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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 Note / 이사야서 (12)] 고난받는 종을 닮아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2024. 9. 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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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청파교회 새벽설교

 

고난받는 종을 닮아

 

<이사야서 53장 4-5절>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의 허물, 우리의 악함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서 53장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사야서 40장부터 진행되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 이야기는 55장까지 이어집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예루살렘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특별히 한 명의 종이 등장합니다. 이 종은 이미 이사야서 52장 마지막 단락에 등장한 바가 있습니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그 종을 일러 ‘고난받는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고통을 당했습니다(2). 더구나 그의 모습에는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2). 대충 이러한 상황만 보더라도 누구도 그와 함께하기를 꺼릴 거라 여겨집니다. 그는 분명히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그런데 곧이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가 추한 모습을 갖게 되고, 멸시와 고통을 당하게 된 이유가 바로 ‘우리’ 때문이었던 것입니다(5).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5)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미워하며 손가락질했던 그 사람이 모두 나의 잘못으로 그리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세상 논리의 붕괴

 

그런데 이보다 더 이상한 일이 이어서 일어납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5) 우리의 잘못 때문에 버려지고 상처 입은 그 대상이, 그렇게 버려지고 상처를 입어-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아주 이상한 일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전혀 이해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가의 원칙 혹은 교환의 원칙입니다. 우리는 값을 치르고 나서 물건을 구매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투자하여 무언가를 배웁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 우리가 누군가에게 실수를 저지르거나 잘못했을 때, 실수나 잘못의 대가를 치러야만 문제가 원활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받는 종’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이러한 세상의 원칙과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잘못을 했습니다. 그는 대가를 치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당사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 그를 대신해서 대가를 치릅니다. 그는 잘못을 저지른 이를 대신하여 징계를 받고 매를 맞습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닙니다. 그가 대신 징계를 받고, 매를 맞음으로 ‘잘못을 했던 이’가 오히려 평화를 누리고, 병이 낫게 됩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의로움 때문에 당한 고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과연 우리 주위에 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종종 의롭고 정의롭게 살다가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배척을 당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려움의 정도가 작다고 해서 그분들의 애씀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분들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이사야서 묵상이 끝나고 곧 다루게 될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러한 인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역시 의로움 때문에 고난을 초래합니다. 그는 도무지 돌이킬 생각이 없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다가 극심한 고초를 겪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고초를 겪어야 할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어야 한다는 점에서 예레미야도 이 ‘고난받는 종’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난받는 종은 누구인가

 

그럼 이제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이 ‘고난받는 종’이 누구인지를 말입니다. 사실 이사야가 누구를 그 ‘종’으로 생각했을까, 는 사람들의 오랜 고민 지점이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종’을 한 명의 개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운명과 관련지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신들이 기다리던 별도의 메시아일 거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와는 별도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고난받는 종’을 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이사야서에 미리 선포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게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누구인가, 에 대한 고백은 신앙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 ‘종’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객관적인 사실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사야가 가리킨 그 대상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운명을 본다면, 우리의 지난 과오를 반성하여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 ‘하나님의 종’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면,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며 그분을 닮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자기중심성이 아닌 곁에 있는 이들을 위한 타자 중심적인 삶을 살려고 애쓸 것입니다. 

 

주님의 보상

 

이제 주님께서는 마지막 절에 이르러 결론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12) 주님은 남의 일을 제 일처럼 여긴 이에게 보상을 내리십니다. 주님은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고,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상만을 바라는 신앙은 올바른 신앙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행한 헌신을 다 기억하시고 반드시 적절한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수고와 애씀, 헌신을 다 기억하고 계심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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