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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에세이> 새로운 모험이자 새로운 경험, '산티아고' 2. 새로운 모험이자 새로운 경험, ‘산티아고’ 우연이었을까 서서히 다가오는 필연이었을까? 아르주아(Arzua)에서 만난 캐나다 순례자 제이미와의 만남이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었다. 만일 내 안에 있던 것들이 솟아 나오려는 것이었다면 그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순례가 끝난 자리에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다. 콤포스텔라를 눈앞에 둔 그 시점에 갑자기 고민이 쏟아졌다. 마음의 불안을 낮추고 내적 평화를 누리고자 이곳에 왔는데, 이상하리만큼 목적지에 다가가면 갈수록 혼란은 가중되었다. 이 무슨 하늘의 장난이란 말인가.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나의 마음은 또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산티아고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았다. 항공권을 연장해서라도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왜 산티아고에서 돌아왔나? 1. 왜 산티아고에서 돌아왔나? 프롤로그에서의 첫 질문은 “왜 산티아고로 떠났나?”였다. 그래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의미로 “왜 산티아고에서 돌아왔나?”라는 질문에 답하며 서른세 개의 에세이를 마무리하려 한다. 그런데 막상 질문을 적고 보니 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왜 돌아왔냐고? 왕복 티켓을 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답하고 끝낼 수는 없는 법, 방금의 질문에 무게를 실어 볼까 한다. 일상에서 떠나,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순례 에세이 중 몇 번 인용하기도 했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볼까 한다. 그는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라며, 궁극적 목표는 여행의 마음으로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33. 모든 순간에 살아있었음을 Day 33. 모든 순간에 살아 있었음을 아르주아(Arzua)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 7시간30분 (37.3km) 오늘이 마지막 순례이다. 생-장-피에-드-포르(St-Jean-Pied-de-Port)에서 시작된 여정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Santiago-de-Compostela)를 맞아 끝을 맺는다. 3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 길었던 800Km의 여정이 마무리된다.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이 길을 걷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고 또 이 길을 시작할 때만 해도 완주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곳에 있고 이 길의 마지막 현장에 서 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여러 영혼과 만났다. 그들은 평소 일상에서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31.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Day 31.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페레이로스(Ferreiros) –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 7시간 30분 (32.9Km) 어느새 비가 그쳤다. 비가 멈춰준 만큼 다시 힘을 내보기로 한다. 하지만 안개가 자욱한 아침, 높은 습도로 인해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땀이 흥건하다. 그래도 비로 젖지 않음에 감사하며 힘차게 한 걸음 내딛어본다. 오늘 머물 목적지인 ‘팔라스 델 레이(Palas de Rei)’ 중간쯤 되는 어느 마을 Bar에 들러 허기를 달래기로 한다. 한적한 길 위에 딱 하나 있는 Bar여서 그런지 그동안 오가며 스친 순례자들이 모두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과 잠깐의 인사와 담소를 나눈 뒤, 서로 다른 보폭과 목적지로 인해 다시 헤어짐을 갖는다. 여전히 이곳에선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30. 여기 없는 이는 소용없다 Day 30. 여기 없는 이는 소용없다.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 페레이로스(Ferreiros) : 7시간30분 (29Km) 까미노는 미팅의 천국이다. 물론 남녀가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만나게 되는 그런 즉석 만남의 미팅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다양한 만남(meeting)의 축제, 이것이 ‘길’이라는 뜻의 ‘까미노(Camino)’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이 길을 걸은 지 열흘 쯤 됐을 때였나? 땅만 보며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바로 앞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일본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녀는 경상도 사투리가 매력적인 부산 아가씨 은경이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 우리는 아주 잠깐 함께 걸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눈 정도였다. 그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8. 공감하는 사랑의 어려움 Day 28. 공감하는 사랑의 어려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 4시간 반 (18.1Km) 1. 오늘은 새로운 친구이자 옛 친구를 다시 만나 걷는다. 가끔 만나 벗을 이뤘던 정아와 그녀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순례자 1인. 그런데 흥미로운 건 정아와 함께 등장한 이 순례자는 내가 까미노를 출발하고 셋째 날 머물던 알베르게에서 잠시 스쳤던 멤버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4주 만인가? 아주 우연히, 우연한 장소에서 그렇게 다시 만났다. 새로운 친구이자 옛 친구라고 말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순례 막바지에도 까미노는 여전히 만남의 반복이다. 걸음 속도가 비슷한 나와 정아는 걸으며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나눈..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6. 쉬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Day 16. 쉬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 프로미스타(Frómista) : 6시간 (25.5Km) 여전히 발목이 좋지 않은 현정이와 그의 오랜 벗 지혜는 택시를 타고 다음 마을로 이동할 계획이다. 질량은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보존이 되는 걸까? 오늘은 이 두 친구의 자리를 다른 순례자들이 채우게 됐다. 가끔 길 위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던 한국 순례자 정아, 제영이가 함께 걷게 됐다. 물론 나의 오랜 동행인 세진이도 함께. 아무튼, 오늘 묵었던 마을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언덕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언덕의 덩치가 보통이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의 향연이다.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단숨에 넘어볼 생각이다. 출발 전 먹어둔 바나나가 한몫 해 주길..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5. 내 고향은 어디인가 Day 15. 내 고향은 어디인가 호닐로스 델 카미노(Honillos del Camino) –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 5시간 (20.4Km) 카스트로헤리스로 향하는 길에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가 뜨거운 햇살은 가려줬지만 습기를 가득 안고 왔기에 땀이 억수로 흐른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안개가 걷히니 길옆으로 난 빨간 양귀비꽃들이 길을 밝혀준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밀과 보리밭 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가 곡예를 펼치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소식을 전해주려 이토록 지저귀나, 기대가 된다. 어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물집’은 쉬었다 걸을 때 가장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젠 휴식마저 신경 쓰인다. 그래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곳이 까미노이기에 이를 악물고 걸어본..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3. 떠남, 만남, 돌아옴 Day 13. 떠남, 만남, 돌아옴 부르고스(Burgos) : 쉼 오늘은 처음으로 내일의 걱정이 없는 날이다. 이 도시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의 매력 중 하나는 한 마을에서 이틀 묵는 일이 흔치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일지라도, 아무리 불편한 것이 있어도 두 번 머무는 것이 쉽지 않은 곳이 바로 이곳 산티아고이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이라는 시간 밖에 살아낼 수밖에 없는 곳, 잡고 있던 것을 계속해서 놓는 훈련을 하는 곳이 바로 여기 산타아고이다. 순례 중엔 짐을 싸고 푸는 것이 일상이지만 오늘은 일행들과 합의 하에 조금의 여유를 누려본다. 이곳 부르고스(burgos)에서 하루 더 묵기로 결정하고 평소보다 느지막이 눈을 뜬다. 하지만 어제의 무거운 감정이 여전히 내..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1.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Day 11.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벨로라도(Belorado) – 아헤르(Ager) : 7시간 (28Km) 오늘은 평소보다 더 걸어볼까 한다. 몸이 기억하는 익숙함이 아니기에 걱정도 되지만 그냥 이유 없이 그러고 싶은 날이 있다. 생장에서 나눠 준 지도를 보니 오늘은 높은 언덕도 있는 듯한데, 이기적인 주인 때문에 몸이 고생 좀 하겠구나, 싶다. 그래도 다행인 건, 걷기 시작하니 어제와는 다른 길들이 나타나 걸음에 흥이 묻어난다. 오름직한 언덕과 적당한 평지, 작은 숲길이 적절히 분배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까미노의 일상이 그렇듯 출발은 함께 했어도 곧 따로 걷기 마련인데, 앞서 걷던 나는 산 중턱의 어느 Bar에서 숨을 돌리며 일행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영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