대로 ‘병든 사람’는 몸이 아픈 사람을 칭합니다. 실제로 육체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병든 사람’을 어떤 육체적인 아픔을 겪는 사람을 칭한다기보다는 마음의 답답함 혹은 고립감 때문에 아픔을 겪는 사람을 칭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아 보입니다. 몸보다 마음의 문제가 크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살던 당시나 야고보서가 쓰여 질 당시 모두, 누군가 겪는 육체의 고통 혹은 몸의 질병은 죄를 범함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당시 율법주의자나 문자주의자들은 일반 백성들이 겪어야 할 일상의 고뇌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벌로써 육체의 질병을 얻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병든 사람’은 곧 ‘죄인’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이 들게 된 과정과 원인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병든 결과만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였습니다. 

 

그렇지만 야고보는 이러한 상황을 새로운 눈으로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병’과 ‘죄’를 새롭게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사람에 관해 이해가 깊었고 삶이란 하나로 정의내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죄 혹은 죄라고 여겨지는 것을 마음에만 담아두면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고립시키게 되고 이 고립으로 생긴 마음의 병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며 결국 이러한 결과로 몸이 병들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 간에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솔직히 고백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참 사랑이 서로를 감쌀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말했죠.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16).”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덮어줄 것입니다(20).” 

 

우리의 기도와 만남이 더 깊고 넓어지기를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기도’가 깊어진다는 것은 나에 대해 많이 알아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말이지만,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은 참 자아를 알아가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를 잘 알면 알수록 하나님에 관한 이해도 깊어질 것이고 또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면 질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의 기도는 절로 간절해지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소설 속 짧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여행지에서 우연히 네덜란드 남자 한명을 만납니다.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고 헤어지기 전에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을 축복해드려도 되겠소?” ​그러자 그 네덜란드 사람은 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종교적인 이유로 여행하는 건 아닙니다. 혹시 성직자이신가요?” 그러자 주인공은 이렇게 답합니다. “아니오, 하지만 당신을 축복해드려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아시다시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 

 

네덜란드 사람은 그의 말에 동의했고 그는 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습니다. 주인공은 그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스위스 사람이었던 주인공은 자신의 모국어로 기도를 했기에 네덜란드 순례자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그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길 위의 걸음마다 그의 슬픔과 삶의 공허함을 내려놓기를, 그리고 그의 영혼이 맑게 씻겨 반짝이는 눈으로 가족에게 돌아가도록 기원했습니다. ​ 

 

파울로 코엘료, <오자히르>, 문학동네, p.405

 

주인공은 그 네덜란드 순례자를 보며 과거와 현재에 자신이 겪고 또 겪었던 삶의 어려움과 어떤 막막함과 만났습니다. 그는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만큼 많이 깨져도 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를 만나도 이해하는 폭이 다른 이들보다 넓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깊어지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기 위해서는 평평하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고 또 피하고 싶은 길입니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땅을 걸어갈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질 수 있는 법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이 실수를 하더라도 계속해서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넉넉한 품으로 품으시고 또 그 걸음을 가득 축복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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