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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죄를 통해 빛으로

20180408 쓰임교회 주일설교

 

죄를 통해 빛으로

 

<요한1서 1장 1-10절>

 

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2.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4.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8.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10.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부활의 기쁨

 

주님의 평화가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절 그 두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그 부활의 기쁨을 본인의 기쁨으로 삼으며 또 그 기쁨을 주위 사람들과 잘 나누고 계십니까? 부활의 기쁨은 주님이 살아내고 전한 복음이 거짓이 아니고 사라지지 않았음을 또 그 복음은 사랑하며 사는 삶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활절은 지났지만 부활의 기쁨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요한의 요한1서

 

오늘 우리는 요한1서의 말씀을 나눕니다. 본 서신의 저자는 사도 요한 즉,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인 요한입니다. 물론 평소 성격이 불같고 지식이 많지 않던 어부 출신의 요한이 사랑으로 가득 찬 본 서신의 분위기와는 너무 동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으나 요한의 신앙과 인품이 세월을 거듭하면서 변화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 요한은 세 개의 서간을 작성하는데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본문은 그 서간 중 첫 번째입니다. 그는 첫째 서간을 에베소에서 작성하였는데 1장에서는 ‘빛’ 가운데 사는 삶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육신을 지닌 자들과의 사귐

 

요한은 이 첫 번째 서간의 첫 운을 이렇게 뗍니다.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1).” 여기서 생명의 말씀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미 본인의 또 다른 서신인 ‘요한복음’에서 언급한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고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다고 말입니다(1-2절). 

 

그러면서 요한은 서신을 기록하는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과 ‘사귐’을 가지라고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과의 사귐은 곧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요한이 ‘사귐’을 강조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글이 쓰여 질 당시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글이 쓰여 질 당시 에베소를 포함한 소아시아에는 ‘영지주의’가 팽배했습니다. 영지주의는 ‘물질’은 부정하고 악하며 ‘영’은 거룩하다는 이원론적 사고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의 결과는 인간의 육신을 부정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자연스레 부인되는 것이지요. 당시의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또 성도간의 사귐을 요청하며 육신을 지닌 존재들의 가치를 옹호했던 것입니다. 

 

빛 가운데 사는 삶

 

이어서 그는 하나님에 관한 정의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정의 한 가지를 알려줍니다. 그는 “하나님은 빛이시오,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죠.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6-7절).” 

 

요한은 ‘빛 가운데 사는 삶’의 옳음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귄다고 하면서 어둠 속에 사는 것은 거짓이라고 또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시 반대로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살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빛 가운데 사는 삶’은 무척 중요한데 우리는 이 구절만 갖고 빛 가운데 사는 삶이 무엇인지 알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저 빛 가운데 사는 삶의 중요성에 관해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태도나 삶의 방식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친절하게 다음 구절에서 그러한 태도, 방식을 알려줍니다. 

 

죄의 인정

 

8-10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그는 빛 가운데 사는 삶이 곧 ‘죄의 인정’과 관계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죄가 없는 사람이 칭찬 받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죄가 없다고 말하는 자를 일러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자,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 속에 없는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죄. 사실 우리는 죄가 없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마치 하나님께선 죄 없는 자를 더 사랑하여 주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죄를 짓게 되면 벌을 받을까 겁이 납니다. 그런데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오히려 죄가 없다고 고백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는 자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대체 왜 이런 말을 했던 것일까요? 

 

자유하기에 죄를 짓은 인간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은 반드시 선을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처음부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에게는 시행착오가 필요하고 이 분별력은 평생에 거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기에 본인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조건 제멋대로 살게 내버려두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무슨 기회인가하면 ‘돌아설 기회’입니다. 넘어지고 또 잘못을 저질렀을 때 돌아설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경유해 사람이 성숙해져 갈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성경을 토대로 한 사람에 관한 이해입니다. 

 

다만 사람마다, 그 사람이 자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속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전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우리의 선 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보고 비난을 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관해 먼저 귀 기울이는 것이 옳습니다. 

 

죄를 인식하고 용서를 구할 용기

 

그렇기에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죄 없다고 하는 이의 거짓을 우리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몫은 ‘죄에 관한 인식’과 ‘죄를 하나님 앞에 자백할 용기’입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이 죄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부분이 추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이것이 죄인지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아는 방법에는 역시 ‘삶’이 있다고 봅니다. 기쁨을 잃지 않기 위해 살고 멈춰서 묻고 또 기도하고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단순한 삶의 원리 가운데 진리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죄인지 알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자백할 용기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하나님과 화해 즉, 자신과의 화해를 이루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되지 못한 자신에 관해 늘 불만족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깊숙이 존재하는 사랑의 불꽃을 발견하고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있는 그대로 참 괜찮은 사람임을 스스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 앞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 앞에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죄에 관한 인식과 죄를 고백할 용기를 갖는 것이 ‘빛’ 가운데 거하는 삶입니다. 너무 조급해 마시고 지금부터라도 이것을 삶에서 행해보십시오. 그럴 때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랑이 번져 가리라 봅니다. 여러분의 모든 발걸음마다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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