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파 Note

[청파 Note / 새벽] 새로운 존재로 서라

20190713 청파교회 새벽설교 

새로운 존재로 서라

<여호수아 5장 13-15절>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에 눈을 들어서 보니,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 들고 자기 앞에 서 있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원수 편이냐?"
14. 그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나는 주님의 군사령관으로 여기에 왔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한 다음에 그에게 물었다. "사령관님께서 이 부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15. 주님의 군대 사령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하였다.

 

cafe, Saysomething

궁금증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말씀을 준비하는데, 고린도후서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5장 후반부의 말씀이었는데요.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말씀인,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17).”입니다. 

저는 요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게 뭘까,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바울 사도는 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했을까, 자주 생각해보곤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합니다. 

기념비와 할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여호수아 1-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을 위한, 준비작업에 관해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수아 5장과 6장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6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먼저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기념비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모세의 홍해 때와 같이 요단강의 기적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두 개의 돌을 강에서 챙겨왔고, 그것을 ‘길갈’이라는 곳에 세워둡니다. 믿음의 후손들을 위해 이와 같은 일을 진행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사건은 무엇이었습니까? ‘할례받는 일’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오랜 기간을 지내는 동안, 할례를 받았던 남자들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늙거나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야를 거쳐오는 기간에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이라는 커다란 위기를 극복하자마자, ‘하나님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기 위해 ‘할례’를 행하라 명합니다.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는 남자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그 언약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됩니다. 이것이 요단강을 건넌 후, 맞이하게 된 두 번째 사건입니다. 

만나기 끊기는 경험

이 일이 있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게 된 일은 또 무엇이었나요? 하나님이 베푸신 ‘만나’가 끊기는 일을 경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는 동안, 뚜렷한 하나님의 도움 몇 가지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만나의 도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만나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길갈’이라는 곳에 ‘임시거처’를 갖게 되고, 약간의 안정기를 겪게 되자, 자신들이 터 잡은 그 ‘땅의 소출’을 먹게 됩니다. ‘땅의 소출’을 먹는다는 건, 사람이 성장해 가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만나’를 벗어버리고,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백성들로 성장해 갔습니다. 이렇듯, 땅의 소출을 먹었다는 말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군사령관 만남

오늘 말씀은 바로 이다음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길갈’에 머물던 중, ‘여리고’ 근처로 잠시 나아갔었나 봅니다. 그런데 자신의 맞은편에 어떤 사람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손에 칼을 들고 서 있었는데,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에, 여호수아는 당신은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묻습니다. 뭔가 일촉즉발의 상황처럼 느껴집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하나님의 군사령관’으로 이곳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순간적으로, 자기보다 더 ‘큰 자’가 내 앞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의 군사령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보며, 여호수아의 ‘겸손함’과 ‘위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출애굽 이후, 늘 승승장구했습니다. 물론 모두 하나님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일이지만, 사실 따지고 본다면, 그는 충분히 목이 굳어도 될 정도의 위치에 있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그는 출애굽 이후, 실패의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순간 승리를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군사령관을 마주치자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호수아는 그 군사령관 앞에 ‘하나님의 위엄’과 ‘자신의 작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자신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곳에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군사령관’은 말합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발에서 신을 벗어라.”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깁니다. 

신을 벗어라!

‘역사서’ ‘여호수아’는 ‘출애굽기’와 비슷한 부분이 자주 등장합니다. 홍해를 건너는 이야기도 그렇고, 떨기나무 앞에 섰던 모세의 이야기도 그렇고, 모세가 경험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여호수아에게도 일어났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저자의 의도적인 삽입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동일한 이야기지만, 각 인물에 따라 해석은 달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군사령관’은 여호수아에게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가 신고 있는 신발을 벗으라고 말합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신고 있는 신발을 벗으라는 말은, 아마도 ‘내가 서 있는 땅’과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 ‘신’ 혹은 ‘신발’에는 생각보다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 신고 있는 신발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상표가 어디 거며, 가격은 얼마고, 또 누가 사줬는지 이런 걸 묻는 건 아닙니다. ‘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짧든, 길든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말은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삶의 습관’이나 ‘방식’, 이전의 ‘실수’들이 담겨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군사령관’이 여호수아를 향해, ‘신을 벗으라’고 했던 이 말은 이전의 너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라는 부름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오랜 시간, 광야에서의 삶을 사는 동안, 이전에 살아오던 ‘삶의 습관’과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뚜렷이 그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일 즉, ‘여리고 성’의 점령을 앞두고, 여호수아가 새로워지길 바랐습니다. 이전의 모습은 내려놓고,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것이 왜 중요하냐면, 하나님은 하나의 이미지에 고정된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하루, 새로운 존재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에게도 이러한 요구를 해오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은 어제와 같은 하루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어제와 같은 내’가 아님을 기억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이 어제와 같은 하루가 아니고, 지금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라면, 우리는 매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모습으로 새롭게 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깨닫고, 또 받아들이는 데에도 ‘훈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이전의 것’은 지나갔다는 것, ‘다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께서 날마다 주님과 함께 ‘새로운 하루’, ‘새로운 존재’로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그런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