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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라

20170319 쓰임교회 주일설교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라

 

<출애굽기 17장 1-7절>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신 광야를 떠나서, 주님의 명령대로 진을 옮겨 가면서 이동하였다. 그들은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

2. 백성이 모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대들었다. 이에 모세가 "당신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대드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을 시험하십니까?" 하고 책망하였다.

3. 그러나 거기에 있는 백성은 몹시 목이 말라서, 모세를 원망하며, 모세가 왜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왔느냐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과 그들이 먹이는 집짐승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하면서 대들었다.

4.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지금이라도 곧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6. 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였다.

7.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주님께 대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또 거기에서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고 해서, 그 곳의 이름을 맛사라고도 한다.

 

[Lumix gx9 / 20mm]

비워내기 위한 시간 ‘사순절’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지금 모든 교회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여러분들은 사순절 그 순례의 여정에 잘 동참하고 계신지요? 현재 대한민국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없는 공백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에 쏠려 있습니다. 그래서 뜻밖에 맞이한 이 공백의 시간에 우리는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며 국민들과 함께 뜻을 모아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대통령이 누가 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습니다. 하나의 국가가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겁니다. 무언가를 비워낸 상태가 되어야 새로운 무언가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이 사순절이라는 여정은 우리의 신앙과 일상을 돌아보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러한 시간들을 선물로 여기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비워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또 생각해 봐야합니다. 비워내야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평소 우리가 의지하고 지냈던 많은 것들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돈, 집, 자동차, 건물 등을 포함한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욕심, 후회, 미련, 상처 등과 같이 비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순절 기간 동안 하나님이 주신 사랑 이외에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시간들 되었으면 합니다. 

 

마실 물을 달라는 그들의 ‘원망’

 

오늘 본문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길고 길었던 이집트 노예 생활을 마치고 광야 한 가운데에 섰습니다. 그들은 자유함이 없던 속박의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새로운 광야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움이 늘 즐겁지만은 않은 법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새로운 환경에 새롭게 적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적응을 위한 시간과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훈련에는 어느 정도 어려움이 동반됩니다. 자신의 의지를 새로이 다지기 위해 의지를 꺾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지난 관성을 끊어내는 데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시작은 출애굽기 15장 후반부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광야생활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 앞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여럿 불평 가운데에 마실 물이 없다는 원망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진을 쳤습니다. 그들은 몹시 지쳐 있었고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인솔한 지도자 모세를 향해 마실 물을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간청에는 ‘부탁’을 넘어선 ‘원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어찌 나에게 대들며 주님을 시험하냐고 말입니다. 모세는 그들의 믿음 없음에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는 정말 잘못된 것이었나?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는 그들과 다른 요구를 할 수 있었을까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인간에 관해 이해가 깊으신 분이라면 인간의 생존욕구인 쉼과 목마름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해당하는 성서구절을 읽을 때 우리의 일차적인 반응은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질책의 손가락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서를 ‘가슴’으로 읽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성’을 활용해 읽는 자의 모습은 더욱 아닙니다. 르비딤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는 어쩌면 생존을 위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흥분하지 말라는 모세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우리의 자식들과 집짐승들을 목말라 죽이게 하냐며 모세를 더욱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는 수 없이 홀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지금이라도 곧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사실 모세의 이 말에도 하나님에 관한 원망이 담겨 있어 보입니다. 어쩌면 모세에게는 자신보다는 하나님이 직접 이 원망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속내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벌하지 않는 하나님

 

그의 마음을 아셨는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세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수행할 하나의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임무는 좀 모호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행동방식까지 알려주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늘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를 지켜보고 계셨다는 듯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호렙 산 바위를 나일 강을 쳤던 그 지팡이로 치면 그곳에서 마실 물이 솟구쳐 나올 것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늘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음을 증거 할 몇몇의 장로들 앞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행했습니다. 물론 성서에는 이 행동이 있은 후 마실 물이 터져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저는 이 행위가 끝나자마자 마실 물이 솟구쳐 나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지막 본문에 이렇게 이야기하죠.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주님께 대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곳의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고 하여 ‘맛사’라고도 불렀다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확인 한 므리바, 맛사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마지막 구절에 쓰인 문장이 참 재밌습니다. 그게 뭘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께 대들고 주님을 시험했다고 해서 붙인 이 ‘므리바’, ‘맛사’라는 땅 이름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지었다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듯 이러한 지명들은 하나님 편에서 불려야 더 잘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 본문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문을 풀어가며 잠시 말씀 드렸듯이, 목이 마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주지 못할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데에 이 본문을 풀어갈 키워드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런 말입니다. 모세를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는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었다는 말말입니다. 므리바, 맛사라고 그 땅의 이름을 붙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본모습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식을 갖기 위한 노력 

 

여러분, 청소년 권장도서는 여러 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최근에 이 책을 저희 지방 젊은 목회자분들과 읽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소중한 이야기 하나를 나눠볼까 합니다. 

 

책 <데미안>을 보면 처음부터 계속해서 선과 악의 대비를,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대비해서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나 사회를 대할 때 그리고 신을 대할 때 어떤 관념을 작동시켜 판단을 합니다. 이 말은 사람은 어떤 일을 맞닥뜨리면 자신이 고수해오던 생각 혹은 이성을 활용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에 당연시 되었던 개념들을 전복하여 새롭게 인식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자라며 혹은 살아가며 외부에서 주어져 갖게 된 어떤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본질 그대로의 기준을 찾길 요구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들을 내려놓고 새롭게 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또한 내 안에서 꿈틀대던 소중한 요구들, 욕구들을 정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 다시 말해 새롭게 인식하고자 노력하는 시간을 오래 유지해 나갈 때 선과 악의 개념 그리고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의 개념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방금 이 이야기는 현대 사회와 기독교 전통에 의하면 매우 불온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데미안>에서 보여주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서 솟아나는 새로운 법이 하나님의 참 사랑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금 전의 이 이야기도 기독교의 전통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본질을 잃은 것으로 봅니다. 

 

정직하게 내 요구를 하나님께 드러내라!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하나님은 선의 기준을 뚜렷이 세우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벌하시는 율법에 갇힌 분이십니까? 물론 오늘 본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서에서 하나님은 믿지 않는 이들을 벌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대부분의 성서기자들이 그렇게 기록을 해놓았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이 가진 의미가 특별하면서도 정말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믿음 없는 자들을 대표하는 듯 보이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마름의 요구를 주님께서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를 들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앞뒤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이 분노를 드러내거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조건을 붙이는 따위의 말씀은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차라리 속내를 숨기기보다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의 바람 혹은 요구를 드러내는 것이 더 옳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입니다. 

 

하지만 때론 걱정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본능에 충실하여 하나님 앞에 너무 당당히 맞서다 어떤 형벌에 처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운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더욱 그러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느끼고 아시고 바라보는 분이십니다. 성서의 전통이 그분의 본질을 괜히 ‘사랑’이라고 칭하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 마음 깊은데서 올라오는 바람과 혹은 본능들을 이해 못 할 분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습대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생존을 위한 우리들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마음 속 깊은 것을 정직하게 드러낼 때,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역동성을 잘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서서 요구도 해보고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물어보기도 하십시오. 그랬을 때 저는 오히려 참 하나님의 마음과 접속되리라 믿습니다. 그랬을 때 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다리고 비워내는 이 소중한 ‘사순절’ 기간 동안,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되, 그 용기 있는 직면함으로 세상으로 나아가 겁낼 것 없이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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