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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고비마다 에밀 싱클레어를 찾아왔던 이들,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이 다 데미안이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이들, 여럿의 데미안이 모두 내 안에 있는 존재들이라고, 나와 '다른' 나로 내 안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이승우, <고요한 읽기>)
소설 속, 싱클레어는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 가운데 일부는 그가 인생의 고비를 넘어서게 돕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가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데미안을 이렇게 표현한 지점이다. 헤세는 데미안의 얼굴을 소년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여성이기도 하고 노인이기도 한, 천년을 산 사람 같기도 한, 유령 같기도 한 '존재'로 묘사했다. 그러니까 데미안은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존재, 규정되지 않은 존재이다. 데미안은 단수가 아닌 복수의 개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사실이다. 소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서 자기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데미안은 여러 존재이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하나이다. 싱클레어는 곧 '나 자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나는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이다. 그리고 내 안에 삶의 고비를 넘어서게 하는 내면의 교사 혹은 스승이 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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