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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진리에 속한 사람

20181125 쓰임교회 주일설교

 

진리에 속한 사람

 

<요한복음 18장 33-37절>

 

33. 빌라도가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3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 

35. 빌라도가 말하였다.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주었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3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37.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모교 채플의 한 말씀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저의 모교 감신동산을 올라가다보면 채플에 이런 말씀이 쓰여 있습니다. 잘 아시는 성경구절인데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이 말씀이 쓰여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께서 사신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대체 진리는 뭐며, 자유는 또 뭘까, 라는 의문이 들게 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시는지요? 

 

저는 오늘 말씀의 무게를 여기에 둬봤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진리’라는 게 무엇이며 또 ‘진리’를 따르는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예수와 빌라도의 대담

 

요한복음 18장은 예수께서 로마 군대와 성전 경비병들에게 잡혀가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그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에게로 끌려갔고 다음으론 ‘가야바’에게로 끌려갔으며 마지막으로는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갑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신경에도 등장하는 이 빌라도와 나눈 이야기의 한 대목입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빌라도가 묻습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이 말을 들은 예수는 빌라도가 하는 질문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묻습니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 

 

자신을 유대 사람 취급한 게 기분이 나빴는지 빌라도는 조금 격양된 어투로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주었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로마의 총독이었던 그는 유대인들 문제에 크게 얽히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라는 빌라도의 말에 이렇게 답합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지금 예수께서는 ‘어떤 나라’에 관해 말씀 하시는데, 그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라는 말은 뭔가 좀 비현실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사랑한 사람, 두 발에 흙을 뭍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아끼고 돌봤던 예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나라’에 관해 말씀하시다니 좀 의아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음 구절을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나라에 관한 힌트가 나옵니다. 빌라도는 그러면 당신이 그 나라의 왕이냐고 재차 묻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답합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라는 말이 이곳에서도 반복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참 하나님 되심을 강조하는 성경이기에 예수는 하나님과 동의어인 ‘왕’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그가 속한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곳이 아니라며 다음과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자신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태어났고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예수 자신이 하는 말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진리’라는 말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과연 ‘진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진리’는 다른 말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이자 곧 예수가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 되심을 알기 위해 그가 살았던 삶을 곱씹어봐야 합니다. 

 

한 문학책에서 ‘진리’란 이런 것이라고 정의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들어보십시오. 

 

“진리는 우리에게 확신을 주지 않는다. 

진리는 우리에게 심오함을 선사하지 않는다. 

진리는 우리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진리는 우리를 편견의 감옥에 붙잡아두지 않는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파울로 코엘료, <마크툽>, 자음과모음, p.156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리’의 개념과 비슷합니까? 참 진리는 우리에게 확신을 주지 않습니다. 확실한 무언가, 확실한 정답이 있는 곳엔 이단이 있거나 사기 혹은 거짓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에 진리라고 하는 것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진 않습니다. 편견의 감옥에 붙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하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자의 품은 넉넉합니다. 타인과 내가 큰 차이가 없음을 깨닫기에 제대로 겸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의 삶이 이렇지 않던가요? 복음서의 말씀을 잘 버무려 생각해보면, 예수께서는 자신의 유별남을 강조하거나 자신의 특별함으로 인해 타인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뭔가 확신에 찬 사람들 예를 들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과 같이 율법과 형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는 고아와 나그네와 과부의 친구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편견이 없었기에 당시 소외 받고 따돌림 당하던 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진리’란 이런 것 아닐까요? 확신에 차거나 심오한 것이 아니기에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의 다른 말은 ‘불안’입니다.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사람은 불안해집니다. 그렇기에 자유는 어려운 것이지만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산기슭의 위험에서 자라는 나무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목재’아시지요? 나무로 된 재료 말입니다. 혹시 좋은 목재를 고르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잘 자란 목재를 고를 힌트는 그 나무가 자라는 위치 혹은 장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값어치를 하는 이상적인 나무는 산기슭의 위험이 따르는 곳에서 자랍니다. 그렇기에 충실한 농부는 잘 자란 목재를 고를 때 그런 곳에서 자란 나무를 가져 와 씁니다. 

 

 “충실한 농부의 아들이라면 견고하고 잘 자란 목재를 확실하게 고르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제값어치를 가진 이상적인 나무는 산기슭의 위험이 뒤따르는 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무는 신성한 것이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자는 진리를 배운다. 그들은 엄격한 종교적인 율법을 설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사로운 문제를 말하지 않고 생의 근본적인 법칙만을 침묵으로 말할 뿐이다.” 


헤르만 헤세, <청춘이란 무엇인가>, 스타북스, p.206-207

 

여러분께는 이런 나무 같은 사람이 있으십니까? 혹은 자신은 그런 목재 같은 사람입니까? 위험을 감수하며 생의 가장 좋은 몫을 선택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귀 기울일 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불안과 자유가 주는 즐거움을 알기에 엄격한 율법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사로운 문제를 말하지 않고 생의 근본적인 법칙만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진리에 속한 사람 즉, 깨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의 마음을 가깝게 느낍니다. 예수의 삶이 자기 일상에 더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 ‘방향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사랑하기를 힘쓰고, 자신을 잘 돌보며, 나에게 보내진 이웃과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지 성찰하며 행동으로 옮기고자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진리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 길을 걷다보면 성령께서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좋은 이웃, 좋은 동행을 반드시 만나게 해줄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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