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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우리를 향한 성탄의 요청

20151225 쓰임교회 주일설교

우리를 향한 성탄의 요청

<이사야 52장 7-10절>

7.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8.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그들이 소리를 높여서, 기뻐하며 외친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오시는 그 모습을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9.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이방 나라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하신 능력을 드러내시니,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Lumix gx9 / 14mm]

네 개의 본문에 나타난 성서기자들의 고백

성탄절을 맞아 쓰임교회 예배드리러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성탄절은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있어서 그런지 연말의 의미와 함께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과 예수의 탄생은 우리에게 또 오늘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생각해 볼까합니다. 

쓰임교회는 매주 감리교 교회력에 주어지는 네 개의 성경본문 가운데 한 꼭지를 골라 설교를 합니다. 이번 성탄절에도 네 개의 본문이 주어졌습니다. 모두 예수 탄생의 의미를 희망적으로 선포하는 본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 마음의 번잡함 때문인지 본문묵상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네 개의 본문을 갖고 읽고 또 읽었지만 말씀의 맥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을 더 끌어도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설교방식을 조금 달리해보게 됐습니다. 네 개의 본문에서 예수의 탄생이 성서기자들로부터 어떤 식으로 고백되었는지, 또 그 고백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나열해볼까 합니다. 

 

어둠 속 빛이신 예수

첫 번째 본문은 ‘이사야 52장 7-10절’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통해 이루어질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 희망을 갖게 합니다. 7절은 승전보를 전하듯이 하나님의 평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고, 8절은 파수꾼이 주께서 시온으로 돌아올 때의 모습을 보듯 백성들도 주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합니다. 

이사야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통치하실 그 날을 꿈꾸게 했습니다. 현재 삶이 어둠 가운데 있어도 그 어둠이 물러가고 새로운 날이 올 것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사야서 본문을 통해 어떠한 성탄의 의미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까? 바로 희망의 노래입니다. 어두움은 물러가고 승리의 노래를 부를 날이 다가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는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어도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 어둠은 이 시대의 어둠일 수도 있고 우리 각자의 마음에 드리워진 어둠일 수도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상징인 예수

1.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여라.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그 오른손과 그 거룩하신 팔로 구원을 베푸셨다.
2.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알려 주시고, 주님께서 의로우심을 뭇 나라가 보는 앞에서 드러내어 보이셨다.
3.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기억해 주셨기에,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수 있었다.

4. 온 땅아, 소리 높여 즐거이 주님을 찬양하여라. 함성을 터뜨리며, 즐거운 노래로 찬양하여라.
5.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아우르는 악기들을 타면서, 찬양하여라.
6. 왕이신 주님 앞에서 나팔과 뿔나팔 소리로 환호하여라.
7. 바다와 거기에 가득 찬 것들과 세계와 거기에 살고 있는 것들도 뇌성 치듯 큰소리로 환호하여라.
8. 강들도 손뼉을 치고, 산들도 함께 큰소리로 환호성을 올려라.
9.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려라.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

다음 본문은 ‘시편 98편’입니다. 시편 전체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하는 이들의 노래로 가득합니다. 특히 오늘 시편본문은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찬양하고, 그의 정의롭고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게 합니다. 억압 속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존재였습니다. 

이 시편의 말씀과 예수의 탄생을 연관 지어 본다면, 예수의 탄생은 곧 지금 이 땅의 정의와 공의의 회복을 노래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요즘만큼 이 땅에 정의와 공의로 오실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는 시절도 없는 듯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보다 더 어두운 시절도 있었겠지만 요즘도 그 때를 떠올리게 할 만큼 캄캄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헬조선’인 대한민국의 현실도 그러합니다. 예수의 오심은 우리가 정의와 공의의 삶을 살라는 요청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의 삶을 함께 살아내는 성탄

 

1.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2.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온 세상을 지으신 것입니다.

3.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하나님의 본체대로의 모습이십니다. 
그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서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는 천사들보다 훨씬 더 높게 되셨으니, 천사들보다 더 빼어난 이름을 물려받으신 것입니다.

세 번째 본문은 ‘히브리서 1장 1-4절’의 말씀입니다. 지난 주 주일 설교본문이기도 했던 히브리서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본 서신의 저자는 본문의 처음부터 예수가 하나님 아들 되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서신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예수가 구약의 예언자나 조상들보다 위대한 인물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이고, 하나님의 본체시며 천사보다 훨씬 높은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존재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을 맞은 것입니다. ‘왜 그는 이렇게 높은 존재로 불려 졌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답은 언제나 그의 삶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예수는 저절로 높아진 분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성서의 많은 부분은 그의 하나님 되심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예수가 하나님 되심은 그가 당시에 외면당했던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고, 힘에게 복종하지 않고 맞섰지만 그 방식은 거칠지 않은 사랑의 방식이었기에 이를 경험한 이들이 그 안에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성탄을 기념하는 우리가 이 본문에서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우리도 예수와 같이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처럼 살라는 요청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라는 것이 또 하나의 성탄의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모든 만물의 동일성, 평등을 상징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6.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 사람은 그 빛을 증언하러 왔으니, 자기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10.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14.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마지막 본문은 ‘요한복음 1장 1-14절’ 말씀입니다. 이 본문을 요약해보면 예수는 태초에 창조의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 보낸 요한은 빛으로 오실 예수를 증언하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은 예수를 맞이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를 맞이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의 이 말씀은 로마의 왕이 곧 ‘주’로 여겨지던 시대의 가치를 전복하게 하는 아주 거친 본문입니다. 예수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이 말씀은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에 모두가 동일한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함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서 예수 탄생이 가져오는 의미를 모든 만물의 동일성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저자의 고백은 모든 이들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는 것과 동일한 메시지로 해석해 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의 탄생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또 우리의 마음에서 높고 낮음이 없도록 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메시지를 삶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기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맞아 네 개의 본문을 살펴봤습니다. 각 본문이 주는 메시지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것을 다 주워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가운데 한 가지만이라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오늘 설교본문들을 묵상할 때, 본문의 말씀들이 저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여겨졌었습니다. 이것이 요즘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그래도 말씀준비는 해야 했기에 각 성서본문의 저자는 어떻게 하나님과 예수를 고백하는지 또 그 안에서 어떤 성탄의 의미가 있을지 공부하는 마음으로 준비해 본 것입니다. 

이사야의 저자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성탄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시편의 저자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성탄은 ‘정의와 공의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성탄은 예수처럼 낮은 이들과의 연대, 힘에 굴복하지 않는 사랑의 삶을 살아내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저자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성탄은 모든 만물은 동일하게 소중하고 평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설교말씀을 준비하며 혹시 강제적으로 이끌어낸 메시지는 없었나 돌아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듣는 것보다 살아내는 것이 중요함을 알기에, 저부터 오늘의 말씀들을 일상에서 열심히 곱씹어볼까 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저에게 성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말입니다. 이 지난하고 비틀거리는 길 위에 주님이 함께 하시리라 믿고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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