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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새벽] 기다림의 시간

20190720 청파교회 새벽설교 

기다림의 시간

<여호수아 6장 1-9절> 

1.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자손을 막으려고 굳게 닫혀 있었고,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다.
2.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너의 손에 붙인다.
3. 너희 가운데서 전투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엿새 동안 그 성 주위를 날마다 한 번씩 돌아라.
4. 제사장 일곱 명을, 숫양 뿔 나팔 일곱 개를 들고 궤 앞에서 걷게 하여라. 이레째 되는 날에, 너희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동안 성을 일곱 번 돌아라.
5. 제사장들이 숫양 뿔 나팔을 한 번 길게 불면, 백성은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 큰 함성을 질러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때에 백성은 일제히 진격하여라."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언약궤를 메고 서시오. 그리고 일곱 제사장은 제각기 일곱 숫양 뿔 나팔을 들고 주님의 궤 앞에 서시오."
7. 또 그는 백성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나아가거라! 성을 돌아라! 무장한 선발대는 주님의 궤 앞에 서서 행군하여라!"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한 대로, 제각기 숫양 뿔 나팔을 든 일곱 제사장은 주님 앞에서 행군하며 나팔을 불었고, 주님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랐다.
9. 또한 무장한 선발대는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보다 앞서서 나갔고, 후발대는 궤를 따라갔다. 그 동안 제사장들은 계속하여 나팔을 불었다.

여리고 성 함락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여호수아 6장의 말씀을 나눠볼까 합니다. 여호수아 6장에는 ‘여리고’ 하면 생각나는 그 이야기,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인 ‘여리고 성 함락’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면, 이미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전보 이야기를 들었던, ‘여리고 성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패함이 없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루는 그 하나님의 명성 때문에, ‘여리고 성’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코앞까지 다가온 이스라엘 백성을 막고자, ‘여리고 성’ 사람들은 성문을 꼭 닫아걸고, 그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똘똘 뭉친, 하나의 견고한 덩어리처럼 모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너의 손에 붙인다. 너희 가운데서 전투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엿새 동안 그 성 주위를 날마다 한 번씩 돌아라. 제사장 일곱 명을, 숫양 뿔 나팔 일곱 개를 들고 궤 앞에서 걷게 하여라. 이레째 되는 날에, 너희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동안 성을 일곱 번 돌아라. 제사장들이 숫양 뿔 나팔을 한 번 길게 불면, 백성은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 큰 함성을 질러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때에 백성은 일제히 진격하여라.”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여호수아는, 곧장 제사장들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언약궤를 메고 서시오. 그리고 일곱 제사장은 제각기 일곱 숫양 뿔 나팔을 들고 주님의 궤 앞에 서시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거라! 성을 돌아라! 무장한 선발대는 주님의 궤 앞에 서서 행군하여라!” 

당당하고 확신에 찬 여호수아의 그 명령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대로 행했습니다. 먼저 무장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무장하고 있던 한 부류의 사람들은 무리의 가장 앞쪽에 서서 나아갔고, 그 뒤로 숫양 뿔 나팔을 든 일곱 명의 제사장들이 따라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 언약궤가 위치했으며, 마지막으로 맨 뒤에는 무장한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이 위치해 걸었습니다. 

이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십니까? 가장 먼저 무장한 사람들이 앞서 있었고, 그 뒤로 숫양 뿔 나팔을 든 일곱 제사장이 있었고, 바로 뒤에 언약궤가 위치 해 있었고, 마지막으로 다시 무장한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좀 고민이 됐습니다. ‘여리고 성’을 매일 하루씩 여섯 번을 돌고, 일곱 번째 날은 나팔 소리에 맞춰 일곱 번 돌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아주 슬며시 ‘아,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이 이런 거구나.’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물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는 방식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한두 가지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실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바로 ‘기다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나타내실 때, 즉흥적이거나 아주 우발적인 방식으로는 ‘본인의 뜻’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길을 잃거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어떤 즉각적인 응답을 주시기보단, 숱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뜻’을 알려주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지 탈환’을 앞두고, 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때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방식이 이해할 수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여리고 성’을 돌되, 매일 하루씩 여섯 번을 돌고, 일곱째 날은 나팔 소리에 맞춰 일곱 번을 돌라는 이 말이 여러분은 잘 납득이 되시는지요? 

‘여리고 성’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곳의 ‘왕‘과 ‘성‘과 ‘용사‘를 넘겨주시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 당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이 주시고자 하는 것을 곧바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6일이라는 기다림’과 또 칠 일째 날에 다시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돌아야 하는 일‘이 놓여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봤을 땐, ‘저 일주일이 뭔가 긴가?’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여호수아와 그 일행은 출애굽 이후, 실패의 경험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늘 승승장구 하였기에, ‘전진’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상황마다, 그들을 멈춰 세우시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게 하였습니다. 그럴 때, 그 기다림의 시간을 통과했을 때, 하나님께선 선물을 주시고 또 약속을 성취하게 하셨습니다. 

사막의 비밀을 알기 위해

여러분, 사실 기다리는 일은 정말 속이 터지는 일입니다. ‘기다림’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뭔가를 기다려본 경험이 많으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은 늘 이 ‘기다림’의 시간을 경유합니다. 

어떤 이는 ‘인생’을 일러, ‘사막’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사막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기다림’이라고 말입니다. 이 사막은 특별히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면, 뭔가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마감 시간을 지키기 위해 엄청나게 애쓰고, 아주 긴급한 속도로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이 사막이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누구냐면, 신발을 벗고, 사막 위를 천천히, 그것도 맨발로 걸으며, 모래의 타는 듯 온도와 발바닥에서부터 전해오는 모래의 그 어루만짐을 잘 느끼는 사람을 몹시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느낌이 오십니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막은 말합니다. 우리가 사막을 정복하려는 야망이 없다면, 또 이 사막의 책임자가 우리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그리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고요하게 기다릴 줄만 안다면, 이 사막은 우리를 침입자로 여기지 않고, 우리에게 사막의 비밀을 보여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알렉산드로 프론자토, <모래위에서 묵상>)

여러분, 우리는 진짜 내가 바라야 할 것을 바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게 진짜 내 소원이라고 생각되지만, 많은 것들은 진짜 내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참 하나님의 뜻, 참 하나님의 소원을 알아채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잘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 눈에 덧씌워있는 ‘비늘’이 벗겨지고 또 마음의 ‘불순물’들이 가라앉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힘겹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기다림의 시간’들을 잘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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