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 Note / 성서학당]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아담

2019. 7. 15. 22:33Note

20190714 청파교회 주일 오후 성서학당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아담

<창세기 2장 20-25절>

20. 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21. 그래서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주 하나님이 그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22.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23.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25.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사랑한다면 투쟁하라

안녕하세요. 다시 나타났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성경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에 관해 살펴볼까합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은 참 많은데, 당연히 모든 인물은 다 살펴볼 순 없고, 성경 내에서 어떤 도드라진 특징을 드러내는 인물들에 관해 살펴볼까 합니다. 

참고로 오늘 이 이야기는 ‘안셀름 그륀’이라는 독일의 신부이자 작가가 쓴 <사랑한다면 투쟁하라>는 이야기를 토대로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독특한 전제를 깔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을 중심으로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이 가진 ‘전제’ 자체가 성경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에 집중해 쓰여 졌다는 말인데요. 이 책의 저자 ‘안셀름 그륀’은 성경의 남성 인물들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또 성립해 가는지 그 길을 제시하기 위해 쓰여 진 책입니다. 

그럼, 이 시간은 ‘여성분들’에게는 필요 없는 시간이냐? 당연히 그렇지 않죠. 적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죠. ‘지피지기(知彼知己)’여야 ‘백전불태(百戰不殆)’일 수 있는 거죠.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알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아주 조금, 서로 간의 ‘평화’를 맛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에서 떡하니 떨어지는, ‘완성된 평화’란 어디에도 없는 거 이미 다 아실 겁니다. 

남성성&여성성

여러분, 우리 안에는 두 가지 성향이 공존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인간 내면에는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오늘은 한 사람 안에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이 함께 있을 수 있음을 살펴볼까 합니다. 

‘남성’ 안에는 ‘여성적인 인간의 영혼’이 존재하고, ‘여성’ 안에는 ‘남성적인 인간 영혼’이 존재합니다. 쉽게 말해, 기본적으로 남성에게는 여성적인 성향이 있고, 여성에게도 남성적인 성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에는 성경에 등장한 ‘남성 인물들’에 관한 살펴보는 것이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인간 전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어쨌든 이 시간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서로 간의 ‘이해’를 전제로, 더 건강하고 성숙하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이 정도의 사실만 염두 해 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남성적인 특징, 여성적인 특징

오늘 구체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러분께 여쭙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기본적으로, 고유한 ‘남성적인 특징’, ‘여성적인 특징’이라는 것이 있다고 보십니까? 물론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한 사람 안에는 서로 반대되는 성향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두 가지 형태가 공존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여쭙고 싶은 건, 이런 저런 모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는 ‘고유한 특징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입니다. 만약 그런 게 없다고 생각하시면, 더 이야기할 게 없긴 한데요, 그런데 만약 ‘남성적인 특징’과 ‘여성적인 특징’이 따로 구분 지어져 있다고 본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떤 것들을 반드시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고유한 ‘남성적인 특징’과 ‘여성적인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그 특징에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 되십니까?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 이야기를 참고해 보자면, 남녀는 서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습니다. 

① 남성적 성격
 - 침투: 뭔가에 깊이 스며들어가 점점 퍼져가는 것 
 - 지도: 어떤 이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것
 - 활동: 어떤 일을 활발히 하는 것
 - 훈련: 뭔가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것
 - 모험: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행하는 것

② 여성적 성격 
 - 수용성: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다는 것
 - 보호: 잘 지키고 보살피거나 돌보는 것
 - 현실주의: 이상이나 관념보다 현실을 중요시 하는 것
 - 인내력: 참고 견뎌내는 것
 - 어머니다움: 이건 뭐 덧붙일 말이 필요 없죠. 보살피고 양육하는 능력

물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한 사람 안에는 ‘두 가지 성격’이 혼합되어 있고, 다만 ‘남성’ 또는 ‘여성’과 관련된 특징들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에 관하여 

그럼 여러분, 여기서 퀴즈 하나를 내겠습니다. ‘초성 퀴즈’라는 겁니다. “이응/디귿” 어떤 나라를 말할까요? 정답은 ‘인도’입니다. 그럼 “이응/디귿”은 성경 속 어떤 인물을 말할까요? 정답은 ‘아담’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아담의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아담’이라는 말의 어원은 ‘아다마(אדמה, Adama)’입니다. 이 ‘아다마’라는 말의 뜻은 ‘흙 혹은 땅’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아담’이라는 말 자체에 ‘인간의 역사, 인간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우린 어렸을 때, ‘흙’을 만지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위생과 안전의 문제’로 ‘흙’을 만질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아담’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흙 또는 땅’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의 숨’이 더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곧 ‘인간’이 되는데, 하나님의 숨이 더해졌다는 건, 인간 내면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신성’을 부여받은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에서 갖가지 나무와 열매들을 누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뿐만 아니라, 동산을 돌볼 책임까지 맡게 됩니다. 

외로운 아담

그런데 최초의 인간은 머지않아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동식물’은 있어도 자신에게 알맞은 ‘협력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20에 이런 말이 나오죠.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지으셨죠. 이를 본 아담은 이런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성질을 떠나서라도, 성서가 말하는 전통만 보더라도 우리는 ‘남-녀’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 제 또래나,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 ‘결혼’과 ‘연애’를 포기한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이 대목만 보더라도 기본적으로 ‘남성’은 ‘여성’을 갈구하는 존재, 뭔가 서로가 화합을 이루는 존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경만 보더라도 ‘남성’은 ‘여성’과 좋은 관계를 맺을 때에만, 온전히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중심인물들은 거의 남자인데, 여자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흔히 사랑 때문에 아파할 때, ‘가슴이 시리다.’라고 말하거나, 또 외로움을 표현할 때, ‘옆구리가 시리다’고 하는 것은 모두 갈비뼈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이 말들을 성경의 맥락에서 보아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남성 안의 여성성: 아니마(anima)

어쨌든 ‘남자’는 ‘여자’를 자신과 동등한 지위와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정하거나, 또는 여성을 통해 어떤 영감들을 얻을 때 비로소 ‘완전한 남자’가 됩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 드린 이 ‘안셀름 그륀’이라는 신부는 분석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 ‘융’의 이론을 가져오는데요. 

‘남성’은 자기 안에 있는 ‘여성성’ 즉, ‘융’ 식으로 표현하자면, ‘남자’는 자신 안에 있는 ‘여성성’인 ‘아니마(anima)’와 접촉할 때 ‘완전한 남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따 다시 나오는데요.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 ‘아담과 하와’는 처음 서로 만났을 때 “둘 다 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처음 두 사람 사이에는 불편한 것들이 없었고, 두 사람은 있는 그대로, 서로 문제될 것 없이 아주 편한 사이였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자신을 감출 필요도 없었고, 서로 잘난 체하거나 비난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화로운 상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둘 사이에 무엇이 끼어들었기 때문인데요. 둘 사이에 끼어든 동물은 무엇이었나요? ‘뱀’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뱀의 유혹 때문에 하와가 따게 되죠. 그리고 그 열매를 아담과 함께 나눠먹게 됩니다. 그래서 그 후의 둘은 어떻게 됐습니까? 에덴에서 쫓겨나 ‘선과 악’을 구분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실 그러고 보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에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서는, ‘선악의 구분’이 따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에 있어서, 좋고 나쁨의 기준은 아예 없었던 모양입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그런데 이 이후의 이야기가 참 흥미로운데, 선악과를 먹은 이후, 남자는 여자에게 잘못을 전가한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자’는 ‘하나님’과 ‘여자’ 앞에서 자신을 숨기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아담은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아담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내보이기 두려워, 하나님을 피해 숨습니다. 

여러분, 사실 오늘의 이런 이야기가 남성분들에게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텐데,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시고 들어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이 겪고 느낀 것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내보이기를 힘들어합니다. 허세 뒤에 숨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질문을 하시죠.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너는 온전히 너 자신으로 있느냐?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너는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느냐?”와 같은 질문을 계속하십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방금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남자만이 ‘진정한 남자’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는 더 이상 모든 남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질문으로부터 도망가거나 숨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일 텐데요. ‘사람’은 벌거벗은 나를 피하지 않고 정확히 직면할 때, 또는 자신이 앞뒤 맞지 않는 모순 덩어리이자, 강하면서 약하고, 의욕이 넘치면서도 비겁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때, 그때야 비로소 ‘진짜 남자’, ‘진짜 여자’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었냐고 물었을 때, 아담은 그 죄를 하와에게 전가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창3:12) ‘안셀름 그륀’ 신부는 이런 성향을 가진 남성들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죄나 잘못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론 아담은 하나님께 그 죄를 떠넘깁니다. “여자를 보낸 것은 하나님이시지 않느냐,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남성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남자는 여자를 갈구하면서도, 자신 안에 있는 여성을 두려워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여자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깁니다. 

그래서 ‘그륀 신부’는 남성은 여성과 하나가 될 때, 자신과도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자가 되는 과정에서, 남자는 여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여성적인 면인 ‘아니마’와 접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융’은 ‘아니마’를 내재화하느냐, 못하느냐를 남성의 결정적 발전 단계로 보았습니다. 

남성의 성(性)

사실 다음의 이 이야기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아직까진 교회 내에서 다루기에는 민감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남성의 성’에 관한 부분인데요. ‘남자의 성’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는, ‘어떻게 남자가 될 수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하긴 어렵습니다만, 아주 포괄적인 부분 몇 가지만 말씀 드릴까 합니다. 

흔히 ‘성’이라고 하는 것은, 은밀하게 뒤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린 신부’는 말하길, 남성들이 ‘자신의 성’과 관련된 고민들을 서로 용기 있게 나눌 때, ‘어떤 회복들’이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남자’는 나이가 들면 이 ‘성 에너지’를 다른 분야로 유도하게 되는, 어떤 ‘창조성’이 발현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 ‘성 에너지’가 ‘영성’으로 전환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성’을 ‘문화의 중요한 원천’으로 보기도 했는데요. 왜냐면, ‘성’은 자신의 몸을 알아 가고, 모든 감각으로 자신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발달된 감각들이, 풍성한 문화를 만들게 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남자의 특징 ‘창조성’

사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경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했는데, 성경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하나님의 특징은 ‘창조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흑암’ 속에서 처음 며칠간,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십니다. 이 부분에 있어 ‘남자’는 ‘하나님’의 그 창조성을 닮았습니다. 

남자는 무엇인가 창조할 때, 남자로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건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쓰기’가 ‘창조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어떤 ‘단체’를 만들면서 ‘창조적 에너지’를 분출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만 생각해봐도, 이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 우리는 최초의 창조물을 보고서 매우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그게 무엇인지 기억나십니까? ‘배설물’에 대한 기억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주 어렸을 때는, 우리는 ‘대변’이나 ‘배설물’이 더러운지 잘 모릅니다. ‘놀고먹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던 그 때에는, 자신의 능력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은 ‘이것’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최초의 ‘창조물’인 자신의 ‘배설물’을 보며, 신기해하고 기뻐하기도 한 것입니다. 

좀 지저분한 예를 들었지만, 어쨌든 ‘창조’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하나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어쨌든 이 ‘아담’을 통해 알 수 있는 성찰은 바로 이것입니다. 남자들은 서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면, ‘창피함’이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신뢰감’이 생기는 걸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용기 있게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을 때, ‘남자’ 혹은 ‘사람’은 ‘내면의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배우는 과정에서 자주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인간’이란 당연히 존재하지 않고, 혹시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서로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 ‘아담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 안에 있는 ‘여성성’과 화해를 이루는 게 무척 중요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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