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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룻의 마음과 용기

20181104 쓰임교회 주일설교

 

룻의 마음과 용기

 

<룻기 1장 1-18절>

 

1. 사사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유다 베들레헴 태생의 한 남자가,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임시로 살려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2. 그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태생으로서, 에브랏 가문 사람인데, 모압 지방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살았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다. 

4. 두 아들은 다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룻이고, 또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바였다. 그들은 거기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으니, 나오미는 남편에 이어 두 아들마저 잃고, 홀로 남았다. 

6. 모압 지방에서 사는 동안에, 나오미는 주님께서 백성을 돌보셔서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날 채비를 차렸다. 

7. 나오미가 살던 곳을 떠날 때에, 두 며느리도 함께 떠났다. 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8.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들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님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 

9. 너희가 각각 새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나오미가 작별하려고 그들에게 입을 맞추니, 며느리들이 큰소리로 울면서 

10.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도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의 겨레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11. 그러나 나오미는 말렸다. "돌아가 다오, 내 딸들아.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아직, 내 뱃속에 아들들이 들어 있어서, 그것들이 너희 남편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냐? 

12. 돌아가 다오, 내 딸들아. 제발 돌아가거라. 재혼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다. 설령, 나에게 어떤 희망이 있다거나, 오늘 밤 내가 남편을 맞아들여 아들들을 낳게 된다거나 하더라도, 

13. 너희가, 그것들이 클 때까지 기다릴 셈이냐? 그 때까지 재혼도 하지 않고, 홀로들 지내겠다는 말이냐? 아서라, 내 딸들아. 너희들 처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구나. 주님께서 손으로 나를 치신 것이 분명하다." 

14. 그들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울었다. 마침내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면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떠났다. 그러나 룻은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달라붙었다. 

15. 그러자 나오미가 다시 타일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저의 겨레와 신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의 뒤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대답하였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17.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 

18. 나오미는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을 보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발은 삶의 현장을 만들어 낸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길 빕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말씀은 룻기 1장입니다. 그런데 룻기 1장이 하나의 이야기와 만나 설교의 흐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싶으실 텐데, 룻기 1장을 묵상하며 왜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이방 여인 ‘룻’을 들어 사용하셨을까, 다시 말해 왜 ‘룻’을 다윗의 증조모요 예수의 조상이 되게 하셨을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의 한 글귀를 보았고 그것이 오늘 설교의 흐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다음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 <담론>에 나온 한 구절입니다. 

 

'가슴'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의 멀고 긴 여정을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바로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발'은 변화입니다.
삶의 현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신영복, <담론>, 돌베게, p.230

 

성공회대 석좌교수였던 신영복 선생님은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시며, 가장 먼 여행은 사람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해 가슴을 경유해 발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머리'는 하나의 이성이자 생각이고 '가슴'은 어떤 대상이나 일에 대한 공감과 애정이라면 '발'은 곧 실제적인 변화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생각의 목표, 이성의 최종 목적지는 삶의 현장을 새롭게 하고 없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실제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룻기의 처음 이야기

 

그럼 지금부터 룻기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서두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었고 그 땅에 살던 사람 엘리멜덱은 기근을 피해 그녀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떠납니다. 엘리멜덱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고 두 아들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 이유가 나와 있진 않지만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자신의 남편과 두 아들 모두를 잃습니다. 그녀는 깊은 정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두 아들은 모압 여인과 각각 결혼을 했는데, 두 아들의 아내 중 한 사람이었던 ‘룻’은 마음이 참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고, 자신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라는 나오미의 말에도 그녀를 떠나지 않은 채, 나오미의 고향이자 자기 남편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룻은 축복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룻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 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긍휼의 마음과 새로운 삶의 현장

 

여러분, 모압 여인 ‘룻’은 왜 하나님께 복을 받았을까요? 

 

룻은 자신을 떠나 새로운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라는 나오미 말의 이면을 볼 줄 알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며느리였던 ‘오르바’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녀도 나오미의 슬픈 마음을 알아챘고 그래서 떠나라는 그녀의 말에 슬피 울었습니다(14). 

 

그런데 성경은 룻의 반응에 관해 더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시어머니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의무나 강요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했습니다. 룻은 공명에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긍휼의 마음을 가진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크게 보셨고 그녀를 하나님이 풀어 가실 역사의 한 줄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룻의 위대함은 바로 이다음에 나타납니다. 그녀는 어떤 대상에 관해 긍휼의 마음만 품은 게 아니라 시어머니와 함께 그녀의 고향인 유다 땅 베들레헴까지 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가장 먼 여행이자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발' 곧 삶의 현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슬픔에 공명한 것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새로운 삶의 현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룻기 2장부터의 이야기를 보면 그녀는 베들레헴에 잘 정착하고 삶을 개척해 나갑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요청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약 두 주 전,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잘 알려진 유진 피터슨 목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많은 책을 쓰고 번역했으며 유명한 집필 책으로는 <메시지> 성경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영적인 스승이었습니다. 

 

저도 얼마 전부터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중 <역사서>를 읽고 있었는데,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마음이 좀 먹먹했습니다. 또 한 명의 좋은 선생을 잃은 기분 때문인 듯싶습니다. 어쨌든 그의 책 <역사서>에 ‘룻기’에 대한 묘사가 인상 깊어 여러분께 읽어드릴까 합니다. 

 

“이방인 룻은 모태신앙인이 아니었고, 선천적으로 신앙에 끌렸던 사람도 아니었다. 우리 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구원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요란스럽지 않고 도드라지지 않지만 이야기의 완결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배역을 맡게 된다. (중략) 

 

보잘것없는 이방인이었던 룻, 그러나 그녀의 삶은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었다.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 마지막 구절이야말로 룻기가 우리에게 날리는 결정적 한 방이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했고 그녀는 오벳을 낳았는데,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였고, 다윗의 할아버지였다’(룻 4:17).” 

 

유진 피터슨, <메시지 구약 역사서>, 복있는사람, p.161-162

 

사실 하나님께 축복 받은 여인 룻은 그리 비범하고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우리와 같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신 그녀에게 있어 특별한 점은 그녀는 현재의 삶에 집중할 줄 알았고 또한 새로운 선택을 할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 앞에 있던 시어머니의 슬픔에 깊이 공감했고 또 자신의 편안한 일상이 보장된 고향을 뒤로한 채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용기를 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룻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녀를 존경의 대상으로만 삼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이러한 삶을 요청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또 이전의 것, 이전의 낡은 삶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할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웃을 향해 갖는 긍휼의 마음과 또 새로운 삶을 선택해 나가고자 하는 그 용기 속에 룻에게 주었던 동일한 축복을 내려주시길 바라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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