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6. 14:05ㆍNote
20190706 청파교회 새벽설교
만나가 끊기는 날
<여호수아 5장 11-12절>
11. 유월절 다음날, 그들은 그 땅의 소출을 먹었다. 바로 그 날에, 그들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
12.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 날부터 만나가 그쳐서, 이스라엘 자손은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 해에 가나안 땅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성장한다는 것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안녕하세요.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의 연령대가 좀 높은 것 같으니 이렇게 물어 보는 게 좋아 보입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나 혹은 ‘여러분의 손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부터 드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창조‘가 참 오묘하다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전에 찍었던 사진과 비교해 보면, 아이들의 성장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먼저는 ‘몸’이 성장하는 게 가장 뚜렷하고 드러나고, 그리고 차차 ‘말’이나 ‘행동’,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커간다는 것’과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원치 않아도, 따를 수밖에 없는 어떤 하나의 ‘인생 원리 혹은 육신의 원칙’인 것 같습니다.
잘 자란다는 의미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을 보며, 잘 자랐다고 말할 때, 아무나 보고 잘 자랐다는 말을 쓰진 않습니다. 이 말은 ‘잘 자란다는 것‘에는 어떤 ‘기준’들이 있다는 말일 텐데요.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잘 자란다는 건’, 부모를 의존하는 것에서부터 조금씩 멀어져, 자립해 나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지금 이곳에 계신 분들의 삶도 그래왔다는 걸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순 있었겠지만, 예를 들어, 부모님께서 늘 용돈을 챙겨 줬었는데, 차츰차츰 나 스스로 돈을 벌어보게 되기도 하고, 또 부모님의 돌봄만 받아왔던 나 자신이, 먼저 부모님께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등 우리는 자라면서 조금씩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해나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성장과정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와 같은 과정을 겪어갑니다. 물론 이집트를 탈출하는 과정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특별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의 ‘성장 과정 중 한 단계’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받게 됩니다. ‘할례’는 곧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언약이자 징표’였습니다. 그런데 사십 년이 넘는 광야 생활 동안, 할례를 행했던 남자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였고, 새롭게 태어난 아이들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번째 장애물이었던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여호수아를 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할례’부터 행하게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이 어느 때보다 짧기도 했는데, 사실 오늘 본문은 따로 떼어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앞뒤 맥락과 오늘 본문이 큰 연결점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잘 흘러가는 이야기 가운데, 뭔가 어울리지 않는 구절이 삽입된 느낌입니다.
땅의 소출을 먹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길갈’이라는 곳에 진을 치고, 얼마간 머물던 백성들은, <유월절>이 지난 바로 그 다음 날! 전에는 하지 않던 어떤 ‘특별한 일’을 행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이 머물고 있는 ‘그 땅의 소출’을 먹은 것입니다.
이게 뭐 특별한 일인가, 싶으실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데 12절을 보면, 자신들이 머물던 그곳의 논과 밭에서, 곡식을 생산해 먹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그 다음 날, 그들의 주식량 공급원이었던 ‘하늘의 만나’가 끊기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은 이렇게 말하는데요.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 날부터 만나가 그쳐서, 이스라엘 자손은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 해에 가나안 땅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이 머물던 땅에서 나는 곡식을, 자신들의 노력으로 심고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노력 없이 받아먹을 수 있었던 ‘하늘의 만나’를 더이상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이 참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성숙과 자립의 과정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씩 약속의 땅으로 전진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이후, 첫 번째 난관을 잘 넘어섰고 ‘여리고 성’이 있는 근처에 자릴 잡게 됩니다. 약속의 성취가 조금씩 앞당겨지면서,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만나’가 아닌, 자신들의 땀이 담긴 ‘소출의 음식’ 즉 ‘땅의 만나’를 먹게 됐습니다.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처음 그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이집트를 탈출 해 나왔고, 빈털터리였던 그들은 황폐한 ‘광야’마저 지나가야 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기약 없는 시간을 그 속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자립하기 힘들었을 테고,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의 기간’ 동안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 ‘하늘의 만나‘를 하나님께서 직접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이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늘 필요로 하되,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을 알게 되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성숙의 과정’ 또는 ‘자립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만나가 끊긴 자리에서
여러분, 사실 ‘하나님의 생각’이 뭔지 구체적으로 알긴 어렵습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건 확실한데, 현재 나는 그 사랑에 어떤 보답을 하고 있는지 또 애써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그분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정확히 알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는지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곧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만나가 끊겼다는 건, 내가 한 단계 더 나아가고, 한 단계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하나님께 간절히 내 마음을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의 몫을 불평하지 않고 즐겁게 살아내는 것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이처럼 조금씩 ‘직립의 사람‘,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을 때라도, 좋으신 주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또한 어려운 일을 함께 감당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웃들이 곁에 있다는 것도 알려주실 것입니다. 만나가 끊긴 자리에, 새로운 하나님의 초대가 있음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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