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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청파 Note / 이사야서 (14)] 함께 일할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by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2024. 10. 2.

202401003 청파교회 새벽설교
 
함께 일할 사람을 찾으시는 주님
 
<이사야서 63장 5-6절> 
 
5.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를 도와서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이 없었다. 나를 거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분노가 나를 강하게 하였고, 나 혼자서 승리를 쟁취하였다. 
6. 내가 분노하여 민족들을 짓밟았으며, 내가 진노하여 그들이 취하여 비틀거리게 하였고, 그들의 피가 땅에 쏟아지게 하였다.
 

 

이사야서 63장의 배경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서 63장입니다. 이사야서 63장의 배경은 유대 민족이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에 전해진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국으로 돌아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유대 민족은 이미 고향 땅에 살고 있던 이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지에 대한 문제도 놓여 있었고, 무엇보다 실수를 반복하는 유대 민족의 오랜 습성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주님께서 여전히 유대 민족을 아끼시고 회복시키려는 의지가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기억하면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더 자세히는 현재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신지유대 민족이 처한 상황은 또한 어떠한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외로우셨을 주님 
 
먼저 주님은 자신을 소개하는데 자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에돔에서 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붉게 물든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화려한 옷차림으로 권세 당당하게 걸어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1) 수도가 ‘보스라’인 이 에돔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선 민족을 대표합니다. 에돔은 포도주가 유명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붉게 물든 옷’이라는 표현은 에돔을 적절하게 묘사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에돔에서 오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이 말은 에돔이라는 땅에 복수를 행하고 돌아오는 위풍당당한 영웅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어서 주님은 진짜 하고 싶은 말씀을 전하시는데, 그것은 에돔을 포함해서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민족들을 멸하셨는데, 그 일을 홀로 담당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혼자서 포도주 틀을 밟듯이 민족들을 짓밟았다. 민족들 가운데서 나를 도와 함께 일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분내어 민족들을 짓밟았고, 내가 격하여 그들을 짓밟았다.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 내 옷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3) 
 
이 말은 주님 스스로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주님은 자신과 일할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주님은 홀로 정의를 위해 싸우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의롭고 정의로운 일을 하셨지만, 홀로 그 일들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문득 궁금해집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감히 대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맞습니다. 하나님의 크심은 인간의 어떤 능력과도 결코 비교될 수 없습니다(욥 38:1-18).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주님은 홀로 어떤 일을 성취하기도 하시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일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5절에서 주님은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를 도와서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이 없었다. 나를 거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니, 놀라운 일이었다.”(5) 어찌 보면 주님은 짝사랑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홀로 승리를 쟁취하셨지만, 아마도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떠나 간 주님의 사랑
 
이어서 등장하는 7절 후반부의 말씀은 내용 면에서 보았을 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직후에 기록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빌론 포로기나 바빌론 포로기 직전에 쓰인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이 63장 7절의 이야기는 다음 장인 이사야서 64장까지 이어집니다. 이 이야기가 왜 중간에 등장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습니다. 아무래도 63장 7절부터 64장까지 기록된 말씀은 유대 사람들이 예배 중에 반복해서 불렸던 기도노래일 가능성이 높고지나간 시간을 상기하고자 중간에 삽입된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해당 본문을 살펴보면, 먼저 이사야는 자신뿐만 아니라 유대 민족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유대 민족은 하나님께 택함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유대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해방해 주셨고, 출애굽 이후에도 끝까지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 기억을 이사야는 추억하듯 떠올렸습니다(7-9). 
 
그런데 유대 민족은 그런 하나님을 실망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자기를 실망하게 하지 않기를 기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근심에 빠지게 했고, 주님은 유대 민족과 대적하기로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사랑을 베풀었던 이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10). 
 
주의 영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대 민족은 그제야 주님 앞에 간곡히 탄원합니다. 그들은 이집트로부터 도망 나온 그 ‘모세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키고 보호하신 주님을 기억해 냅니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주님의 손길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유대 민족은 말합니다. “그의 백성 곧 양 떼의 목자들을 바다로부터 올라오게 하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그들에게 그의 거룩한 영을 넣어 주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그의 영광스러운 팔로, 모세를 시켜서, 오른손으로 그들을 이끌게 하시며,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셔서, 그의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하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11-12) 주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당연하게 여긴 이들은 사랑이 떠나가자 그 빈 자리를 강하게 느낍니다. 유대 민족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사라지자 그제야 세상엔 당연한 것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기도자의 간구 
 
15절부터 마지막 19절까지는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자의 간곡한 기도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무에 호소합니다. 자신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신앙의 선조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기도자는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도, 오직 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옛적부터 주님의 이름은 '우리의 속량자'이십니다.”(16) 
 
그런데 이다음 구절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유대 민족은 마치 적반하장처럼 보이는 발언을 합니다. 기도자는 말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우리를 주님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셔서, 주님을 경외하지 않게 하십니까? 주님의 종들 곧 주님의 유산인 이 지파들을 보셔서라도 돌아와 주십시오.”(17) 이 구절을 읽으면, 유대 백성들이 참 낯이 두껍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들이 주님의 사랑을 외면한 채, 주님을 떠났으면서도 오히려 어찌하여 우리를 내버려둬서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게 했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말은 마치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들의 말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유대 민족은 주님의 도움이 있어야만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음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는 이사야서 63장의 말씀을 나눴습니다. 63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사람은 부재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존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일하기도 하시지만,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주님은 함께 일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에돔을 비롯한 이방 민족을 대상으로 의롭고 정의로운 일을 행하셨지만, 홀로 일하셨기 때문에 외로우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당신과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은 사랑을 받을 때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다가 사랑이 떠나자 사랑의 존재를 또렷이 느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합니다. 소유하고 있는 것에는 감사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결국 사람은 부재를 통해 배웁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이 사랑을 베푸시겠지만, 더 늦기 전에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이제는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편에서 일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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